금융은 현대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달리 말하면 돈이다. 금융으로 번역되는 영어단어 파이낸스finance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알법한 제법 전문적인 단어였지만, 지금은 동네 불법 대부업체에서도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그만큼 돈의 문제는, 금융의 문제는 그 어느때보다 삶과 직결되어 있다.
금융finance이라는 말에는 끝이라는 의미가 있다. 금융문제는 잘못되면 끝이라고 농담처럼 해석해도 그럴듯 할 것이다. finance에 있는 fin-은 끝을 의미하는 접두사다. 아마도 final같은 단어가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Fin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한국말로는 "극종." 영화가 끝났다는 뜻이다. 널리 알려진 단어로 finish는 끝내다, 마무리짓다는 뜻이 있는데, 역시 fin-의 어원을 갖고 있는 말이다.
원래 Finance의 어원에는 빚을 다 갚다는 뜻이 있었다. 다시말해, 금융finance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진 빚에 대해, 그 돈을 갚는것을 "끝낸다"는 데서 유래했다.
돈이 나간다는 의미에서, 벌금을 의미하는 fine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왜 벌금이 fine이었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fine은 좋다, 훌륭하다는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왜 굳이 fine이 벌금이 되었는지 아리송했었다. 어쨌거나 finance가 돈과 결부된 것처럼, 벌금fine도 역시 같은 어원적 관계가 있다고 보면 될거 같다.
끝이 있다는 것은 유한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한하다는 뜻의 영어단어는 finite이다. fin을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어가 생긴 그대로 끝이 있다는 말이 된다. 반대 접두어 in-이 결합되면 당연히 무한하다는 말이 된다. infinite는 그래서 무한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혼다의 자동차 모델 이름이기도 한 Infinity는 무한이라는 뜻이다. 토이스토리를 기억한다면 버즈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를 것이다. "To infinity, and beyond"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무한은 정말 경이로운 말이다.
영문법을 배우면서 접하는 부정사는 바로 이 infinite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다. 영어의 부정사는 infinitives 라고 한다.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부정사라는 말 자체가 매우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부정사라는 용어를 들으면,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라는 식의 부정negation이라는 단어의 뜻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의 부정사는 뭔가를 부정한다는 뜻의 부정이 아니라, 한계가 없는, 그래서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래서 in+finitive 가 된 것이다. 문법적인 설명은 언어학자들의 몫이지만, 간단히 설명해 본다면, 부정사에서 동사원형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부정의 의미와 관계가 깊다. 모든 동사는 시제가 반영되어야 사용될 수 있는데, 부정사는 동사의 원형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제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제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부정이라고 부른 것이다.
어떤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define도 역시 끝과 관계가 깊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개념의 끝을 한정짓는 행위라고 할 수있다. 포유류에 대한 정의라면, 어디까지 포유류에 해당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한다는 뜻의 단어 define은 개념의 범위를 한정짓고fin-,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앞의 de-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접두사이지만, 여기서는 아래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범위가 한정된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지상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define은 아래에, 현실적인 범위의 끝을 설정한다는 의미에서 정의내린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국어의 번역에 정의를 '내린다'고 하는 것은 바로 de-가 갖고 있는 아래의 방향성을 감안해서 번역한 셈이다. 비슷하게 써 '내려가다'는 의미에서 describe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정의내린다는 말은 규정짓고 한정짓는 뜻이다. 형용사형태로 definite이라고 하면 그래서 한정된, 정해진, 분명하다는 뜻이 있다. 반댓말은 간단하다. 역시 부정 접두어 in-을 사용하면 된다. indefinite라고 하면 정해지지 않은, 무한정의, 혹은 부정의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영어의 관사에는 정관사와 부정관사가 있다. 정관사는 definite article, 부정관사는 indefinite article라고 한다. 영어를 배우면 관사가 아주 고약하게 어렵다고 느끼지만, 사실 관사의 용법이 이름에서 이미 설명해 주고 있는 걸 알수 있다. 정해진 것, 한정된것, 명백한 것을 지칭할떈, 정관사를 쓰고,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을때는 부정관사를 쓰면 되는 것이다.
쥴리아 로버츠가 주연했던 추억의 영화 노팅힐의 마지막 대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인 애나와 영국 노팅힐에 있는 조그만 동네서점 주인인 윌리엄 사이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의 엔딩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고, 다시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난다. 애나는 영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떠나기 전날 인터뷰를 하는데, 용서와 이해를 구하며 자신을 다시 찾아온 윌리엄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인터뷰 도중 영국에 남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하자, 기자가 묻는다, "애나, 그럼 영국에 언제까지 머물건가요"
줄리아 로버츠가 대답한다.
"Indefinitely"
무한정. 무기한. 언제까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