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여성의 삶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작품을 연달아 쓰게 되었다. 『안나 카레니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마담 보바리』를 읽었지만, 안나의 삶을 살펴보면서 보바리가 떠오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 『안나 카레니나』는 『마담 보바리』와 자주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의 사실주의적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비슷한 유한계급 여성의 맹목적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다루고 있다.
구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 한 인간의 내면을 문학적 도구로 탐색한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플로베르는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간질 증세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작가의 길을 선택한 플로베르는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문장 자체의 완성도에 집착하였고,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선택하는 “le mot juste”의 장인으로 평가된다.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 배우던 “일물일어설”이 기억난다. 하나의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는 오직 한 단어뿐이라는. 그래서 그의 사실주의는 매우 꼼꼼하고 정교하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1874), 『감정 교육』(1869), 『보바리 부인』(1857) 등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적 묘사, 반낭만주의적 태도, 심리적 정밀성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1857)는 플로베르의 대표작이자 19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중요한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생활과 욕망을 냉철하게 묘사하여 출간 직후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이자 세계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플로베르는 낭만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이 현실과 충돌하며 파멸해가는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그는 특히 여성을 욕망과 이상, 사회적 억압의 교차점에 위치한 존재로 묘사했는데, 『마담 보바리』는 바로 그 바로 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엠마의 삶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성별에 대한 규범, 소비문화, 감정적 억압의 문제를 비판하며, 환상에 의존한 삶이 어떻게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체와 미학에 있어 냉철한 사실주의를 견지하면서도, 플로베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포착한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19세기는 어쩌면 인간에 대한 탐구가 가장 섬세하고 세밀하게 이루어진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마담 보바리』를 가장 특징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 내 기억엔, 엠마가 무료한 결혼생활에서 느끼던 “권태”가 그것이다. 어떤 면에서, 현대 문명에서 권태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특징점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세 수도사들에게도 아카디아라는 감정이 있기는 했지만, 문화, 예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한 권태는 분명 19세기 이후, 인간의 삶이 질적으로 달라지면서 생겨난 감정일 것이다.
특히, 남편이 아닌 새로운 남자를 만난 후, 일상속에서 느끼는 권태는 엠마로 하여금 훨씬 더 능동적이고 과감한 행동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레옹과의 추억은 그녀의 권태의 중심처럼 되어 버렸다. 그것은 러시아의 황야에서 나그네들이 눈 위에 버리고 간 모닥불보다도 더 강하게 권태 속에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로 달려가서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 꺼져 가는 그 불을 조심스럽게 헤적여 보았고 불 기운을 돋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이었다. 가장 아득한 기억들이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잡을 수 있는 기회건, 실제로 겪은 일이건, 마음속으로 상상한 일이건, 산산이 흩어지는 관능의 욕망이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꺽이는 행복의 계획이건, 자신의 보람없는 정조건, 깨어져버린 희망이건, 집안의 잘일이건, 자신의 슬픔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고 무엇이든 받아들여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땔감이 저절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땔감을 너무 많이 쌓아올린 탓일까, 불길은 그만 사드라져 버렸다. 사랑은 부재로 인하여 조금씩 꺼져 갔고 미련은 습관 속에서 질식해 버렸다. 그녀의 창백한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불길의 남은 빛은 더욱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점점 사라져갔다. 의식이 몽롱해진 탓인지 그녀는 남편에 대한 혐오를 연인에 대한 동경으로 착각했고 불타오르는 증오를 새로이 뜨거워지는 애정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여전히 폭풍은 휘몰아쳤고 정열은 타오를 대로 타올라 재가 되었지만 아무런 구원도 오지 않고 햇빛은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채 어디를 향해도 캄캄한 밤이었으므로 그녀는 뼛속으로 스며드는 무서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은 채 갈곳 몰라하고만 있었다.”
엠마 보바리가 결혼한 샤를 보바리는 공중보건국의 의사로 일하던 평범한 남성이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별 이후, 진료를 갔던 집에서 만난 엠마에게 반해 청혼하게 된다. 성실하고 평범한 가장. 샤를 보바리는 나무랄데 없이 충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엠마는 결혼생활에서 별다른 활력을 느끼지 못한다.
엠마는 젊은 배우고 읽었던 낭만주의 소설들을 읽으며 갖게 된 이상화된 사랑과 삶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엠마의 그런 감성은 극도의 절제와 금욕이 일상화된 수도원에서였다. 한편으론, 그런 텅빈 도화지 같은 공간이었기에, 엠마의 로맨틱한 상상력은 더욱더 화려하게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환상을 꿈꾸어 왔던, 엠마에게 현실의 평범하고 둔감한 남편 샤를은 아무런 활력도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정말 지루하고 권태로운 존재로 느껴진다. 그래서, 보바리는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극과 감정, 낭만과 사랑을 추구하게 된다. 화려한 파티와, 럭셔리한 호텔, 온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는 육감적인 욕망의 충족. 점점 지출은 많아지고, 욕망은 깊어간다. 하지만, 점점 불어난 사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보바리는 사랑과 돈이 만들어내는 파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의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가지만 돈 앞에서 사랑은 무력하다. 결국, 자신이 사랑했었다고 믿었던 남성들에 대한 배신과 실망을 경험하면서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제, 엠마의 성격과 삶을 사주명리학적으로 살펴보자.
일단, 엠마는 자유와 감정, 낭만과 미를 추구하는 욕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엠마의 화끈하고 급한 성격은 오행상 화(火)의 기운이 강한 것에서 유래할 것이다. 엠마에게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십성적 성향은 상관(傷官)과 편재(偏財)라고 할 수 있다.
상관은 창의성, 감정의 분출, 규범 파괴의 기운으로 현실의 틀을 벗어나려는 성격으로 이해된다. 젊은 시절, 에마는 자신이 읽었던 로맨스 소설의 세계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판타지를 키워간다. 엠마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 엠마는 어린 시절의 판타지가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녀는 혼자말을 되풀이 했다. ‘내게 애인이 생긴거야! 애인이!’ 이렇게 생각하자 마치 갑작스레 또 한번의 사춘기를 맞이 한 것처럼 기쁨이 솟구쳤다. 그러니까 그녀는 마침내 저 사랑의 기쁨을, 이미 체념해 버렸던 저 열병과도 같은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황홀한 그 무엇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정열, 도취, 광란이리라. 푸르스름한 빛을 띤 광대한 세계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녀의 상념 저 밑에서는 절정에 이른 감정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은 오직 저 멀리, 저 아래 어둠 속, 그 높은 꼭대기들 사이의 틈바구니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때 그녀는 옛날에 읽었던 책 속의 여주인공들을 상기했다. 불륜의 사랑에 빠진 서정적인 여자들의 무리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공감어린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 자신이 이런 상상 세계의 진정한 일부로 변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그토록 선망했던 사랑에 빠진 여자의 전형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젊은 시절의 긴 몽상이 현실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욕망은 끝이 없다. 엠마는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며 이렇게 되뇌인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
그 결과 보바리는 자신의 현실에서 평범한 결혼과 도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관은 정해진 프레임을 좀처럼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관의 기질은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 미적 추구, 과도한 감정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상관은 예술적 재능, 비판적 사고, 자유로운 표현 욕구와 기존 질서나 규범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상징한다. 상관이 강한 사람은 뛰어난 감수성과 창의력을 지녔지만, 현실적 제약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갈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엠마는 어린 시절부터 낭만적 소설을 읽으며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인 삶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실제 결혼 생활에서 마주한 현실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료하고 권태로웠다. 그녀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기존의 질서에 불만을 느끼고 자신의 낭만적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원하게 된다. 이로 인해, 엠마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특히, 시골 마을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화려한 귀족적 생활을 맛보고 난후, 다시 남편과의 지루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엠마는 단조로운 자신의 변함없는 삶에 대해서 더욱 큰 환멸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엠마의 또 다른 특성은 편재(偏財)라고 할 수 있다. 편재는 변화와 자극을 추구하며, 순간적인 기쁨과 감정적 충동에 쉽게 휩쓸리는 성향이다. 편재가 강한 사람은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욕망도 강하지만, 그 욕망은 종종 지속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이며 변화가 많다.
그러다 보니, 엠마는 남자들을 만나면서 돈의 씀씀이도 무척 커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엠마는 금전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고, 마침내 파산에 이르게 된다. 파산으로 인한 차압을 피하기 위해 엠마는 애인을 비롯한 주변의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엠마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돌프를 찾아갔을 때, 로돌프 역시 엠마의 사정을 돕지는 못했다. 플로베르는 사랑을 좀먹는 돈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내어주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선심을 쓰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돈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랑을 덮치는 모든 돌풍들 가운데서도 가장 싸늘한 바람이어서 사랑을 뿌리채 뽑아버리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얽히는 곳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 편재의 성향을 가진 엠마에게, 돈은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닥 중요하지 않았을텐데, 바로 그것 때문에 엠마는 사랑도 잃고 가정도 잃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로돌프마저 자신을 돕지 않는 것에 실망한 엠마는 그길로 돌아가서 비소를 한움큼 입에 털어 넣는다.
“그녀는 곧바로 세 번째 선반으로 다가갔다. 그만큼 그녀의 기억이 정확했던 것이다. 파란 병을 집어들어 마개를 열고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하얀 가루를 한 움큼 집어내어 그대로 입속에 털어 넣었다”
엠마는 그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치스러운 옷과 장신구,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소비에 빠져들게 된다. 또한 편재적 특성은 불륜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로돌프와, 이후에는 레옹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관계보다는 순간적인 열정에 치우쳐 감정적 자극을 더욱 더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엠마는 더 깊은 우울과 절망에 빠지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편재의 성격이 지나치면 현실적인 기반을 잃고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엠마는 오행 중에서 목(木)과 화(火)의 기운이 강한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목의 성질은 성장, 진취,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목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이상과 꿈을 추구하며, 현실을 초월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다. 엠마는 끊임없이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 세계를 꿈꾸며, 그 꿈이 충족되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하고 만다.
또한, 로돌프나 레옹과의 관계에서 알수 있듯이, 엠마에게는 불같은 열정과 욕망이 숨겨져 있다. 엠마는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인물이며, 이 화의 기운 때문에 금방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는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 격렬한 사랑과 이로 인한 배신, 그로 인한 감정적 혼란과 극적인 선택은 화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한것에 기인한다.
목과 화의 기운이 과다하면 현실적 기초를 잃기 쉽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수렴과 정리, 응축과 결실은 금수의 성질인데, 목화의 기운이 많다는 것은 금수의 기운이 적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의 성취와 결실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안정된 현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엠마는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목화의 기운으로 과도하게 뿜어내어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신살론적인 관점에서 두드러진 것은 단연, 도화와 화개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화살은 사랑, 유혹, 감정적 관계에 대한 강한 매력을 상징하는 신살이다. 엠마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로돌프와 레옹 등 남성들과 쉽게 관계를 맺고, 그들로부터 매혹과 열정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도화살은 과도하면 불안정한 관계, 배신, 상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실패와 비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그녀는 반복적으로 사랑에 실패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도화와 비슷하게 홍염의 기운도 엿볼 수 있는데, 홍염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신감과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수동적인 상태에서 이성의 관심을 받게 되는 도화살보다도 어쩌면 홍염은 엠마가 염문을 뿌리게 되는 남자들을 쉽게 정복하는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엠마에게는 화개살도 보인다. 화개살은 예술적이고 이상적이며 고독한 성향을 가진 신살이다. 엠마는 고독하고 내향적인 면모를 지녔으며, 소설과 환상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 것은 바로 이 화개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개살은 뛰어난 감수성을 주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내면의 외로움과 갈등을 키운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남편이나 연인들과의 관계에서 결코 내면적 고독을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외로움과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엠마 보바리의 비극적 삶은 사주명리학적 관점에서 잘 들어맞는면이 많다. 강한 상관과 편재의 십성으로 인해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적 세계를 꿈꾸며 욕망을 추구했고, 오행적으로 목과 화의 과도함은 현실적 삶의 기반을 간과하게 했다. 목화는 펼치고 분출하기만 할뿐, 수렴하고 집중하고 결실을 맺는 것이 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화살과 화개살의 영향 아래, 그녀는 사랑과 유혹의 덫에 걸리고 내면의 고독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비극적인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마담 보바리』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환상이 현실과 충돌할 때의 파괴적 결과이다. 정신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괴리가 어떻게 인간에게 비극적인 운명으로 다가오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엠마의 남편인 샤를 보바리는 어떨까?
샤를의 가장 뚜렷한 십성은 아마도 정재(正財)일 것이다. 정재는 성실하고 신중하며 현실적인 사람을 상징한다. 정재의 기운이 강한 인물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임하며, 평범한 일상과 안정을 중시한다. 작품 속 샤를은 의사로서 크게 뛰어난 재능이나 열정은 없지만, 꾸준히 환자들을 돌보고 가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재가 너무 강하면 변화에 소극적이고 다소 지루하며,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샤를이 아내 엠마의 불만과 내적 갈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머무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샤를은 아내의 사치와 불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저 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정재가 지나치게 강하면 삶에서 지나친 보수성과 수동성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은 샤를의 비극을 촉발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샤를은 선량하고 안정지향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아내에게는 재미없는 인물이다. 샤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정재(正財) 는 성실함, 보수성, 감정의 절제, 안정된 관계를 상징하는 별이다. 그는 일관되게 엠마를 사랑하고 헌신하지만, 아내의 정서적 요구나 이상주의적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재는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재성의 무기력함은 결국 엠마의 외로움과 불만을 심화시킨다.
샤를에게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십성은 정인(正印)이다. 정인은 인내심 있고 온화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은 성격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인이 너무 강하면 결단력이 약해지고 지나친 수용성으로 인해 타인에게 휘둘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성은 자신을 돕는 의지처이자, 힘의 근원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할 때는 오히려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행동력과 활동력이 떨어진다. 당연히 별 재미가 없다.
샤를은 언제나 아내 엠마에게 온화하고 자상하게 대하며 그녀의 요구를 묵묵히 수용하지만, 엠마가 필요로 하는 감정적 공감이나 애정 표현은 전혀 해주지 못한다. 정인의 과잉으로 인해 샤를은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엠마에게 심각한 답답함과 고독을 안겨주는 요인이 된 것이다.
샤를의 오행적 기질은 주로 토(土)라고 할 수 있다. 토의 기운은 안정성, 인내심, 그리고 성실함을 뜻한다. 샤를은 소박한 의사의 삶에서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모험이나 야망보다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며, 토의 기운으로 인해 변화나 모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토에 대한 집착은 신살적인 측면에서 변화와 이동을 뜻하는 역마살(驛馬殺) 이 거의 없거나 극히 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과거 고향에서 나고 자라서 죽는 것이 복이라고 믿었던 시대엔, 역마살은 매우 흉한 살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역마는 필수적인 운명의 요소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으며, 역마가 없으면 그냥 난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변화없이 살게 되는 운명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역마살은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다. 하지만, 샤를은 역마살의 기운이 약하여 새로운 환경이나 도전, 변화를 두려워하며, 안정적이고 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게 나타난다.
샤를이 아내 엠마의 불만과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 이유 역시, 어쩌면, 역마살의 부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에서의 변화와 도전을 기피하고, 아내의 요구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이는 엠마의 불만과 외도, 소비 과다로 인한 파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샤를 보바리의 사주적 특징은 정재와 정인의 강한 안정성 및 수동성, 그리고 역마살과 같은 적극적 변화의 부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성실하고 선량한 인물이지만, 적극성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향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샤를은 아내 엠마가 불륜과 사치로 비극을 향해 가고 있었음에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하다 결국 비극을 막지 못했다. 사주명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를의 비극은 그의 기질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안정 지향적이고 소극적인 기운으로 인해 그는 주변의 변화를 파악하거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과 가족의 파멸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 것이다.
엠마가 죽고 난 후, 샤를은 엠마의 애인이었던 로돌프와 대면하게 되는데, 그 때에도 샤를은분노다운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다.
“그래요, 이젠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태어나서 여지껏 한번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단 한마디 엄청난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이 운명을 인도한 당사자인 로돌프에게는 그 같은 처지에 놓인 사내가 하는 말 치고는 어지간히도 마음 좋게 들릴 뿐 아니라 우스꽝스럽기조차 했고 약간 비굴하게도 느껴졌다.
정인(正印)은 보호, 배움, 수용의 기운이다. 샤를은 엠마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을 묵묵히 수용한다. 그러나 그 수용은 능동적 보살핌이 아니라 무능과 우유부단함으로 드러나고, 결국은 파멸을 피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