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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토 오행의 철학과 성찰 -콘스탄친 레빈

by 현현

처음, 『안나 카레니나』를 사주명리학적으로 분석할때, 이렇게까지 길어질줄은 몰랐다. 다른 소설들은 그냥 한편의 글로 인물들을 종합해서 분석하는것으로 끝났는데, 유독 안나 카레니나는 개별적인 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좀더 심도있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소설들도 좀더 깊이 있게 살펴봤다면, 중요 인물들 한사람 한사람을 좀더 자세하고 깊이있게 분석했을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전에 다뤘던 작품들에서도 역시 중요 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좀더 보완해 볼 생각이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아직 중요한 등장인물들이 더 남아 있다. 안나의 오빠 스티바, 스티바의 아내 돌리, 레빈의 형과, 레빈의 사랑 키티 등 다른 인물들도 흥미로운 점이 있지만, 이제, 오늘 소개하는 레빈을 끝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사주명리학적 분석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럼,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중요 등장인물, 콘스탄틴 레빈에 대해서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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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은 매우 특별한 등장인물이다. 일단, 톨스토이 자신의 자전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인물이며, 레빈의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부인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곧바로 레빈이라는 인물이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고 한다.

흔히, 성자, 도덕가, 사상가, 철학자로 인정되는 톨스토이의 모습을 닮았다니, 그의 성격과 성정이 어떠할 것인지는 대략 짐작이 될 것이다. 일단 그는 생각도 많고 사색도 많이 한다. 음양오행에서 지적인 활동, 능력은 보통 수 오행의 특성이다. 레빈은 수(水)의 기운을 많이 타고난 인물로, 지적이며 내성적이고 깊은 사색을 하는 성격이다.


수(水)가 갖고 있는 자연과 생명력의 의미는 귀족 출신인 그가, 도시 사교계에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농장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진리를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은 물의 속성인 지혜와, 유연함, 그리고 고독과 쉽게 연상된다. 옛날 말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고 하는것처럼, 레빈의 도덕적인 기준과 삶에 대한 엄격함은 종종 주변사람들과의 조화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물 오행의 특성이 강한 사람들은 종종 자기만의 세계에 잠겨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깊이를 탐색하는데, 레빈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사회 제도의 허상을 분석하며 자기 신념을 찾아 헤맨다. 동시에 물이 갖고 있는 음적인 면은 우울과 두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는 한때 인생의 무의미함에 절망하여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번민과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것은 실제 사주명식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수의 기운은 자주 우울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풍수적인 관점에서 강가가 보이는 집에서는 우울증이 쉽게 생겨난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형태를 바꾸며 흐르듯 레빈의 성격도 유연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강하다. 레빈은 원래, 키티를 사랑했다. 키티는 안나의 시누이의 동생이다. 다시 말해, 안나 오빠 와이프의 여동생인 것이다. 하지만 키티는 브론스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브론스키가 무도회에서 까만 드레스를 입은 안나에게 반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레빈도 키티도 모두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하지만, 상심에 빠진 키티가 브론스키와 연결되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을 알게 된 레빈은 다시 키티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을 고백한다. 레빈의 처음 고백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키티 역시, 두 번째 레빈의 청혼은 받아들이며,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소설의 첫 문장에 등장하는 “행복한 가정”처럼 온전하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레빈과 키티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모범적인 커플이 된다.


레빈의 십성 구조를 살펴보면, 우선 정인(正印) 과 편인(偏印) 의 인성(印星)이 강한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정인은 지식과 온화한 품성을 나타내며, 레빈은 학문적으로도 관심이 많고(농업 연구나 저술을 하는 모습) 마음씨도 곧고 정직하다. 또한 편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범한 통찰과 고독한 탐구심을 의미하는데, 레빈은 평범한 귀족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농민 생활을 이해하려 하고, 종교나 철학 문제를 혼자 파고드는 면에서 편인의 기질이 뚜렷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유명한 풀베기 장면은 레빈이 다른 귀족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뚜렷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짧지만 아름답게 그려지는 장면인데, 레빈이 다른 농부들과 함께 열을 맞추어 커다란 낫(scythe)을 휘두르며 풀을 베는 모습이 그것이다. 농부의 일을 농부들과 함께 평등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어쩌면 톨스토이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유명한 풀베기 장면에서 매우 심도있게 묘사되고 있다.


"레빈은 풀을 베면 벨수록 망각의 순간을 더욱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때는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자체가 생명으로 충만한 그의 몸을,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식하는 그의 몸을 움직였으며, 그가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시원스럽게 진행되었다. 이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만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동작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때, 작은 풀숲이나 괭이밥 덤불을 깍아 내야 할 때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 . 레빈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누군가 그에게 몇 시간이나 풀을 벴느냐고 물으면, 그는 30분 정도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이 장면을 통해, 레빈은 신분이나 계층을 무시하고 진정한 노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스스로 경험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정한 인성의 발현이라고 볼 수있다. 조화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성의 힘은 레빈을 다른 귀족들과 차별화 시키며, 농민들과 더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성이 과도한 것은 때로 자신의 표현력과 활동성, 명랑성을 제한하며, 현실감각을 읽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인성으로 인해 식상의 표현력이 떨어진 것은 레빈이 키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레빈은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키티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초크로 테이블 위에 문자를 적어서 고백을 한다. 소설과 영화에서 이 장면은 매우 낭만적으로 표현되었다.


레빈은 초크를 들고서 테이블위에 글자를 적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그는 이렇게 말하며 머리글자를 썼다. 당, 그, 없, 내, 대, 그, 영, 그, 거, 뜨, 아, 그, 그, 뜻. 이 글자들은 이런 뜻이었다. ‘당신이 그럴 수 없다고 내게 대답했을 때, 그것은 영원히 그럴거라는 뜻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때만 그렇다는 뜻이었습니까?” 상식적으로 누가 이런 암호같은 표식을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만은, 레빈의 사랑이었던 키티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역시 비슷한 암호로 레빈에게 자신의 뜻을 전한다. 그것을 이해한 레빈은 행복으로 머리가 아득해지며, 온전히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어떤 면에서 말은 식신이고, 문자는 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레빈은 식신보다는 인성을 써서 사랑을 고백한 셈이다. 다행히 키티는 이 어색하지만 진실한 사랑의 표현에 감동하며 이를 수락한다. 이 장면은 레빈이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이이기도 하다.


레빈에게는 비견(比肩) 과 겁재(劫財) 의 에너지도 엿보인다. 비견은 자기와 동등한 힘, 자신과의 싸움을 의미하고, 겁재는 그보다 강한 경쟁이나 집착을 뜻한다. 그는 이상주의적 열정으로 스스로 농민들과 같은 노동에 뛰어드는데, 이는 비견의 자기 동등화 행동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형인 니콜라이 와의 관계나, 안나의 오빠이자 자신의 친구인 스티바(오블론스키)에 대한 복잡한 심경 등에서 겁재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겁재는 때로는 재물을 잃거나 관계에서 상처를 입는 것과 연결되는데, 레빈은 형의 죽음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키티와의 연애 초기 실패로 사랑을 빼앗긴 듯한 상실감을 겪게 된다.


하지만, 레빈은 이러한 상처를 인성의 힘으로 극복하고 내면을 성장시키게 된다. 이는 비견격 사람이 겁재를 이겨내고 자신을 한층 성숙하게 만든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십성 중 식신(食神) 의 역할도 살펴볼 수 있다. 식신은 생산성과 온순함, 그리고 삶의 소박한 즐거움을 뜻하는 별인데, 레빈은 궁극적으로 농사짓고 가족과 지내는 단순한 생활에서 행복을 찾는다. 이는 식신이 주는 안정과 만족에 해당한다. 특히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는 식신생재(食神生財) 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식신이 재성을 생한다는 것은 자녀(식신)를 통해 가정의 행복(재성)이 커진다는 의미인데, 레빈은 아들의 출생을 계기로 삶에 대한 관점이 더 긍정적으로 변하고 신에 대한 믿음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레빈의 명식은 편인격 내지 식신격으로 추정해볼 만하다. 편인격이라면 그의 삶의 핵심 동력이 독자적인 사유와 관념 추구에 있었음을 설명해준다. 실제로 레빈은 소설 전반에 걸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천착하고 있는데, 이것은 편인격의 인물이 흔히 보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인격만으로는 생활의 즐거움이 부족한데, 레빈은 결혼과 함께 식신격의 행복을 발견한다. 만약 그의 격국이 식신격으로 전환되었다고 보면, 그는 생명과 현실에 발을 딛고 만족을 아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는 그가 이상만 좇던 철학자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변모한 점과 일치한다. 레빈의 삶에 있어 용신은 결국 토(土)의 안정과 화(火)의 깨달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과 목의 기운이 많아 생각과 정이 넘치던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현실을 지지해줄 토 오행(관계와 책임)과, 삶에 빛을 비춰줄 화 오행(믿음과 의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주에 토 오행이 부족하거나 없으면, 일단 삶이 안정되지 못할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토는 다른 모든 오행의 발판이자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화에서, 키티와의 사랑을 통해 꾸린 가정은 그에게 토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혼을 통해 레빈은 비로소 사회와 연결되고 발 딛고 설 땅을 얻었으며, 가정을 책임지면서 방황하던 생각들이 비로소 구체적인 통찰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레빈이 자신의 병든 형을 찾아갔을 때, 그의 상념은 매우 철학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레빈은 그의 말을 들으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 온갖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그 생각들의 결말은 오직 하나,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 모든 것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은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띠고서 처음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죽음, 잠결에 신음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때로는 하느님을, 때로는 악마를 부르는 저기 사랑하는 형 안에 있는 이 죽음은 그가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죽음은 바로 그 자신 안에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30년 후,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


이후에도 레빈은 때떄로 삶의 무상함과 무의미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들을 겪지만, 최종적으로 하늘의 계시처럼 신앙의 마음을 찾게 된다. 종교는 흔히 빛으로 비유된다. 이러한 종교적인 신앙심은 수의 기운으로 차갑고 어두웠던 레빈의 내면을 빛으로 밝히고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로써 레빈의 사주는 전반부에 과도한 수기운으로 차가웠다가, 후반부에 토와 화를 얻어 균형과 온기를 되찾는 구조를 이루게 된다. 레빈의 인생은 고독한 탐구의 전반기를 거쳐, 사랑과 가정으로 인한 안정된 삶의 시작, 그리고 삶에 대한 신념이 확립되는 시기로 요약될 수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뜻하는 바가 커서 당시의 사회제도에 대한 개혁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키티와의 사랑에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방황했었다. 이때 그의 운세는 인성 대운에 속해, 머리로는 풍요롭지만 현실은 쓸쓸한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키티와 재회하여 결혼한 시점부터 그의 인생의 행로가 달라지게 된다. 실제로 레빈은 결혼 생활에서 소소한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고, 갈등도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성숙함을 보인다


레빈의 사주는 초반에는 한겨울의 냉수처럼 싸늘하고 움직임이 한정적이었다가, 점차 봄물이 풀리고 여름의 온기를 얻어가게 된다. 청년 시절 겪은 외로움과 번민은 마치 겨울 물속에 홀로 잠긴 얼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랑에도 실패하고(키티에게 거절당함), 형과의 관계도 쉽지 않던 그 시절, 레빈의 내면은 차갑고 어두운 물결이 소용돌이로 가득했다. 하지만 키티와 재회하여 사랑을 확인한 순간, 그의 인생에는 봄의 해빙이 찾아왔다. 꽁꽁 언 호수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면 얼음이 녹듯이, 레빈의 마음은 사랑의 기쁨으로 녹아내렸고 사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회복하게 된다. 가정에서의 행복과 노동의 보람으로 레빈은 차츰 땅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안정되고 튼튼해져 갔다. 그러나 인생의 여름 한복판에, 그의 사상에 큰 폭풍우가 몰아쳤으니 형 니콜라이의 임종과 그로 인한 실존적 위기였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 앞에서 레빈은 처음으로 삶의 무의미라는 한겨울의 폭풍을 맞는다. 그는 깊은 슬픔과 공포에 젖어 밤낮으로 허무의 그림자에 시달린다. 다행히 이 어두운 시기는 레빈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극복된다. 죽음으로 인해 어두워진 내면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다시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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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며 레빈은 설명할 수 없는 경이와 감사의 감정을 느끼고, 이후 길을 걷다 문득 계시와 같은 영적 체험을 한다. 그가 그렇게 갈구하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단순한 진리(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삶)에서 깨닫는 장면은, 마치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태양이 그를 비추는 것고 같았다. 이때 그의 삶은 최종적인 여름, 즉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들어선다. 이후로도 일상의 자잘한 걱정과 의문은 있겠지만, 그는 근본적인 삶의 방향에 확신을 얻었기에 예전처럼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레빈은 다른 인물들과 달리 역마살이나 도화살보다는 화개살이나 학당귀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캐릭터로 보인다. 화개살은 고독한 예술가나 수도승의 별로, 세속과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경향을 준다. 레빈이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시골에서 홀로 사색하고, 다른 사교계 인물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점은 화개살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사교 모임에 나가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연애 면에서도 서툴러 한동안 홀로 상처를 삭였다. 또한 삶의 근본 문제를 놓고 혼자 끙끙 앓는 모습은 마치 속세를 등진 은둔자처럼 비친다. 이러한 면모가 있었기에 레빈은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고독과 우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당귀인은 학문과 배움을 좋아하는 별인데, 레빈은 정규 교육 외에도 독자적으로 책을 쓰고 농업 이론을 연구하는 등 지적인 열정이 높았다. 그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사회 제도 개혁이나 철학적 물음 등 진지한 것들이었고, 이는 그가 평범한 귀족들과 달리 학구적 삶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학당살의 영향으로 그는 끊임없이 배움과 깨달음을 추구했고, 결국 삶의 지혜를 터득하기에 이른다.


레빈에게 역마살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방황하며 이곳저곳 여행을 하거나, 키티의 치료를 위해 독일 슈클로츠부르크(요양지)까지 동행한 일화 등 이동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한 곳에 정착해 뿌리내리는 성향이 강했다. 도화살의 경우 레빈은 미남이지만 화려한 매력으로 여러 여성을 끄는 타입은 아니었고, 오직 키티에게만 순정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주요 인물처럼 도화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건전한 사랑을 일궈냈다. 흥미로운 것은 레빈이 겁살이나 망신살과 큰 인연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겪은 불행은 주로 내적 고뇌였지, 사회적 망신이나 큰 재산 손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볼 때 그는 비교적 평탄하고 훌륭한 삶을 사는 귀족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의 팔자가 결국 큰 흉살의 작용 없이 안정권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명리에서는 흔히 말하길, 원진살이나 겁살 등이 적게 작용하는 사람이 대인관계 복이 좋고 큰 파국을 피한다고 한다. 레빈은 키티와의 관계도 두 번의 우여곡절 끝에 원만히 성사되었고, 친구나 하인들에게도 비교적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결국 레빈의 이야기는 화개살의 고독을 학당살의 지혜로 극복하고, 인연의 복으로 구원받은 삶이라 정리할 수 있다. 명리적 신살이론으로 보면, 고독한 별 아래 방황하던 그에게 천을귀인이 찾아와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여기서 귀인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키티와 아들, 그리고 영적인 깨달음이었다. 이들로 인해 레빈은 고독한 성찰에서 빠져나와 가정과 사랑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레빈의 모습은 문학적으로도 한 인간이 사랑과 신앙을 통해 구원받는 이야기로 깊은 감명을 준다. 명리와 문학을 통합해 본다면, 레빈은 애초에 팔자가 험난하기보다는 수승화강(水昇火降) 의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구조였고, 큰 흉살 없이 순리대로 그 길을 완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레빈이 깨닫게 되는 삶의 성찰은 어쩌면 우리가 늘 일상속에서 함께 경험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레빈은 뭔가를 깨닫고, 그것을 아내인 키티에게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낸 키티때문에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자신의 내적인 고백이 이어진다.


"아냐, 말할 필요는 없어." 그는 아내가 그의 앞을 지나쳐 가자 생각에 잠겼다. '이건 비밀이야. 이것은 나에게만 필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비밀이야'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안니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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