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믿는다(Believe). 우리는 사랑한다(Love). 우리는 욕망한다(Libido).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Liberty).
표면적으로 보면 이 네 단어는 서로 전혀 다른 의미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믿음은 종교나 신념과 가깝고, 사랑은 대표적인 감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능을 의미하고, 자유는 정치나 철학의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네 단어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나 그리스어 라틴어 단어가 갖고 있는 어원은 고대 인도유럽어와 관계가 있는데, 이 단어들에 공통된 어원역시, 인도유럽어의 고대 어근leubh- 과 관계가 있다.
이 뿌리의 의미는 "기꺼이 하다, 사랑하다, 원하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네 단어의 공통된 의미는 일종의 "끌림"(attraction)에 있다. 물론, 나중에 attraction에 대해서도 설명하겠지만, 끌리는 행위를 지칭하는 어원은 매우 뿌리가 깊은 의미의 원천이다.
흔히 사람을 믿을때, 혹은 종교적인 신념에 대해서 말할때, believ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Believe’는 믿음, 신념이라는 의미와 관계된 라틴어 credere와는 좀 다르다. 크레딧 카드 credit card를 신용카드라고 하는데에는, 크레딧credit의 어원에 믿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credere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성에 따른 믿음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이다.
believe의 고대 영어 geleafa와 게르만어 laubjaną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좋다고 받아들이다’는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누군가를 믿을때, 그 근거를 항상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따지기는 쉽지 않다.
이 어원에 해당하는 leubh-는 인도유럽어의 뿌리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사랑하다, 기꺼이 하다, 신뢰하다"는 뜻이다. 수천년전부터, 믿는다는 말은 결국 ‘마음으로 끌리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 였던 셈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사랑의 관계에서 신뢰는 중요하다. 믿음이 깨지면 사랑도 깨진다. 그도 그럴것이 결국 사랑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원적으로도 믿음과 사랑은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 ‘Love’ 는 믿는다는 believe와 어원이 동일하다. 한국인 입장에서도 love와 believe의 소리가 은근히 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두 단어의 핵심은 바로 인도유럽어 leubh-이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흔히 믿음과 사랑을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믿음은 신뢰와 사회관계이고, 사랑은 사적이면서 은밀하기도 하고, 또 본능과 관계된 감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사랑의 핵심이 바로 믿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건, love와 believe가 둘 다 ‘이성적인 확신’보다는 ‘감정적인 차원의 받아들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욕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와 문학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들은 결국 욕망과 나선의 고리를 만들며 드라마틱하게 등장한다. 보봐리 부인의 사랑이나,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 오네긴의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등 모든 사랑은 본질적으로 욕망과 얽혀있다.
욕망은 쉽게 desire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의미에서, 프로이트가 사용했던 리비도libido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리비도는 어떤 의미에서 사랑이 욕망과 얽혀 있음을 단어 자체로 잘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Libido’는 흔히 성적 욕망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로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인간 정신 에너지의 근원으로 보았다. 라틴어 어원에 해당하는 libere (기꺼이 하다, 원하다) 또는 libet (…하고 싶다)에서 파생되었는데, 역시 인도유럽어 leubh-와 관계가 있는 단어다. 그래서, 결국 믿음과 사랑과 욕망의 리비도는 모두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는 알수 없는 끌림의 메카니즘이 있다.
한 단어를 더 추가하자면, 자유를 의미하는 liberty가 있다. Liberty는 라틴어 liber (자유로운)에서 파생되었는데, 역시 리비도에서 본 것처럼, 이 단어도 leubh-에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법적 권리인가? 사회적 조건인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할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유는 억압이 없는 상태, 구속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의 끌림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자유라는 단어 liberty 에는 사랑과 믿음과 욕망의 의미가 뿌리를 두고 있는 동일한 어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가장 근원적인 의미의 "끌림"이 있다. 상대에 대한 끌림은 믿음과 사랑으로, 욕망으로, 그리고 자기 내면의 끌림은 자유로 발현되는 것이다.
믿음, 사랑, 욕망, 자유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모두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는 ‘끌림의 힘’에 기반한다. 믿음은 끌림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사랑은 끌림에 대한 헌신이며 욕망은 끌림의 본능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는 그러한 내면의 끌림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단어의 어원적 뿌리는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은 결국 ‘끌리는 것’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비록 영어의 사례를 들긴 했지만, 한국어에서도 비슷한 언어적 관계가 발견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 사랑의 매력은 육체적 욕망을 수반한다.이런 차원에서 "끌리는 것"과 "꼴리는 것"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