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지역 15년 차 고인돌이 보도하는 현장 리포트
미국의 상징적인 도시 중 하나이며 실리콘밸리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가 “안갯속으로 잠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비던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는 이제 유령 도시와 같이 조용해졌다. 실제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의 최고치인 6.3%의 인구 감소율을 보였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인수한 트위터의 본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후 샌프란시스코를 비유하여 마치 대재앙 이후의 도시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워킹 데드]의 에피소드를 촬영해도 될 거 같다고 언급했다. 팬데믹이 종식이 발표된 지 거의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아직까지 회복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MZ 세대들은 자동차 중심의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깊은 문화생활과 발달된 대중교통, 그리고 활기찬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도시들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MZ 세대의 신규 취향 차이만은 아니었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시기에 노동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한 MZ 세대는 내 집 마련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2009년 이후 향후 5년간 미국에 인구대 홈 오너쉽 비율은 꾸준히 내려갔다), 이전 세대들 보다 더 오래 기간 동안 주택을 렌트하는 걸 선호하였다. (미국은 전세 제도가 없기 때문에 집을 구매하지 않으면 렌트하는 옵션 밖에 없다). 이렇게 렌트를 선호하는 젊은 노동층은 학군이나 치안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활기찬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해 주는 도심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었고, 그래서 MZ 세대의 노동인구는 자연스럽게 도시로 모여들게 되었다. 미국에 도시들은 (유럽과 아시아와 달리) 역사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밀집되어 있고, 샌프란시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갑자기 도시에 모여든 노동인구의 MZ세대들은 그러한 미국 도시들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샌프란시스코에도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어쩌면,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가장 심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은 도시일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2009년부터 약 11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긴 경제 호황을 경험하였고, 이 호황에 주도요소가 된 IT 산업은 실리콘밸리 지역 및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큰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많은 새로운 IT 스타트업들이 젊은 인재들이 모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을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는 MZ 세대가 이끄는 새로운 IT 스타트업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트위터, 우버,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OpenAI, 리프트, 노션, 피그마 등 쟁쟁한 신생 유니콘 기업들이 2009년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2023년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62개의 유니콘 기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에 14개의 신생 유니콘 기업이 존재한다는 보고와 대조해 보았을 때, 서울시 면적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은 작은 도시에 유입된 신규 재산이 막대 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샌프란시스코의 눈부신 경제 성장은 이 도시에 심각한 문제들을 안겨주었다. 이미 도심 개발이 완료된 샌프란시스코에 이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지탱할 수 있는 주거 시장은 크게 남아있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처음부터 공급이 부족한 시의 주거 시장에서 렌트비는 폭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을 하지 않고 렌트를 선호하는 미국의 MZ 세대 덕분에) 샌프란에 월세는 팬더믹 이전까지 미국에서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샌프란시스코를 매우 신속하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로 기존 주민들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한화 1억 원 이상의 평균 연봉을 받는 IT 회사들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임대료 덕분에, IT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기존 시민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집에서, 그리고 자신의 동네에서 쫓겨나기 시작하였다. 한 보도에 의하면 세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가족이 차에서 노숙하는 상황도 생겨나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결국 샌프란시스코 도시 전체를 IT 산업 한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세대들이 전반적으로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렌트를 하는,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도시 (transient city)로 둔갑해 버렸다. 이러한 한 인구층에 도시 전체가 독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이 해당 인구층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샌프란시스코에도 지각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팬데믹 이후,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현상은 이미 IT 산업에 독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완벽한 폭풍"으로 몰아갔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은 사무직 업종에 원격근무를 도입해야 했으면, 팬더믹의 종식이 선언된 이후에도 많은 기업들은 원격근무 옵션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직원 대부분이 사무직이며, 문화적으로 새로운 IT 기술에 더 익숙한 직원층을 보유한 IT 기업들은 다른 산업들에 비교하여 더 높은 비율로 원격근무 형태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 높은 임대료로 인해 고생하던 MZ세대 인력층은 원격근무를 통하여 더 저렴하고 더 안전하면서, 심지어 더 넓은 주거공간까지 제공해 주는 타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도 초반에는 내 집마련을 거부하던 세대층이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이제 주택 구입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비교적 매우 저렴한 주택비용을 요구하는 시골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인구감소는 더 탄력을 받기 시작하였다.
팬데믹이 종식 선언된 이후 타 산업군에 원격근무가 줄어들자 따라서 원격근무와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는 IT 업계의 수입도 감소하게 되었고, 또한 팬데믹 종식 이후 바로 찾아온 경기 불황으로 많은 IT 회사들이 대대적인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현상은 많은 IT 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큰 일자리 감소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상업 및 주거용 부동산 수요의 급격한 하락을 야기하게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2019년까지 4%도 되지 않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빈 사무 공간 비율이 2023년 현재 거의 30% 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도시들은 시의 예산에 대부분을 주택세 (property tax)로 확보하므로, 급격한 부동산 시장의 감소는 시의 예산에 큰 차질을 일으키게 된다. 얼마 전까지 적자를 예상하지 않던 샌프란시스코 시는 몇 달 전 수정된 보고서에 향후 2년간 대략 미화 $780M 달러 (한화 1조 원 정도!)의 적자가 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자 수도 감소하였으며, 이로 인해 대중교통 시스템 또한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예산변화와 인구감소 때문에 시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많은 도시 서비스들을 감축해야 됐으며, 이에 시가 제공하는 경찰, 소방, 및 환경미화 서비스들도 이 감축 대상에 포함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시 정부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산과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샌프란시스코는 사소한 절도가 만연해지고 있다. 다운타운에 있는 한 의류매장은 48시간 사이에 22번이나 절도 사건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곳곳 많은 상점과 백화점들이 문을 닫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IT 기업에 종사하는 MZ 세대들에게 독전적으로 의존하던 샌프란시스코는 순식간에 사무 공간을 축소하는 IT 기업들과 교외, 또는 타주로 이주하는 MZ 세대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 예산의 감소로 이어지고, 예산 감소로 인해 도시 서비스가 줄어들며, 이런 현상은 범죄율을 증가시키며, 결국 상권까지 붕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또한 이렇게 붕괴된 시스템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게 만드는 파멸의 고리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제 샌프란시스코는 끝장난 걸까?
2023년 5월 현재, 이러한 샌프란시스코의 붕괴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상태라 앞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현재까지 추측으로는 다음 중 하나의 시나리오가 일어나지 않을까 예측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기업 운영진과 직원들 사이에서 원격근무를 놓고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원격근무 형태의 근무를 줄이려는 운영진과, 원격근무를 통해 업무 유연성을 높이려는 직원들 사이에서 아직 원격근무 제도의 미래가 분명하게 결정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경기 불황은 기업 운영진의 협상력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샘 알트만이나 일론 머스크 같이 원격근무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저명한 기업인들을 통해 원격근무 제도의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 해 지고 있다. 만약 원격근무 제도가 팬더믹 전 레벨로 돌아가게 된다면, 미국의 많은 IT 업종 노동력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격근무 제도가 팬더믹 이전 레벨까지 다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않다. 이미 몇몇 업무군이 원격근무를 통해서 향상된 업무율을 증명한 바 있고, 이러한 현실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바로 팬데믹 이전처럼 많은 노동력이 재유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사상 제일 큰 세대로 분류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육아와 집 구입을 위해 교외로 이동을 끝낸 상태이고, 그러기에 IT 업계에 오프라인 업무군 직업이 회복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로 노동인구가 대거 복귀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는 힘들듯 하다.
원격근무 제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IT 기업들이 꾸준히 타 지역으로 분포되어 더 이상 실리콘밸리 지역에 밀집되지 않는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아마 파멸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2008년에는 자동차 산업이 중심이던 디트로이트가 유사한 파멸의 고리에 빠져 도시가 경제적으로 추락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가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유력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지난 50년 넘게 실리콘밸리 지역은 여러 세대의 쟁쟁한 IT 기업들과 깊은 생태계를 구축해 왔고, 이로 인해 실리콘밸리에 밀집되어 있는 IT 생태계가 한 번의 경제불황 때문에 분산되는 건 가능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샌프란시스코가 완전한 파멸까지 도달하기는 힘들듯 하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의 인구감소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맨해튼의 160만 명이나 뉴욕시 전체의 840만 명, 엘에이시의 380만 명의 인구에 비하여,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겨우 대략 80만 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다양한 산업의 인력을 유치하면서 과거와 같이 심각한 주거 부족 현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주거 공간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꼭 필요한 과정인 듯하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의 현시장인 런던 브리드는 빈 사무실 공간들을 주거용 유닛으로 변환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많은 주거 유닛이 빠른 시일에 새로 시에 추가되고,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샌프란시스코에 다양한 산업을 다시 끌어당길 수 있는 요소가 될 거 같다.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싼 실리콘밸리 및 주변 지역들은 샌프란시스코처럼 큰 인구 및 경제 감소를 경험하지는 않았고, 그러기에 주변 도시들의 생태계를 힘입어 샌프란시스코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는데 도움을 줄듯 하다.
실제 결과는 어떻게 될까? 위에 시나리오들을 조합한 결과가 될 수 도 있고, 아니면 이 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또 다른 미래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 결과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래 댓글로 알려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