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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진심으로, 다만 필요한 부분에서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하진 말고!

by 과니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무리 철두철미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빈틈은 생기고, 틈새는 벌어질 수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기계라고 하더라도 일시적 오류가 생겨버리면 프로세스가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는데, 인간은 완할 수 없다. 애초에 '완벽'이란,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단어라고 생각해야 맞으니까.


그렇기에 CS에서도 실수는 나온다. 오해로 생길수도 있고, 정말로 오안내가 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실수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라고 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할 때도 온다. 여태까지의 모든 회차에서 무슨 짓을 하면 대형사고가 나는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주 축약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확답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확답하거나, 확답해줘야 하는 부분에서 확답하지 않았을 때 사고는 발생한다. 오늘 할 말은 당신이 어쩌다보니 실수를 했을 때 대응해야 하는 방식이다. 또 아주 축약해서 정의하자면,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당신이 CS의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다면 해야 하는 부분이다.



1.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세요


고질적으로 사과를 못하는 사람들을 안다. 사실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 사과는 CS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이자 소양이다. 당신은 초등학생이 아니다. 선생님이 와 가지고 "철수 사과해!" / "미안해." / "민수 너도 사과해!" / "미안해." / "둘이 악수해!" 하면서 화해를 어거지로 이끌어내는 건 어릴적에 졸업해야 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째 나이가 먹을 수록 변명은 늘고, 진심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아니 미안해 미안하긴 한데 그건 니가 ****~" 이건 그냥 사과하는 수준이 초등학생때에서 올라가지 못했다는 소리다. 논란을 만들어놓고 나서 사과문을 올리자 더 큰 논란으로 번지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더 화를 돋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니가 오해한거고"

오해? 무슨 오해? 잘못 이해한 걸 오해라고 하는데, 절대 다수가 동일한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화내고 있다면 그건 오해가 아니라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이다. 혹여 "아니 실수했어"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실수니까 잘못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들이미는 경우도 간혹 보이는데, 잘못이 맞다. 고의던 고의가 아니던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아놓고서 그런 말들로 넘어가길 바라는건 그냥 사과를 모르고 어영부영을 안다는 소리와 같다. 그리고 이런 모든 문제들은 '자존심'에서 나온다.


'자존감'과 '자존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늘어나는 느낌인데, 지금 이 자리에서 자존감과 자존심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는 뭐하고, 자존심에 대해서만 먼저 논해보자. 자존심은 나쁜게 아니다. 생각보다 자존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사람의 업무적 능력과 능률에도 여러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자존심이 남에게 침해받기 싫다는 폐쇄적 이기심이랑 짝짝꿍을 하기 시작하면 이제 골이 때린다. "내가 왜 사과를 해야해?'', "나만 잘못한거 아니잖아?",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거 아냐?", "왜 나한테만 그래?" 듣기만 해도 피곤한 소리가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 정확한 자각은 회피한 채로 표출되어 나온다.

보통 이런 성격을 가진 상담원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팀장이나 관리자에게 대신 통화를 나가달라고 부탁하거나, 자기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거나, 아니면 고객이랑 실랑이를 하면서 고객 화만 더 돋궈놓거나. 통화한 내역을 확인해 보니 상담원 본인의 잘못이 너무도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센터는 그 사람에 대한 인사평가를 하향시킬 수밖에 없다. 사실 고백하건데, 이런 상담원은 오래 근무하지도 못한다. 내가 왜 전화하는 상대방에게 할말 다 하지도 못하면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업무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대인관계도 상당히 피상적인 경우 또한 본 있다.

자존심 부리는 건 좋다. 본인이 그만한 능력이 있고, 그만한 경력이 있으며, 그 자리까지 오기 위해서 노력해온 시간들이 있다면 인정 받아야 하는게 마땅하고, 물개박수? 받을 만 하다. 하지만 A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B라는 실수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마치, 자기가 셀럽이니 마약 한번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연예인이랑 다를 바 없으며, 부자기 때문에 불륜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힘이 세기 때문에 쟤가 나한테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랑 동일하다. 끔찍한 소리좀 그만 해라. 그건 솔직히 '쓸데없는 자존심'도 아니고, 그냥 정신세계가 미취학 아동이랑 같다고 고백하는 것 같이 들리니까.



2. 사과하는 방법


살면서 이런걸 가르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잘못을 했고, 그로 인해서 당신이 받은 피해가 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있을 것이며, 그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또 앞으로는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사과다. '미안하긴 한데'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어'가 맞다. '나만 잘못한거 아니잖아?'가 아니라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선 잘못한게 맞아'다. '왜 나한테만 그래?'가 아니라 '니가 화낼만 해.'가 나와야 맞고,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거 아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네 기분이 얼마나 안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과를 하는 건 마치 계급사회에서 아랫사람만이 행하는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직급이 높던지, 나이가 많던지, 계급이 높다고 사과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입장에서 둘 생각이 없단 소리와 같다. 이해가 가는가? 자존심이 쓸데없는 부분에서 센데 상대방과 자신을 동등한 관계로 놓지 못하는 상담원들은, 자신이 고객보다 '을'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지라 오래 버티지 못한단 소리다. 누구도 상담원에게 '을'의 입장에 있으라고 칼들고 협박한 적이 없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미리 말씀을 드렸다면 번거롭게 만들어드릴 일이 없었을 텐데, 추가적으로 한 가지를 더 보완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실까요?"


"고객님께서 얼마나 불쾌하셨을지 제가 감히 이해한다고는 말해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나머지 심사에 대해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볼 수 있도록 하겠으며, 혹여라도 특이사항 있을 시 지체없이 재연락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시간적인 낭비나 스트레스를 주게 만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짚고 진심어린 사과를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적다. 물론 없진 않다. 화가 사그라들지 않았거나 그 정도의 사과로는 용서해줄 수도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나 또한 고객에게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고객에게 필요한 서류에 대해서 정리한 문자를 보내준다는 걸 아예 다른 고객에게 보내버려서, 서류 멀쩡하게 갖춰놓고 심사받던 고객님 한 분이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까지 가게 만든 일이 있었다.


- 지금 저한테 문자 보내셨잖아요 사업자등록증 필요하다고. 그래서 받으러 가고 있는데요?
"아뇨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해당 서류는 이미 저희 쪽에서 조회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제출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문자를 잘못 보냈습니다."
- 저는 지금 담당자님이 보내주셔서 당연히 내햐 하는 줄 알고 운영하고 있던 매장까지 잠깐 정지하고 가고 있는건데요? 더 빨리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면 제가 기분이 나쁠까요 안나쁠까요?
"... 당연히 아주 많이 불쾌하실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 실수고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 서류 안 떼도 된단 소리죠?
"맞습니다 고객님. 현재 심사 단계는 -에 있고 나머지 부분 빠르게 처리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불편을 끼쳐드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 됐어요. 조심하시고 나머지나 처리해주세요.


위의 대화를 본 당신에게,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지 묻고 싶다. 나는 사실상 고객의 태도에 속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고객은 내게 본인의 매장을 잠깐 닫아놓음으로서 발생할 수 있었던 금전적 손실에 대해서도 탓하지 않았고, 본인이 서류를 떼오려고 나가면서 소요되었던 시간에 대해서도 별도의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한숨이나 쉴 수 있고 말투나 목소리가 퉁명스러울 수는 있지만, 내가 한 사과과 본인이 받아들여줄 수 있는 범위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화를 내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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