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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통화자 민원응대 (1)

니즈 파악과 법적방어

by 과니
"나는 거기서 XX월에 연장하면서 상환하면 된다고 해서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뭐라시는 건데요!"


IB쪽에서 난리가 났다. 고객이 대출금의 차액을 상환해야 하는 시기에 대해서 안내를 받고 걱정도 안하고 지내고 있다가, 중간에 갑자기 대출금의 상환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아서였다.


조금 더 간단하게 말해보자. 고객이 은행에 특정한 목적으로 1,000만원을 빌려놓고, 800만원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럼 나머지 200만원은? 개인이 특정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쓰게 될 소지가 있다. 대출 상품의 종류에 따라 그럼 이 차액분을 다시 우리 은행에게 돌려달라고 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데, 고객은 본인이 기존에 물어봤을때 답변받은 시기보다 훨씬 기간이 빨라 절대로 갚을수가 없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기간은 2월이었는데, 문자는 '10월까지 상환하지 않으면 기한이익상실'이라는 답변이 들어온 상황이다.


IB 직원의 녹취를 들었다. 11분간 고객은 언성이 높아졌고, 변호사를 언급하고, 신문고를 말했다. 법적인 대응을 암시하거나 대외기관에 대한 언급이 들어가다보니 IB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녹취를 끝낸 뒤 일단 IB 직원에게 가서 말했다. "OO님이 잘못한 게 없는데 굳이 고객님에게 죄송하다는 답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세로 나가지 마세요."


13화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과는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본인이 잘못하 것도 없는 부분까지 사과하라는 말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다. 첫 번째로 현행법상 사과를 잘못하면 본인이 잘못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서 '본인의 잘못이라 인정했다'고 추정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억울하잖아? 해당사항 빠르게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기만 해도 고객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래 잘못한 사람은 나랑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당 사항에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부분은 '번거롭게 해드린 점'이지 다른 부분이 아니다.


기존에 고객이 우리 은행과 통화한 내역들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자 우리가 아닌 다른 외주사의 직원과 통화한 내역이 보여졌다. 냅다 다시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고객이 화가 날 만한 포인트가 있기는 했다. 고객 본인이 먼저 한참 전에 우리 은행으로 전화를 해서는 세세하게 물은 상황이었거든. 중도에 차액을 상환해야 하는게 맞는건지, 언제까지 상환을 해야 하는건지. 기간연장은 가능한지. 연장은 언제 신청하는지. 다만 통화를 모두 듣고 나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오해'를 할 수는 있어도 '오안내'라고 판단할 만한 부분은 보여지지 않았다.


고객의 물음에 기존 상담원은 정확하게 안내를 했다. "우리가 주기별로 점검을 하게 되는데 그때 차액이 있다면 상환을 해주셔야 한다"고. 다만 통화의 마지막즈음에서 고객은 (차액 상환의)시기를 물어봤는데, 상담원은 (기간 연장의)시기를 답해준 부분이었다. 시기를 물어봤고 시기를 답하는 대화는 오고갔지만, 그 어느 부분에도 주어는 누락되어있었다. 대화만 듣고서는 기간연장인지 차액 상환인지 모른다? 그런데 통화의 마지막즈음에 고객과 상담원의 대화 주제는 기간연장에 가까웠네? 심지어 상담원은 상담 초반에 차액 상환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한 거잖아?


나는 해당 통화 히스토리를 정리한 뒤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지금 상담들이 너무 답답하다면서 분명 XX월이라 답변을 들었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갚으라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며 따졌다.


"대출 상환에 대한 유예가 가능한지 물어보시는게 맞으실까요?"


고객이 듣고 싶은 대답이었는지 대번에 맞단다.


"차액을 지금 상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시란걸까요?


그러다 들려온 대답이 그거였다.


"예. 아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좀 썼어요. 근데, 아니 그래서 물어봤잖아요. 상환이 필요하냐고. XX월이라면서요. 지금 갚으라 그러면 전 못갚는다구요."


통화를 종결한 뒤 본사측으로 전달하며 말했다. '사실상 오안내가 되어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고, 법적 방어는 충분한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국민신문고, 변호사 대동, 법적 방어 등. 금융업 CS종사자들이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 있다. 하지만 암행어사가 출두해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관리는 딱히 처벌을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잘못한 게 없는 상황에서야 아무리 듣기 두려울 소리를 해봤자 딱히 무섭지 않다.

심지어 백번 양보해서 상담원이 정말로 오안내를 했고, XX월에 아닌 YY월에 갚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치자. 우리는 차액 상환에 대한 시기를 오안내한 것 뿐이지 '그때까지는 고객님께서 받으신 차액분을 개인적으로 운용하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게 아니다.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에 맞지 않는 용도로 고객이 자금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까지 은행이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고객에게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내게도 뭐 신문고에 민원을 넣든,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등의 말을 했다. 본인은 똑똑히 X월이라고 들었단다. 맞다. 상담사도 X월이라 얘기했으니까. 그런데 대출기간의 연장신청시기를 말한 부분이고, 분명히 그 전에 차액 상환은 필요하다고 답변이 된 부분이었다. 자기는 녹취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줘도 이건 아니라고 할거라면서 언성을 높이셨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특정 목적으로 돈을 빌려간 건 고객이었고, 우리가 대출을 받아달라고 부탁한 게 아닌 고객이 당행으로 대출을 받아간것이고, 기존 상담사는 명확하게 차액 상환을 해주셔야 한다-는 멘트를 언급했고, 고객은 그 부분에 대해서 무응으로 일관하지 않고 대답했다.


고객의 히스토리를 전달받은 본사에서는 리스크 매니저가 통화를 나갔고, 문자에서 받은 사항과 같이 12월에 상환해주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서는 결국 수긍하고 단순종결되었다. 만약에 매니저가 통화를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수긍하지 못할 것이었다면, 해당 녹취록을 들고 변호사를 찾아가던지 민원을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다고 해서 A라는 목적으로 받은 대출금에 대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 본인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통화 내역은 내가 볼때는 어디에 갖다줘도 '이건 은행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는 대답이 나올 법한 대화였으니까.


다만 이런 통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우리의 과실로 인해 문제가 벌어진 경우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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