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궁도장과 술과 음악의 밤
네 번째 날, 하치노헤는 작은 마을이라 다섯 명의 한국인이 마을에 방문한걸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셨어요. 그래서 시청에서의 환영회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고 지난 홈스테이에 비해 '공식'행사가 좀 더 자주 있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궁도부에서 참관을 허락해 주셔서 아침에 궁도장을 갔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것도 감사한데 궁도! 궁도장을!!! (로망이었음)
만화에서만 보던 궁도복과 발가락이 갈라진 궁도용 버선, 마룻바닥, 키보다 훨씬 긴 가느다란 활
그리고 현역 고등학생... (뭔가 점점 말투가 수상해지고 있지만)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동그랗게 활구멍을 만든 천으로 가리고 연습을 한다. 양궁장에서 겨울에 창문 3~4센티만 열고 연습한다더니 그런 거구나. 순서대로 활을 쏘고 정말 아날로그하에 옆에서 두 학생이 표에 점수를 기재한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중간에 가는 시간이라고 하셔서 좀 일찍 나왔는데 우리를 제외한 다른 홈스테이 참가자들은 궁도 체험도 하게 해 주셨대. 너무너무 부럽다!
우리 어린이도 한국 국궁장 자주 다녀서 활 쏴볼 수 있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할머니 일정으로 우리는 참여 기회가 있는 걸 모르고 지나갔어 아쉽다. 요런 건 내가 언어가 더 좋았다면 얘기 나누고 조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할머님 퇴근시간에 맞춰 모시러 가고 다 같이 큰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샀다. 최근 집에서 아드님의 경망스러운 행동거지를 사죄하고자 삼계탕 재료와 김밥 재료를 샀다. 중간에 집에 들러서 삼계탕을 끓이고 오후시간에는 전체 히포 모임이 있어서 또 어딘가의 구민회관에 모여 얘기를 나눴다. 왠지 지난번 홈스테이보다 자기소개할 일정이 많아져서 약간 스크립트처럼 외우게 된다.
우리 망나뇽 아드님은 단체행사에 별로 참여하지 않고 삐삐대다가 은근슬쩍 뒤에 빠져서 종이 접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더니 말도 안 통하는 남자애들 네댓 명이 모여서 같이 그림 그리고 놀고 있네. 그래 놀고 싶은 마음이 최고다, 말을 어정쩡하면 뭘 하니 같이 놀고 싶은 게 최고지. 어른들도 우리 집 어린이 죄금 걱정하듯 돌아보시다가 애들끼리 노니까 좋다 하고 깔깔 웃으심.
조금 일찍 모임이 끝나고 아직은 해가 뜬 시간에 귀가
친구들이 오기 전에 김밥 재료를 준비했다. 뭐 대단할 건 없지만 우엉 볶고 시금치 하고 집에 있던 스팸이랑 참치랑 여러 가지 재료를 펴두고 어쩐지 김밥 발도 두 개나 있더라고. 세팅 끝날 즈음에 손녀 두 분이 와서 손 닦고 조인, 몇 개 만든 거 맛있다고 먹고 왠지 나는 나토 넣을래! 해서 낫토도 김밥 소로 꺼내서 자기 취향껏 김밥을 말았다.
저녁에 아드님 부부가 와서 김밥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밥도 한솥 가득했는데 다 먹었다. 아드님 부부는 우리를 위해 연두부와 김치를 사 와서 찬으로 내주셨다.
애들도 배 두드리게 양껏 먹여서 마음이 풀어지고 뭔가 온 가족이 모인 여유로운 저녁이다. 함께 저녁 먹는다고 두 분 다 준비해서 와주신 듯. 애들은 텔레비전 보고 놀다가 또 게임기랑 들고 이방 저 방 다니면서 논다.
처음이자 마지막 어른들의 시간이었다. 아드님은 음악과 위스키를 좋아하신다고. 나랑 거의 같은 연배라서 90년대 일본 음악 얘기하다가 시이나 링고 최애라니까 자기고 그렇다며 왕왕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틀어서 음악 들으면서 술을 마셨다. 원래 위스키와 진을 챙겨 오셨는데 먹다 보니 위에서 니카 위스키랑 아와모리(지역술)도 더 가져오고 이것저것 내주심.
할머니도 음악 취향 있으신 분이고 할아버지는 샹송과 시티팝을 좋아하셔서 술 마시고 음악 듣다 보니 할아버지가 수집한 LP도 하나하나 꺼내서 소개해주셨다. 오누키 타에코 씨가 최애라고 하시고 전 앨범 다 있다고, 뭔가 진하고 즐거운 밤이었다. 닌텐도 스위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