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전국 동계스포츠 대회와 하치노헤 해산물 시장
일본에 도착하기 전부터 할아버지가 제안한 일정 두 가지 중 하나,
한 가지는 함께 스케이트 타기
다른 한 가지가 함께 유소년 피겨 경기 보기 - 전국 선수권 대회
한국에서도 스포츠를 보는 일이 없는데 역시 취향이 선명한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분야의 한가운데부터 시작하게 돼서 기쁘다. 전국대회는 이런 분위기구나.
대상은 13-18세였던 것 같다. 각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경기를 하면 자기 지역 플래카드를 흔들며 응원을 해준다. 동그란 부채 우치와도 현역에서 진짜 응원으로 쓰는 거구나. 후배들의 응원이라니, 청춘물이네.
링크장 2층 끝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있게 지역의 음식 부스들이 서있다. 아오모리에서는 사과파이나 사과주스를 팔듯이 자기 고장의 과일이나 먹거리들이 당당하게 지역 이름을 걸고 서있다. 우리 집 어린이는 아침에도 또 심통이 나서 좀 있다가 팝콘이랑 사과 도라야키 사서 앉았으니 천천히 먹으며 구경했다. 이제 너랑 크게 차이 안 나는 형 누나들이 스케이트 탈 거야.
동계 유소년 선수권 포스터에는 하치노헤의 상징인 오징어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경기장도 제법 큰 곳인 모양인지 유명한 선수들의 사인 포스터가 있다. 아사다마오는 역시 아직 포스터 정 가운데 금색으로 빛나네.
경기를 좀 보고 나와서 해산물 시장으로 갔다. 상어고기가 잡히는 게 좀 특이점인가 봐. 뱃속에 있던 아기 상어랑 상어알을 한 바구니에 담아 파는데 마음이 몹시 요상. 아들내미랑 손잡고 보기는 좀
신선한 회를 싼 가격에 도시락에 담아 판다, 몇 가지 사서 푸드코트에 앉아 먹는데 해산물 먹으러 다시 오고 싶어 질 것 같아..
점심을 먹고 오후에 히포 활동으로 이 지역 모임장님의 집에 초대되었다. 이렇게 본격적인 모임일 줄 몰랐는데 집 앞에 작게 컬러프린트 해서 포스터도 붙여놓으셨다. 한국문화 만나요~
다양한 히포가족들과 어린이, 어르신이 잔뜩. 이 댁에서 묵는 홈스테이 친구의 방을 가봤는데 일본 전통 손님방이다. 창 밖으로 예쁘게 정돈된 눈 쌓인 정원이 보이고 가운데 네모를 둘러싼 형태로 복도가 있다. 신기해라.
한 서른 명은 될법한 사람이 모여 앉아 또 자기소개하고 동요 부르고 친목하고 차 마시고..
저는 이제 에너지가 없어요. 내향인의 혼은 점점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또 새초롬하게 있더니 은근슬쩍 애들 몇이랑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그래 왠지 이제 너 이런 모임에서 슬슬 걱정 안 돼..
어린이는 두고, 한국인을 구경하러 많은 분들이 오셨고 80 넘으시는 분들도 꽤 몇 분 계셨다.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말을 거셨는데 잘 모르겠어서 애매하게 웃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손주분이 한국말을 너무너무 잘하시더라고. 손주분께 통역을 부탁드려서 이야기를 짧게 나누고 할아버지가 뭔가 얘기를 계속 걸어주셔서 작년에 다녀온 홈스테이 사진과 작년 호스트분이 겨울에 다시 놀러 와서 만났던 이야기 하고, 사진도 보여드렸다.
왠지 옛날 드라마를 저보다 많이 보셨더라고요, 마의 이산.. 조승우 배우를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넷플릭스에 비밀의 숲이라는 현대 드라마를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사극이 좋으시다고. 배우님들 사극 많이 부탁드려요.
어쨌든 이 눈길에 두 노인분이 한국이 궁금해서 오셨는데 좀 즐거우셨기를. 우리는 또 조금 일찍 나갔다, 나가는 시간에 얘기를 나눈 할머님이 선물을 주셨다. 깔끔한 글씨로 메모가 담긴, 손으로 뜬 수세미(?). 뭔가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챙겨 와 주신 게 느껴져서 감사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소박한 선물을 전하는 일이 많이 적어진 느낌이다. 거의 산 것을 주고받지 뭔가 만들거나 소박한 선물들을 나눈 순간들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집에 오니 할머니가 피자 만들기를 준비해 주셨다. 오늘은 양식이네.
피자도우부터 만들고 계셔, 할머니 할아버지가 조물조물 도우를 만들어 부풀리는 동안 애들을 작은 삽을 가지고 한참 눈놀이를 하고 돌아왔다. 준비해 주신 재료로 손바닥만 한 피자를 여러 개 만들고 몇 판이나 먹고는 오늘도 애들끼리 놀러 가버림. 오늘은 텔레비전이 있는 아드님 방으로 들어가서 불러내지도 못하고.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랑 식탁에서 얘기 나누고 벽에 걸린 사진과 여러 가지 것들을 보여주셨다.
할머님이 40년 동안 매달 가족일기를 쓰고 계신다. 대단하네.
월간 도모토네~ 같은 느낌으로 가족의 이름을 단 신문을 월 1회 계속 발간 중이라고, 모든 원본을 스크랩해 놓으셨다.
아들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나간 날의 스코어라든가, 둘째 아들이 태어난 날, 온 가족이 같이 어디에 놀러 간 순간들의 사긴도 붙어있고 그림으로도 그려져 있다. 시간이 쌓인 것들이 얼마나 굉장한지. 드라마를 통해 본 일본에 대한 편견이랄까, 막연한 이미지 같은 것들이 커다란 상자에서 실물로 줄줄 꺼내져 나오는 기분이다.
이 굉장한 일지는 지역 신문에도 소개되었다고. 첫아들이 태어난 달의 신문도 있으니 거의 내 나이정도의 기간 동안 매달, 손으로, 직접 만들고 계신다. 인쇄해서 친척들에게도 전하시는 모양이다.
나는 고작 어린이 육아일기로 인스타그램을 보여드렸는데 이런 굉장한 걸 보게 되었다.
이 집 안에는 또 어떤 굉장한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좋은 질문을 했다면 더 많은 걸 나눠주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