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10. 니하오? 쏘이 꼬레아나.
*BGM:: X - Nicky Jam*
해외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토픽 중 하나는 바로 '인종 차별'.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우려했던 것만큼 인종 차별을 딱히 겪지 않았다. 오히려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지구인은 하나이구나라고 생각한 경험들이 더 많았다. 그랬던 내게도 손꼽히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말라가 시내에 위치한 가장 큰 재래시장에서 혼자 구경을 하던 어느 날. 한 생선 가게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어린 남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니하오?"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도 아닌 스페인에서 처음 듣는 니하오 소리에 피가 거꾸로 솟은 나는 "노 쏘이 치나. 쏘이 꼬레아나. 꼬레아 델 수르.(나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야. 대 한 민 국.)"이라고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그러자 당황한 아이는 "미안해. 나는 여기에 하도 중국인이 많아서 당연히 너도 그럴 줄 알았어. 한국말로는 안녕이 뭐야?"라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상냥한 답변에 나는 괜히 멋쩍어졌다. 그리곤 친절히 알려줬다. "다음부터는 안녕!이라고 해. 알겠지?" 라며.
대개 이런 식이다. 다짜고짜 니하오나 곤니찌와를 외치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무지에서 나오는 행동일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무례한 일이지만.
사실 내가 가장 분노했던 사건은 따로 있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자주 드나들던 펍에 갔던 날. 한 이탈리아 남자애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말도 잘 통했고 재밌어서 우리는 페이스북을 교환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날 아침. 그 이탈리안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니하오."라고.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분명 어제 내가 한국인이라고까지 얘기했고 관련 얘기까지 나눴던 우리다. 그런데 니하오라고? 나는 기가 차서 그 애에게 따졌다.
"너 지금 장난치냐? 제정신이야?"
"미안해. 어제 너무 취했어. 널 화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어. 그냥 농담이었는데.."
농담이라던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허나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얘기했다. 나에게는 전혀 재밌지 않다고. 그랬더니 그는 유럽에서는 별 거 아니어서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인 줄 몰랐다며, 누군가가 본인에게 '봉쥬르'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종종 인종차별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봉쥬르나 다른 나라 언어로 대꾸를 해서 대처하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유럽인 입에서 그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황당했다. 그래서 내린 나만의 결론은 농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유쾌하게 넘길 수 있어야 농담인 것처럼, 인종차별도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면 상대의 의도가 어떠했든 차별적 발언이 맞다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시원하게 쏘아붙이자 그는 그날 밤, 장미꽃까지 한 송이 건네며 사과를 했다.
그렇게 인종차별에서 참 교육으로 끝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