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9. 스페인 학생들의 신라면 빨리 먹기 대회
*BGM:: 1, 2, 3 - Sofía Reyes*
말라가 대학교에는 특별한 학부가 하나 있다. 바로 '동아시아 학부'이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도 아닌, 남부 끝에 위치한 대학교에 아시아 전공이 있다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게다가 이 학부의 주된 수업 과정은 바로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이다. 이름도 낯선 스페인의 도시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을 줄이야. 이는 내가 말라가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국에 관심 있는 스페인인들이 더욱 친해지기 쉬울 테니까.
뿐만 아니라 자매결연을 맺은 인천대학교의 사무소도 위치해 있어서 학교 캠퍼스에서는 매년 '한국 주간 행사'가 개최된다. 약 1주간 진행되는 이 행사는 양국 음식 공유하기, 한국어 이름표 만들어주기, 신라면 빨리 먹기, 한국 대학교 연수 프로그램 홍보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행사 몇 주 전, 나는 학교 측에서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한때 외교관이 꿈이었던 내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스페인 대학생들에게 직접 한국을 알린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고 뿌듯했다. 이야말로 문화 외교관이 아닌가! 나는 곧바로 신청서를 보냈고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째 날에는 '음식 문화 공유 프로그램'이 열렸다. 스페인 학생들, 그리고 한국 교환학생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가져와서 캠퍼스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시간이었다. 스페인 가정식의 대표 주자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토마토와 양파, 파프리카 등을 섞은 남부의 대표 샐러드 삐삐라나, 타파스로 자주 먹는 하몽 끄로께따(크로켓) 등, 스페인 친구들은 다양한 메뉴를 집에서 준비해왔다. 그들의 정성이 느껴져서였을까. 식당에서 먹었던 요리들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콘치즈와 불고기 잡채를 준비해 갔다. 콘치즈는 달달하면서 고소하고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모짜렐라 치즈까지 한가득 있어서 각광을 받았다. 한 친구는 다이어트를 선언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이건 먹어야겠다며 바게트에 콘치즈를 듬뿍 찍어 허겁지겁 먹더라.
불고기 잡채는 사실 처음 해보는 요리라서 조금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기가 괜찮았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내게 따로 레시피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집에서 꼭 만들어보고 싶다며. 아마 유럽에서 자주 먹는 파스타와 비슷해서였을까?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파스타가 꽤나 고급 음식 취급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우리에게 라면과 같은 존재다. 요리하기 귀찮을 때, 대충 면을 삶아 시판 소스를 넣어서 뚝딱 만들어 먹는 간편식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각국의 음식 문화나 식사 예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임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대망의 '신라면 빨리 먹기 대회'가 있었다. 매운 음식에 약한 스페인인들에게는 초고난도 콘테스트이다.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한 뒤, 우승자 순서대로 한국의 초코파이, 빼빼로 등 간식거리를 상품으로 주는 이벤트였다.
스페인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툰 젓가락질을 하며 뜨거운 컵라면을 후후 불어먹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밌었다.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다들 매워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새삼 한국인이 매운 음식을 참 잘 먹고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무이 리꼬!(너무 맛있어!)'를 외치는 한 친구 덕분에 빵 터졌다.
마지막 날에는 학생들에게 '한글 이름표'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이국적인 이름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직접 적어서 보여주자 다들 기뻐하는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은 'ㅇ' 혹은 'ㅁ' 이 많은 한글이 마치 이모티콘 같아서 너무 귀엽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다양한 활동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성황리에 '한국 주간 행사'를 마쳤다. 스페인 학생들과 더욱 친밀해지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진 특별한 계기였다.
그리고 교환학생 생활 중, 잊지 못할 하이라이트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