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야 Aug 29. 2022

11. 외국에서 휴대폰과 지갑이 동시에 없어진다면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11. 외국에서 휴대폰과 지갑이 동시에 없어지면 생기는 일


*BGM:: Sin Pijama - Becky G*




 해외에 혼자 온 교환학생에게 휴대폰과 지갑을 동시에 잃어버리는 일은 팔다리를 잃는 것과 같다. 돈도, 구글맵도, 연락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 끔찍한 일이 내게 벌어지고 말았다.



 시작은 지갑이었다. 오랜만에 시내에서 쇼핑을 하러 나가는 길. 몇 달 살았다고 소매치기에 대한 긴장은 처음보다 완화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에코백 안에 소지품과 지갑을 담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내로 향했다. 그렇게 KIKO라는 화장품 가게에 도착해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 찰나.


아뿔싸! 지갑이 없었다.


아무리 가방을 뒤지고 또 뒤져봐도 딱 지갑만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주변의 인기척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수로 떨어뜨렸을 리는 만무하므로 웬 숙련된 소매치기 놈의 범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갑 속에는   없는  모든 체크카드와 학생증, 교통카드  각종 중요한 카드가  있었다. 그래서  마디로 나는 땡전   없는 신세가  것이다. 불행  다행으로 현금은 어서 돈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럽고 기가 차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곧장 엄마에게 전화해 카드를 정지시키고 재발급을 부탁했다. 재발급 후 스페인까지 카드가 배송되는 데 자그마치 3주가 걸렸다.


정말 고맙게도 천사 같은 마음씨의 친구들을 사귄 덕분에 이 기간 동안 내 친구들은 돈을 빌려 줄 테니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휴대폰이 말썽이었다.


2년 이상을 쓰던 아이폰 6s는 어느샌가부터 배터리가 빨리 닳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스페인에 온 뒤로는 더욱 그 속도가 빨라졌다. 어느 날은 100%로 충전을 하고 나갔는데도 단 반나절만에 배터리가 모두 닳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난 그저 오래 써서 그러려니 하고 보조배터리를 사는 것으로 무마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보조배터리의 충전선을 꽂아 두지 않으면 휴대폰이 저절로 꺼져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오래된 폰이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친구들과 꼬르도바 패키지 투어를 예약한 날짜의 전날 밤, 다 함께 펍에 갔다가 새벽 늦게 귀가를 했다. 우리는 절대 늦으면 안 된다며 서로 전화로 깨워주자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는데... 알람 소리도, 전화소리도 듣지 못한 채 밝게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셔 헐레벌떡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전원이 꺼져있었다. 충전을 깜빡하고 안 해둔 탓이었다. 급하게 충전기를 꽂고 잠시 기다리자 켜지는 화면에서 보이는 시각은 투어 출발 시간이 무려 1시간 반이나 지난 11시 30분. 정신이 혼미했다. 입에서는 "망했다."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곧장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이미 투어 버스는 떠난 뒤였다. 부재중 전화는 무려 20통이 가까이 되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리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먼저 갔던 애플 공식 스토어에서는 무려 한 달가량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 포기했다. 당장 1주 뒤에 모로코 여행이 예정되어있던 나인데, 어떻게 한 달이나 휴대폰 없이 산단 말인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비공식 수리점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비공식 수리점도 몇 분 내로 뚝딱 고쳐주었기에 이곳에서도 안도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맡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수리하는 아저씨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이내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직감했다.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 그는 내게 다가와 분리된 휴대폰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내부 부품이 수리 중에 전기열로 녹아버렸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투어 버스를 놓친 것보다 더 황당하고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나는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제? 못 고친다는 거야?"

"마드리드에 있는 본사로 한 번 보내볼 수 있어. 거기선 아마 가능할 거야."

"얼마나 걸리는데?"

"2주 정도...?"


이쯤 되니 내가 배운 모든 스페인 욕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애초에 내 휴대폰 전원이 자꾸만 꺼졌던 원인은 바로 '배터리 수명' 때문이었다. 그래서 배터리만 교체하면 되는 일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 직원이 배터리를 교체하긴 커녕 녹여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멀쩡한 내 아이폰을 고장 낸 것이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만큼 기다릴 시간이 없어. 돈으로 보상해줘."

"그건 안돼."

"왜?"

"@#*%^)^%#..."


그는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 채 그저 보상은 안된다고 말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어차피 꽤나 오래 쓴 휴대폰이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 사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응급상황이 동시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약 이틀간 휴대폰도, 지갑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멘탈이 흔들릴 상황인데, 현지어도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 교환학생에게 이는 재난과도 다름없었다.


연락도 안되고 구글맵도 볼 수 없으니 밖은 안나가게 되었고 친구들이 돈을 빌려준다고 한들 왠지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 약속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간 나는 집에 고립된 채 지냈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이 상황을 알렸더니 구안와사에 소매치기에 휴대폰 고장까지. 이 모든 일들을 겪고도 귀국을 안 하고 버티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 나도 그 이유를 단정 지어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인생 최악의 일을 겪고도 나는 스페인이 여전히 밉지 않아. 가끔 미운데도 그 사람에게 중독되어 헤어지지 못하는 지독한 연인 같은 느낌이랄까?"


허나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보다 매 위기 때마다 늘 곁에서 나를 위로해주고 도와줬던 스페인, 그리고 유럽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어떤 장소든 기억이든 소중하게 남게 되는 이유는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 덕분이지 않을까.



이전 11화 10. 니하오? 쏘이 꼬레아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