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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6. 2022

꽃과 병

<12> 2018.4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꽃을 살 때는 그 시들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꽃병에 꽂힌 꽃은 이내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시들고야 말았다. 오래 못 갈 아름다움을 위하여 돈을 주고 생명을 앗은 것이 아닌가, 그를 꽃병에 가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름다움을 가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어차피 시들고 말 마음이니, 미를 추구하는 일은 아름다움을 가두는 일이었다. 꽃을 아끼는 일은 소중한 마음이지만, 꽃다발을 주는 마음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꽃은 지고 이제 하등 쓸모가 없어졌다. 나는 그의 어떤 모습에 반했던 걸까.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그를, 어떤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취하여 열렬히 원했을까.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꺾어오지만,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실망하여 시들해지고 마는 마음들. 그리고 그 마음을 먼 미래 시를 듣고 들추며 어렴풋하게나마 음미하게 되는 그런. 그렇게 병 속에서 시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온전히 자기가 아닌 채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결국에는 곪고 썩어 문드러져 버리고 마는 마음.


여느 날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가장 아끼던 무언가를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내 방에 두었다. 실은 둔 것이 아니라 가둔 것일지도, 꽃병은 단지 병甁이 아니라 질 병病이었다.


나의 시들, 시들음, 꽃과 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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