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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Dec 29. 2023

딸아이의 아찔한 첫 생리 소동

불청객이 찾아왔다!


 “엄마! 나 생리하나 봐!"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들어간 겨울이의 말에 화들짝 놀라 급히 뛰어갔다. 네다섯 발자국 그 짧은 걸음에 온갖 생각이 다 스쳐갔다.  이제 겨우 4학년, 한국 나이로 11살, 12월생이라 만 10세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초경이라니! 요즘 아이들 성장이 빨라져서 초등 3, 4학년 때 생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내 딸 얘기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성장이 빠른 아이도 아니고 또래에 비해 키도 작고 말라서 성장검사와 성조숙증 검사를 받고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불과 한 달 전에 받은 정기검진 (성장호르몬 치료를 하는 동안 3개월마다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한다) 결과, 1년 내로 초경을 시작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는데?  

 아이의 2차 성징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빠르게 다가올지 몰랐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당황한 티를 내면 겨울이가 불안해할까봐 최대한 침착한 척하며 가보니 소변이 약간 핑크빛을 띠고 있었고 속옷은 깨끗했다. 겨울이는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겨울아. 첫 생리를 축하해. 우리 같이 읽은 책에도 나왔었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생각보다 조금 이르지만 조금 일찍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늦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어. 겨울이가 진짜 여자가 되는 거야."  생리대를 꺼내며 겨울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생리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조금 불편할 수 있고 혹시 학교에서 배가 아프거나 생리대 때문에 불편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하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겨울이가 "엄마! 그런데 이거 용과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하고 물었다. 겨울이가 용과를 좋아해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제주산 용과를 어젯밤에 나눠먹었는데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속살이 하얀 용과가 아니라 속살이 비트처럼 새빨간 레드용과였다. 맨 손으로 자르고 껍질을 벗겼더니 내 손까지 시뻘건 물이 들어서 하룻밤이 지나도록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고 소변이 붉게 나오는 건 아닌 것 같고 생리를 시작한 게 많이 당황스러웠나 싶어서  "용과 먹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생리인지 아닌지 일단 지켜보자. 학교 다녀와서 얘기하자."  하고 등교준비를 마쳤다.


용과를 자르다가 붉게 물든 손가락


친구가 보내준 용과


 일단 등교를 시키고는 심란한 마음에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키가 작은데 벌써 초경을 시작하면 키도 많이 안 클 텐데 어쩌지 싶어 한숨을 쉬며 혹시 출혈의 다른 원인은 없는지 핸드폰을 검색하다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겨울이가 생리를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이른 거 같은데 겨울이는 놀라거나 울지 않았냐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내가 잘 얘기해줬고 씩씩하게 학교 잘 갔다고 말해주니 요즘 아이들은 성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아서 그런지 쿨하다며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잠시 후, 남편이 나오더니

"겨울이 생리 아닌 것 같아. 나도 소변색이 이상해." 라는게 아닌가!

"뭐? 여보도 핑크색이야?"

"응. 용과 겨울이가 제일 많이 먹었잖아!"

"헐!"


그제서야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레드용과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변에 붉은색이 돌 수 있다고 나와있다.



 띠로리~ 이게 무슨 황당한 해프닝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생리일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더니 남편은 수업 시작 전이니 빨리 전화해주라고, 겉으론 아닌 거 같아도 놀라고 불안할 거라며 빨리 아니라고 말해주라고 난리였다. 못 말리는 딸바보다. 정말!

 학교 가면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놔서 안 받을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안 받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단축수업을 하고 있어서 12시 반쯤이면 점심 급식 먹고 하교하니까 4시간만 기다리면 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이 더디 갔다. 평소 땐, 등교하자마자 하교하는 것 같았는데.




 드디어 12시 반, 겨울이가 집에 오자 현관으로 다다다 뛰어가서 숨쉴 틈도 없이 물었다.

다음은 나와 겨울이의 대화.

"우리 겨울이~ 잘 다녀왔어? 오늘 별일 없었어? 불편하진 않았고? 아픈 데는 없었어?"

"엄마, 나 생리 아닌 거 같아. 화장실 갔는데 핑크색 소변도 안 나오고 생리대도 깨끗해. 괜히 생리대해서 불편하기만 했어."

"그랬어? 너 가고 나서 아빠도 소변색이 이상하대서 인터넷 찾아보니까 레드용과 먹으면 소변이 붉게 나올 수 있대."

"아, 뭐야~ 괜히 불편하기만 했네."

 겨울이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표정은 환해졌다. 덤덤한 척했지만 내심 많이 걱정되었나 보다. 학교 급식을 엄청 좋아하는 녀석이 오늘은 밥을 많이 못 먹었다고 해서 간식을 챙겨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잠깐 일을 하고 있는데 겨울이가 와서는 "엄마~ 용과를 먹었더니 응가도 보라색이야! "하면서 깔깔 웃었다.




 "아, 맞다! 겨울아. 너 세 살 땐가 검은색 응가를 눠서 엄마가 깜짝 놀라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장출혈이나 장중첩증일 수도 있다면서 초음파 사진을 찍었어. 근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러면서 혹시 아이가 뭐 평소랑 다른 걸 먹었냐고 물어보길래 없다고 하고 집에 왔거든. 근데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떠올랐어. 너 할아버지 시골집 마당에서 블루베리 엄청 따먹었었잖아. 원인은 블루베리인데 12만원이나 내고 초음파 사진을 찍었지 뭐야! ㅋㅋㅋ"

"거봐! 엄마. 내 말이 맞잖아. 아침엔 용과 먹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하더니~~!"

"그러게. 엄마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겨울이와 나는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반나절 사이에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었다.

언제가는 겨울이에게 찾아올 초경이지만 겨울이 키 좀 더 크게 천천히 와주렴.



주의: 레드용과를 드실 분들은 혹시 변에 붉은색이 돌더라도 출혈이 아니니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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