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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동윤 Aug 12. 2022

잘 먹고 잘 살기 프로젝트

1.

노션 앱 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까만 네모 박스. 그 안에 오밀조밀한 문장 열 가지가 담겨있다. 올해로 끝내자 읊조리며 눌러쓴 다짐들. 이번 달도 나름 열심히 살아내는 중이다.


그때 나는 연기 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버튼 잘못 눌러 연사 되는 바람에 작업실 이곳저곳 담은 사진이 수십 장씩 찍혔다. 꾹 눌러 삭제하려다 보니 흥미로웠다. 턱이 돌출되어 물고기 같은 내 모습도, 책상 이음새로 덕지덕지 붙은 물감도. 각도만 틀었을 뿐인데 모두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다시 한번 완독 했다. 좋은 인문학 강의를 들은 것 같다던 서평을 읽고 구매했는데 누군진 모르지만 감사한 기분이다. 덕분에 또 한 명의 선생님을 모셨고 무엇을 어떻게 담는지 배웠다. 좋은 글은 질문을 던진다. 책에는 질문이 가득하다. 또한 그대로 책을 맺기 아쉬웠는지 당신이 영감 받은 책을 추천하며 막을 내렸다. 그 책을 읽으며 올해를 보낼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공부할 게 많다. 새로운 책을 찾으면 까마귀처럼 제목 물어와 마음의 둥지에 쌓는다. 책은 짐이다. 책을 더 쌓았다간 방이 터져버릴 것이다.


마흔에는 더도 말고 다섯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흰머리가 검은 머리 반쯤 덮일 즈음에는, 근심없이 순수한 창작에 마음 쏟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모두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어느덧 나도 눈치를 보는 나이가 되었다. 눈은 어깨 위에 덩어리 져 쌓이고 그 위로 또 쌓이고 그 위에 또 쌓였다. 


부담이 뭉치면 책임이 된다. 책임의 무게를 견디면 봄이 오고. 가을이면 또다시 새로운 부담을 얹는다. 짊어진 눈덩어리를 어깨에 이고 번쩍 든 나는 아틀라스다. 지면과 맞닿은 발바닥으로 뿌리를 뻗겠다. 어깨와 머리끝 삼각 구도로 무게를 짊어진 아틀라스는. 파랗고 긴 혈관이 나무 껍질처럼 튀어나온 아틀라스는. 노동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생을 뻗어 연두색 나뭇잎을 토해내는 아틀라스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지 늘 궁금했던 그는 더이상 어리석은 물음을 품지 않는다.


2.

첫 만남을 피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첫째 형은 열한 살, 둘째 형은 아홉 살, 셋째 형은 다섯 살. 어린 나는 그들을 아저씨라 부를 수 없었기에 “편하게 형이라 불러”가 편하지 않아서 불편했다. 우리는 연락한다. 동생이 잊으면 형이, 형이 잊으면 동생이. 큼직한 단위가 지나고 남는 건 소수의 결이 맞는 사람들. 언제나 남는 건 결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


J형이 덤덤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으로 했기에 응당 눈으로 들었다. 나의 눈에 그의 아픈 눈을 담았다.  속 지혜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치스런 하루였다. 서른 앞둔 나는 눈물이 많아지고 우리가 아니면 어려울 때가 생겼다. 오늘을 상자에 담았다. 바깥이 싫어 집을 이는 소라게처럼, 나는 상자 안으로 숨었다. 쉬운 선택이다.


일 년이 지나면 소수의 소수가 남는다. 내년에는 소수의 소수의 소수가 남을 것이다. 그렇게 남은 소수의 소수의 소수에 또다시 소수의 소수의 소수의 소수가 남는다.


나는 그 광경을 바로 볼뿐 더 이상 어떠한 동요도 하지 않는다.


3.

일 센치를 위해 뛰어드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높이 날아 웃음으로 추락하는

바닥에 아스라지는 그 몸뚱이는


5.

학교 버스 기다리는데 옆에 있던 50대 아저씨가 도로 위로 뛰어든다. 아주 천천한 걸음으로 횡단보도 멀지 않은 곳에서 굳이 성난 숨 뿜은 차 사이를 지난다. 아저씨를 향해 아니 정지선을 향해 하얀 택시가 달려온다. 따사로운 햇빛이 그의 등에 닿아 반짝인다. 신호등 위 돋아난 카메라도 반짝인다. 나는 경고의 충동을 느낀다. '아저씨 여기도 카메라가 있어요' 어쩌면 그 나이 든 아저씨는 바로 나 같은 시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걱정을 감춘다. 새로이 꺼내든 감정은 새벽에 머플러 제거한 오토바이 탄 그놈에게 준 것과 동일하다. 무관심이 약이라는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너무 많다.


6.

뒷걸음질로 배우는 것들. 이를테면 글, 그림, 연기. 사람.

조건. 멀리 떨어지지 말 것. 방황 후에 반드시 돌아올 것.


7.

학생이 생겼다. 우려에 체계가 쌓이고 나는 떠드는데 익숙해져간다.


이천이십 년 여름. 카페를 넘기고 문래 공장단지 속 허름한 빌딩 사 층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리고 삼 개월 후. 작업실을 넘겼다. 화가 났다. 그 작업실은 작업실이 아닌 레슨실이어야만 했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도, 공장 전체가 발주를 앞둔 소음이 가득한 그날도, 나는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이천이십 년의 내가 생각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음을. 그저 그림과 글을 좋아하는 절대 다수에 불과했음을. 사실을 써 내려갈수록 나는 나를 객관화한 만큼만 작아질 수 있었다. 자존감에 절었고. 수강생은 없었다.


이년이 지났다. 오는 팔월이면 애증의 대학을 졸업한다. 이천이십이 년의 나는 이천이십 년에 꿈꾸던 일을 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연기 말고 또 다른 나를 팔아 돈을 번다.


공간과 학생이 있다. 변화는 나를 힘나게 한다.


8.

당신은 수년간 모아온 메모를 내게 공유했다. 언어의 온도가 나와 같은 사람. 당신의 메모를 읽으며 나는 메모했다. 겸손해야 한다. 늘. 이를테면 속독과 정독의 차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나는 빠른 파악에 관심 있다. 당신은 음미한다. 부러운 여유다. 나는 멀었다. 계단 위에 계단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조용히 사는 멋진 사람이 많다. 그들 틈에 파묻혀 숨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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