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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동윤 Sep 19. 2022

호흡이 끊어진 사랑의 단상

송곳니를 깨부수고 혼자 산다. 둘이 될 수 없는 버릇으로 관조하는 대상에 생각이 묻으면. 눈앞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의 시간이 담겼으니 사람이나 다름없다. 사람보다 사람이 내놓은 대상을 우선하는. 내게 안정을 주는 버릇으로 새 송곳니가 돋을까 겁난다.


돈을 많이 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다. 평소라면 사지 않을 것을 소비하고,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알라딘 장바구니에 쌓인 책들을 결제하고, 남은 돈으로 이더리움을 샀다. 이제 통장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여야 한다.


이상한 마음의 아침. 초등학생 급훈처럼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처를 주고받은 날이면. 어깨에 얹힌 책임이 n각형 모서리로 고루 뻗쳐서. 나는 유튜브로 풀벌레 울음소리, 자작나무 타는 소리, 빗소리 같은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찾아 헤맨다. 눈만 감으면 계곡 가장 깊은 곳으로 잠수했던 시간과 포개지는데. 물에 빠지면 몸이 두둥실 떠올라야 살 수 있으니. 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귓속에 주사 바늘을 꽂는 것이다. 이제 해수면 위로 둥둥 떠나니는 나는. 적어도 한 줄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당연하다 생각하던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나이 먹을수록 끊고자 마음먹어 끊는 일은 더 쉬워질 것이다. 다행히 무표정한 조각으로 아주 굳지 않았다. 무서운 목소리. 말랑한 나는 아프고. 내 아픔은 건재하다.


태풍으로 촬영이 연기되어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해도 뇌 속에 산소가 들어가지 않는 기분. 아침부터 영화 열 편을 내리 틀었다.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우연과 상상, 노매드랜드, 립반윙클의 신부, 송곳니,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델마와 루이스, 시리어스 맨, 더 랍스터. 이따금 몰입으로 현실과 몇 센티 떨어지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가미가 고장 난 물고기로 뻐금뻐금 헛구역질을 했다. 옷을 산다는 핑계로 엄마와 타임스퀘어에 들렸다. 내게는 충분한 옷가지가 있다. 옷은 사지 않았다. 살아 숨쉬는 군중 속 끼어있는 나. 호흡하는 연인들. 아이와 노인. 타인의 속을 비집고 걸으며. 그들의 날숨으로 상승하는 비눗방울에 얹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행위를 따라 했다. 서점에 들렀다. 크리스티앙 보뱅. 보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국 숨 쉬는 법을 까먹고 방바닥에 앓아누웠을 것이다. 때아닌 권태로움에서 구해준 보뱅에게 나는 감사한다. 출판사는 1984BOOKS. 낯익은 이름. 오늘 그들을 팔로우했다. 보뱅. 1984BOOKS. 번역가. 편집자.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 빠르게 친해지는 법이다.


아프게 헤어진 연인이 있다. 생각이 고기잡이 배에 이어진 그물망처럼 촘촘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연애 초반 나를 밀어냈고. 나는 많이 아팠고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내가 다닌 연기학원에서는 매주 두 개의 독백을 시연해야 했는데 다른 사람 이야기는 눈에 들지 않아 그녀가 실제로 한 이야기를 재조립해 독백을 만들었다. 나는 그녀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사람으로 연기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래서 아픈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냉혈한. 선생님께서는 독백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 손등에 당신의 손을 포개며 말했다.


"후련합니까?"


나는 재채기가 나오려다 만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선생님께 독백의 근원에 대해 여쭙고 다른 학생들은 시간을 빼앗겼다. 연기 레슨은 때때로 상담의 장이 된다. 감정을 다루는 우리는 말랑한 감정을 가졌다는 모순으로 병든 물고기처럼 헤엄칠 힘을 잃곤 한다. 집단지성으로 각자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나는 그녀가 동화책 속 악한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다. 스물다섯의 차인 남성이 이해한 사실은. 슬픔의 기원은 상대가 아닌 내게로 존재하며. 사랑에 빠진 심장이 혈액을 뿜으며 더운 피를 온몸에 보낼 때마다 나는 기쁨과 그늘을 동시에 지닌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상담을 마친 나는 그녀의 방식을 따라 했고.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손 잡을 때에도 항상 깍지를 쥐었다. 사랑으로 병든 우리가 주먹에 힘을 실으니 손가락이 아팠다. 어느 날 나는 내 손으로 그녀의 약지를 떼어냈다. 이번엔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사랑은 틀린 그림 맞추긴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황홀경에 익사하는 남자와 메두사와 눈을 맞춰 몸이 굳는 남자가 있다. 깊은 바닷속에 떨어지더라도 숨이 멎으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몸이 굳으면. 바위처럼 수백 년을 제 자리에 처박혀 존재한다. 사랑은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게 한다. 가라앉는다. 다시는 상승하지 못할 것처럼. 수면 밑으로 내려앉으면. 얼굴 표정부터 굳는다. 멍든 손깍지가 그립다.


사랑은 걱정을 담보로 안정을 준다. 사랑을 할 때 연인과 함께라면 세상의 모든 걱정의 벽도 허물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이 든다. 사랑을 하는 연인의 이완된 표정들을 볼 때마다. 내가 가진 시름의 깊이가 얼마나 덧없는지 느낀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곁에서 내 걱정도 함께 저당 잡히길 기대한다. 나는 너무 나약해서. 사랑의 끝에 찾아올 쓰나미에 뿌리 채 뽑혀버릴 나무라서. 사랑을 할 수 없다.


내게도 그들처럼 이완된 얼굴이 있었다. 애기 때 당한 차사고처럼 진하게 굳은 기억이다. 사랑을 직접 혈관에 찔러 주사한 나날들로 오늘을 버틴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 켄싱턴 에비뉴의 마약중독자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좀비 영화에서 나올 법한 사람들이 균형감각을 상실한 듯 상체를 접고 절뚝거렸다. 마약을 극복한 사람들과 희생자 가족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는데. 마약 성분이 함양된 진통제 펜타닐이 버젓이 병원으로 유통되어. 영문도 모르고 펜타닐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나는 마약을 극복한 백인 남자의 눈동자가 무서웠다. 크고 진한 검은색 눈동자. 아픔은 어떻게던 사람의 몸에 새겨진다는 말을 믿는다. 그것은 나이테처럼 사람의 신체 어딘가에 흉터로 남아 누군가 발견하길 기다린다. 커다란 검은색 동공을 가진 백인 남자는 중독의 과거가 눈동자에 남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껍데기에도 흉터가 있다. 진한 사랑이 남긴 생채기. 남들이 보지 못하는 흉터를 날마다 확인하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게 일상이다. 아픔과 밝음, 기쁨과 그늘을 둔 사랑에 대한 단상으로. 당장에 그리운 나로 돌아갈 수 없어. 예민하게 굳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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