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프롤로그
어느덧 '여행 글쓰기 프로젝트' 3번째 시리즈를 연재하게 되었다. 중국과 인도 편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묵직하게 쳐지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다음 편은 좀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밝거나 선진스러운 곳은 아니지만, 40대가 막 넘은 시점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사건과 맞물려 개인적으로 힘을 받은 곳이기도 하고, 그 이듬해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지난 여행이 더욱 애틋해진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미국 문명에 익숙한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제1외국어는 무조건 영어이고, 내가 사는 지역 사회에는 미군부대가 있었으며, 학교에서 세계 역사와 지리 시간에 충분히 학습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 익숙함이 주는 근거 없는 만만함 때문인지 어느새 미국은 안 가봐도 알 만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작년에 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동안 '나'라고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쇄신을 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꼰대였다. 더 좋은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익숙한 답을 찾아갔고 결국 실패했다. 아마도 게으르고 안이하려는 나를 대자연의 섭리가 용서치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방황하기엔 젊지 않은 나이라 심플하게 실패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환경을 바꾸어서 생각의 전환을 맞이하기로 하고 보니 미국 사회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여행을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하면서 정작 경제 대국은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자각한 것이다. 과연 최고의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막상 목적지를 정하고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그동안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사회가 이토록 낯설 줄이야.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였고, 사회생활을 했던 업계 사정도 벌써 10년이 넘게 흐른 구식 기술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최근 몇 년 간 제3세계의 영화와 음악에 빠져 있다 보니 할리우드의 트렌드마저 놓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낯섦이 나를 또한 설레게 했다. 초심자로 돌아간다는 건 그 문화를 선입견 없이 깨끗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기도 하므로.
생각 같아서는 각 주도를 한 번씩 훑어보고 싶지만, 3개월짜리 ESTA(전자 비자)로 가는 거라 핵심적인 몇 곳만 찍기로 했다. 한 도시에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그 지역 사회에 스며들다 보면 그곳의 문화나 산업도 어느 정도 보이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나의 어중간한 영어도 조금은 다듬어질 거란 기대를 해보지만, 거의 모든 것이 로봇화, 키오스크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직접 대면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무튼, 잊지 말자.
다른 사회를 배우러 갈 때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