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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Oct 27. 2020

시애틀 추장과 파이어니어 광장

아메리카 기행 - 시애틀 2

옛날 미국 서부의 북쪽 끝에 있는 워싱턴 주에는 여러 부족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는 스쿼미시(Squamish)라는 부족도 있었는데, 그 부족의 추장 이름은 시애틀(Seattle)이었다고 한다. 1854년, 미국의 14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는 시애틀 추장에게 그 일대의 땅을 팔라는 제안을 했고, 이에 시애틀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는데...


그대들은 찌하여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단 말인가...(중략)...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신은 하나라는 것을.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 1854년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 (원문 참조)


이와 같은 답장을 받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너무나 평화로운 내용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 지역을 '시애틀'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시애틀이란 도시 이름의 유래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당시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이나 눈물의 길(Trail of Tears) 등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렇게 평화롭게 마무리됐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시애틀 추장은 영어도 할 줄 몰랐다는데, 부족마다 제각기 달랐던 언어를 제대로 통번역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시애틀 시에는 그 이름의 기원이 되는 추장님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또한 워싱턴 주의 스쿼미쉬(Squamish)라는 곳에 위치한 그의 무덤에는 보이스카우트들이 매년 기념식도 거행하고 있으며, 알래스카 항공의 꼬리에 그려진 인자한 에스키모인마저 시애틀 추장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이쯤 되면 시애틀은 거의 추장님이 스토리텔링으로 먹여 살리는 도시가 아닌지.

내가 시애틀 추장님을 처음으로 발견한 건 이 도시의 기원이 되는 파이어니어 광장(Pioneer Square)에서였다. 광장 이름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시애틀 추장과 평화협정을 맺은 후 이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광장이 바로 시애틀의 시작점인 이다. (그리도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것치고는 첫인상이 썰렁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이전에 시애틀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헨리 예슬러라는 사업가였다. 그는 비가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기후와 거대한 삼림을 보고 파이어니어 광장이 있던 자리에서 벌목 사업을 시작했다. 시애틀에서 벌목된 목재는 곧 미국 전역으로 흘러들어 갔고, 큰돈을 벌게 된 예슬러는 광장 일대에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이 바로 광장의 한쪽에서 고풍스러운 자태를 풍기고 있는 파이어니어 빌딩(Pioneer Building)이다.

붉은 벽돌과 중간중간 대리석이 섞여있는 가운데 돌출된 창문이 우중충한 날씨와 더불어 살짝 괴기스럽기까지 한데, 입구 한쪽에 'Underground Tour'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눈에 띈다. 이런 날씨에 굳이 지하로 내려가는 투어라니...


예슬러가 벌목사업으로 한창 돈을 벌 당시 시애틀의 건물은 대부분 목조 형식으로 지어진 상태였다. 그러다 1889년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하필 비가 내리지 않는 여름 시즌이어서 목조 건물 사이로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 거의 스무 블록이 넘는 구역이 불에 탔다고 한. 이 사건으로 도시는 다시 '파이어니어' 시절로 돌아가서 더욱 튼튼한 도시로 재건할 것을 결심하는데, 이때 시애틀 시는 또 한 번의 혁신을 감행하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했고,
시애틀에서는 똥물이 범람했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인디언들로부터 비교적 평화롭게 땅을 인도받았지만, 시애틀에는 그들만의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그 당시 시애틀의 지대는 해수면보다 낮아서 밀물 때마다 하수구가 역류했는데, 특히 화장실의 똥물이 범람하는 게 제일 큰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대화재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속 썩여 왔던 화장실 문제도 해결할 겸 도시의 지대를 아예 2층까지 높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과 예전의 1층에 해당되는 공간은 지금 현재 지하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시애틀 추장님을 존경하는 스토리텔링의 도시는 이런 흑역사마저 관광산업으로 발굴해냈다. 즉, 언더그라운드 투어란 1889년에 대화재로 인한 도시 재생 과정에서 지하에 묻힌 예전의 1층을 찾아가는 여행인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굳이 옛 화장실의 똥물이 범람했던 곳을 밟고 싶진 않아서 투어는 하지 않았지만, 그 흔적은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파이어니어 빌딩 근처에서 발견되는 도로 위의 보라색 유리로 구성된 보도블록이 그것이다. 이는 화재 복구 과정에서 지하에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스테인드 글라스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라고 완전히 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변해가는 것일 뿐.

- 1854년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


이래저래 사연을 알고 나니 처음의 을씨년스러웠던 파이어니어 광장이 새로이 보인다. 이제 개척의 시대는 끝이 났다. 하지만 새로운 삶의 시간은 또 다가온다. 그러니 삶은 '개척'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시애틀 추장님의 어록처럼 죽음이 아니라 단지 변해가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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