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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Mar 19. 2021

유치원으로 향하는 너에게

인생은 원래고독한 거야..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든 워킹맘의 연말과 연초는 바빴고, 개인적으로 자기 계발을 위해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도 세우면서 그렇게 한 3개월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사이에 어느덧 둘째가 동네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코로나 사태로 번번한 졸업식도 입학식도 못한 채,  언니 손을 꼭 잡고 다소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그렇게 둘째가 유치원으로 등원하기 시작했다. 


첫째와 비교하며 키우다 보니, 둘째는 언제나 아기일 줄 알았는데 유치원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퍽 비장했다. 처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타고 등 하원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날듯도 하다. 사랑이 넘치고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어떤 엄마들은 굳이 어릴 적에는 유치원에 보내지 않거나, 정규과정만 보내면서 아이와 조금이라도 많은 시간을 보내줄 텐데, 일하는 엄마는 방과 후 과정까지 꽉꽉 채워 보내야 하다 보니 이제 만 3세를 지난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난 2년간 유치원에 다니는 언니를 보며 유치원에 대한 로망을 차곡차곡 키워온 둘째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 한번 않고 한주 그리고 두 주 잘 해내 주고 있다. 가끔은 방과 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버스에서 잠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 어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은 아니고 아이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부모님들께 전달하고자 선생님들이 순서대로 전화를 돌리고 계신 듯했다. 우리 둘째는 내가 알고 있었듯이 자기주장이 강했고, 아직 유치원에서의 규칙은 익숙하지 않았고, 가끔 보이는 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듯했다. 유치원 생활에서 뭐 그렇게 크나큰 기대를 하겠는가 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색하고 힘들 텐데, 조금은 걱정이 됐다.


그러다 첫째 때는 어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첫째는 처음 갔던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스스로 유치원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었고, 운 좋게 지금 다니는 유치원에 자리가 나면서 옮기게 되었는데, 첫 등원을 며칠 앞두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엄마, 내가 친구들을 만날 때 부끄러우면 어떡하지?" 


나도 어릴 적 신학기마다 수도 없이 많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고 헤어졌기에 큰 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같이 가서 친구를 사귀어 줄 수도, 쫓아가서 친구가 되어줄 수도 없는 나로서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 어떤 친구를 만나서 어떤 말을 할 때 부끄럽지 않고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라고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덧붙여 마음속으로 우리 딸이 친구들을 만날 때 용기를 내어 인사할 수 있도록,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첫째는 용기 내어 친구들을 잘 사귀었고, 유치원에 훌륭하게 적응하여 둘째의 롤모델이 되었다.


나의 지난 다소 짧은 듯한 인생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가 된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도 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이나, 수능시험이나 사법시험을 볼 때나, 심지어 출산하는 날, 그 누구도 나 대신 친구를 사귀어 주거나, 시험을 쳐주거나 아이를 낳아주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고자란 나조차도 나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감당해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시험을 망치면 엄마가 대신 시험을 봐줄 수 있다거나, 아이를 낳는 게 힘들면 남편이 대신 낳아줄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토록 노력하고 인내하고 견뎌내지 못했으리라.


첫째가 유치원에 처음 가던 순간, 둘째가 유치원에 처음 가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고독을 처음 맛보는 순간이 아닐까. 앞으로 아이들이 견뎌내야 할 그런 고독한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장 넓은 울타리를 치고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랑해주고자 하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자리를 나눠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골프가 좀처럼 왜 늘지 않는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큰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스스로를 믿었어?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잘 안되더라고"라고 말이다. 이제 7살이 된 큰 딸의 한마디에 머릿속에 번쩍하고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깨달았던 것 같지만 잊고 살았던 그 진리를 조금 이르고 빡센 유치원 생활을 통해 큰딸이 이미 그 나이에 알아 버렸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고독을 느꼈던 그 순간, 내가 스스로를 믿고 내 인생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처럼, 우리 딸들도 엄마나 아빠나 또 다른 제3의 운명을 믿기보다는 자신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아이가 지치면 잠시 기댈 곳이 되어주고, 넘어지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고, 결승선을 넘어섰을 때는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와 꼭 안아주고 싶다. 키우다 보면 가끔은 아이 대신 아이의 인생에 들어가서 내 맘대로 다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엄마라는 이름의 제삼자로서의 내 자리는 여기다. 내가 아무리 그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근원적인 고독의 쓴맛과 그로 인한 성장의 기회를 내가 뺏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더라도 여기서 가만히 기다릴 것이다. 유치원 잘 다녀오렴...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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