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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Apr 08. 2022

셋째 엄마의 뻔뻔한 태교

너를 위해 특급 태교를 준비했어ㅋ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 함께 노는 게 제법 즐겁고, 이직 후 일도 손에 잡혀가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내 성격이 유별난 건지 나는 안정감을 안정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안일함으로 느끼곤 한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아이 하나 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연애시절부터 내가 제안하는 일에 크게 반대한 적이 없는 우리 남편은 관성에 따라 역시 동참의 의사를 밝혔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의 극렬한 반대가 예상되었지만, 친정엄마의 부담이 더 커지지 않도록 외부 도움을 조금 받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임신 5개월에 접어드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 셋째가 우리 집에 퍽 오고 싶었나 보다. 호르몬인지 분위기인지 알 수 없는 느낌과 감정에 취해 겁도 없이 덜컥 우리 가족은 셋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몸이 상당히 고단하다는 것 빼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회사일은 회사일대로 쌓이고,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와 이제 유치원에서도 형님 소리를 제법 듣는 6세 둘째는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다. 다행히 가사는 친정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버티고 있지만 나의 일상은 예전보다는 다소 통통해진 몸으로 여전히 예전과 같이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연예인들이 임신하면 "태교에 전념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 의미가 제법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오롯이 태아와 산모의 안위만 돌본다는 뜻일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 셋째 엄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한다. 셋째의 태교 따위는 잊어버리고 자기 인생을 살기로 한다. 승진이 걸려있는 중요한 해인만큼 일도 열심히 하고, 여전히 좋아하는 골프도 치고, 두 딸 뒤도 쫓아갈 수 있는 데까지 쫓아가면서 놀아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에너지가 방전되면 드러누워 잔다. 이렇게 한동안 지내다 보니 갑자기 뭔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것이 진정한 태교, 오히려 업그레이드 럭셔리 태교가 아닌가 하고?!


나중에 아이 공부 잘하라고 수학, 영어 문제집을 풀며 태교를 하는 엄마들도 있는데, 나는 매일 같이 국어와 영어로 수십 페이지 서면을 쓰고, 우리나라에서 제법 똑똑하기로는 서럽지 않은 사람들과 수준 높은 대화를 가장한 회의를 한다. 태아의 머리가 나빠지려야 나빠질 수가 없다. 뜨개질이나 십자수는 못하지만 내 손은 쉴 새 없이 키보드를 치느라 정신이 없으니 손을 쓴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 다른 엄마들은 임산부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겠지만, 나는 그냥 내가 하던걸 한다. 슬슬 잔디밭을 걸으면서 드라이버를 빵빵 날리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혹자가 보기엔 임산부 답지는 않을 수 있지만 엄마가 그렇게 기쁘니 아가가 슬플 리 있겠는가. 여기에 남는 시간에는 주구 장창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들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목소리로 까르르 대화하고 또 책을 읽어준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다(객관적으로 아이들이 제일 예쁘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니 이보다 더 좋은 태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얼핏 들으면 바빠 죽겠는 셋째 맘의 뻔뻔한 자기 합리화 같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태교'라고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아서 그렇지 나의 일상은 이미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주욱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태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따위는 벗어던지고 즐겁게 하루하루 생활하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일상에 보다 충실하게 즐겁게 사는 것이 정신없이 바쁜 셋째 엄마가 뱃속 아가에게 해줄 수 있는 특급 태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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