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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Feb 10. 2024

상며느리

명절을 맞아 돌이켜 보는 상며느리의 삶

나는 상며느리다. 상며느리라는 말이 실제로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딱 느낌이 온다. 매번 명절마다 입 밖으로 내기는 머 하지만 우리 시부모님은 나의 편의를 대단히 배려해 주시는 편이다. 매우 감사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세간에서는 나의 '상며느리'로서의 처지가 손가락질 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다소 보편적이 않은 상황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며느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며느리라는 단어의 어원이 '기생하는 아이', '제사를 받들고 대를 잇는 아이 '라는 데서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며느리는 시댁에 기생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늘 시댁의 눈치를 보고, 제사를 모시는 일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며, 순풍순풍 아이를 낳아 시댁의 대를 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시댁에 기생하면서 제사를 받들기 위해 결혼하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기생할 목적이나 제사를 받들, 어쩌면 대를 이을 생각도 전혀 없이 그저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요즘 세상에 이러한 케케묵은 며느리의 도리(?)를 계속해서 강요하는 것은 얼토당치 않은 낌이 있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 때만 해도 높은 교육 수준으로 여성의 지위가 급격하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받으면서 며느리들은 쉽지 않은 순간들을 넘겨내야 했다. 명절마다 남자들상을 차려내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식사하며 부지런히 설거지를 한 이야기나,  '결혼한 여자가 친정이 어딨냐'며 친정도 못 가고 시댁 손님 뒷바라지를 한 이야기를 들으면 당사자가 아닌 나도 울화통이 터진다. 아버님들 입장을 들어보면 많게는 한 달의 한번(제사의 경우), 적게는 일 년의 두 번(명절의 경우) 봉사(?)하는 게 머가 그리 억울한지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지만, 일 년의 두 번이든 평생의 두 번이든 어머님들이 힘들어 했던 부분은 노동보다는 "식모 대접"의  부당함이었다. 나름 집에서 귀하게 자라 대학까지 나온 어머님들이 집안 노비 다루듯 하는 할머님들의 언사를 참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특별히 나쁜 분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겪어오고 살아온 생활방식을 따라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 싶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 어머님들은 분통 터지는 명절을 꾹 참아내면서 한번 고비를 넘기고, 가끔은 그게 머 어떻냐고 반문하는 센스 없는 남편들 때문에 마음 상해가면서 수십 년을 보내오셨다.


오늘의 내가 상며느리가 된 데에는, 사실 우리 어머님의 공이 매우 크다. 할머니들로부터 받은 억울함과 서러움을 "나는 내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안하리라"는 다짐으로 승화시키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결혼 , 처음으로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날이 떠오른다. 어머님은 시종일관 웃으시며 신기하고 재밌어하셨다. 내 손으로 곱게 키운 아드님이 어떤 여자를 만나 일평생을 함께하겠다고 하는 상황이 기특하고 재미있으신 것 같았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는, 아들에게 주던 사랑을,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을 그 아들이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모자람 없이 쏟아부어주셨다.


독립적이고 목소리 큰 며느리대단히 살갑지는 않았지만 어머님은 며느리가 편안해야 아들도 편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하신 것 같다. 가끔은 과한 사랑으로 며느리를 몸 둘 바 없게 하셨지만, 다행히 그 사랑은 곧 토끼 같은 손주들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나는 상며느리가 되었고, 내 방식대로 시어머님을 아끼고 잘해드리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이시니, 편안하시도록 내가 한 번씩 챙겨봐 드리는 것이 맞고, 가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가게 되면 어머님아버님을 모시고 가야겠다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곤 한다.


사실 효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친정의 아래층에 살고, 시댁과도 자주 조우하는 나는 두 가지 정도가 나름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첫째는 무탈하고 화목하게 그렇게 잘 사는 것이다. "잘 지내지?"라는 인사말에는 흔한 평범한 일상이야 말로 큰 행복이라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잘 지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지금이 한없이 감사하다. 또 하나는 "자주 보여드리는 것"이다. 직장생활 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가끔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드리거나 영상통화를 하거나, 찾아뵈면 매우 기뻐하신다. 어머님 표현을 빌리자면 "피곤이 확 풀리고 스트레스가 풀리신"단다.


이렇게 올 해도 나는 상며느리로서 명절을 보냈다. 어차피 차례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함께 먹을 음식은 적당히 어머님이 준비해 주셨고, 시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사이, 나는 시댁 식탁에 앉아 급한 회사일을 처리했다. 같이 음식을 차려먹고 일상을 나누고, 상며느리에게 명절 스트레스는 없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을 볶을 일도 없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껴주시는 시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격려를 마음에 가득 채우고, 또 힘차게 일상을 살아간다.


우리 막내아들이 이제 18개월이 되었으니 2-30년쯤 지나면 언젠가는 며느리를 데리고 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 아들이 사랑하는 예쁜 아이가 결코 내 딸과 같을 순 없겠지만(그 아이도 엄연히 엄마가 있는데 그 자릴 넘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언제든 나와 남편을 찾아준다면 우리 어머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 상며느리로 따뜻하게 반겨주며 우리 아들과 함께하는 삶을 힘껏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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