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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Sep 11. 2023

요일을 아는 고양이

두랑이는 주말을 기억합니다

“두랑이 왔다.” 옆지기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휴대전화 cctv화면으로 밖을 살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두랑이 포착되었다. 두랑이는 한때 우리 집 마당냥이 었지만 지금은 식당 손님이 되어 버린, 무정한 수컷 고양이다.

 일주일 만이었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팽개치고 닭가슴살과 츄르를 챙겨 마당으로 나갔다. 외등을 켰지만 사위는 어둠에 묻혀 있었다. 허겁지겁 마시듯이 밥을 먹고 있던 녀석에게 닭가슴살을 내밀자 맛있다는 듯 ‘냥 냥 응 냥’ 소리를 냈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목울대를 넘어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는 것과 흡사했다.


내 옆을 맴돌던 두리는 한 조각 먹더니 오랜만에 을 찾은 오빠에게 양보라도 하듯 멀찍이 앉아 두랑을 바라봤다. 밥 먹는 두랑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뼈가 불룩 솟아 있었다. 지난겨울 몸집을 불렸던 때에 비하면 거의 반쪽에 가깝다.  

    


두랑은 두 달 전 발을 크게 다쳤다. 덫에 치인 건지 큰 짐승에게 물린 건지 모르지만 발가락이 세 개나 잘린, 기막힌 꼬락서니를 하고 집 나간 지 열흘 만에 왔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물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자칫 상처가 곪을까 애를 태웠지만 별 탈 없이 잘 견뎌내 주었다.


길냥이의 삶 자체가 위험의 연속이란 생각을 해왔지만 머릿속에만 머물렀다. 두랑이 일을 당하고 보니 피부에 와닿았다. 역시 겪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두랑은 절룩거리지 않고, 전보다 잽싸진 못하지만 높은 곳에서 폴짝 뛰어내리고 담벼락도 잘 올랐다. 상태가 좋아 보여 벼르던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고양이도 지키고 개체수를 조절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덜 주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행정 자치센터에서 길냥이 포획 틀을 빌렸다. 녀석을 치료했던 동물병원에 문의해 보니 길냥이는 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 예약 없이 수술이 가능하다 했다. 암고양이는 삼일, 수컷은 하루. 입원을 해야 하니 목요일까지 데려 오라고 했다. 준비는 다 됐다. 녀석이 잡히기만 하면 끝이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르니 답답했다. 녀석이 전처럼 집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단골식당 찾듯 하고 있어 막연히 기다릴 도리밖에.    

  

포획틀을 가져다 놓은 다음 날. 혹시나 해서 병원 갈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녀석이 나타났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았다. 포획틀 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발버둥 치며 날뛰었다. 3킬로 남짓한 녀석의 힘이 그렇게 세다니 놀라웠다. 두랑은 내 팔뚝에 자신의 분노를 남기고 도망쳐 버렸다. 평소 안아도 별 반항이 없던 녀석이라 방심한 내 잘못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맘을 졸였지만  며칠 뒤 녀석이 나타났다. 간식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이번엔 고무장갑을 끼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또 실패. 이제 정말 틀린 건가. 포획틀에 간식을 놔두고 유인하는 방법이 있지만 두리 때문에 곤란하다. 마당에서 얼쩡거리는 두리가 갇힐 수 있어서다. 두랑이 잡으려다 두리까지 놀라서 집 나갈까 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두랑이가 몰래 다녀가는 것 같아 끼니때마다 고양이 밥을 두 그릇씩 담아 놓는다. 근데 까치 서너 마리가 아침마다 날아와선 밥을 먹었다. 어떨 땐 바닥에 온통 쏟아 놓고 먹었다. 귀여움을 장착한 진상이다. 새벽이면 유리창을 쪼아대며 잠을 깨우고 야외 테이블이며 집 울타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오이 그늘 아래 있는 두리 눈치를 살살 보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요즘 들어 어리광이 부쩍 늘고 입맛이 까다로워진 두리는 늘 제 몫을 남겼다. 그런데 아침이면 밥그릇 두 개가 깨끗이 비어 있었다. 두랑이 왔다 가는 게 분명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밤손님처럼. 치료하러 갈 때 붙잡혀서 크게 놀랐고, 두 번이나 잡힐 뻔했으니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열흘쯤 지나자 녀석이 아침에 나타났다. 녀석의 행차에 호들갑을 떨며 고무장갑을 챙기려는데 아뿔싸 금요일이었다. 다음은 토요일 아침, 그다음은 목요일 오후, 평일은 밤에 나타나서 몰래 밥만 먹고 쫓기듯이 달아났다. 주말엔 아침에도 불쑥 들른다. 아무래도 녀석이 요일을 아는 게 틀림없다. 어디서 누군가에게 특훈이라도 받은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목요일 오후부터 주말 아침만 나타날 수 있을까. 녀석은 여전히 ‘냐옹’ 거리며 애교도 부리고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마당으로 늦게 나가 먹튀 하는 녀석을 부르면 다시 돌아와서 후식도 야무지게 챙긴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서 집에 두고자 하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바깥세상 구경을 한 뒤부터 두랑이는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 며칠을 굶었는지 밥 두 그릇에 간식까지 먹고 한가로이 글루밍을 하는 녀석을 보고 말했다. “내일 아침은 목요일인데 또 안 올 거니?"  "꼭 와야 해”.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양동이로 들이붓듯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틀렸다. 녀석은 어젯밤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속으로 ‘흥, 쳇, 핏, 뽕, 어림없어, 내일 아침엔 비 온다고 했거든’하고 비웃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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