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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May 03. 2024

상큼 아삭  
상추김치 어떠세요

열무꽃밭 구경 하세요

  풍경이 달라졌다. 노랑을 닮은 연두와 초록 물이 살짝 들다 만 것 같은 연두, 연두의 누이 같은 초록과 만지면 푸르름이 묻어날 것 진초록,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자리를 지키는 녹색이 한데 어우러져 사방이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사월부터 오월 초까지만 볼 수 있는 봄의 향연이다. 오월 중순이 되면 제각기 몸빛을 자랑하던 나무들은 같은 색으로 닮아가며 초록 숨을 내쉴 것이다.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온 다음 날, 올봄 마지막 쑥국이나 끓일까 하고 바구니와 가위를 찾아들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뒷마당에서 한 길 높이만 올라가도 쑥을 캘 수 있다. 봄만 되면 욕심내지 않고 (사실은 캐기 힘들어)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뜯어 봄맛을 느꼈다. 잎이 억세지기 전에 한 번 더 캘 요량이었는데 아뿔싸, 빈터에 풀이 수북하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어린 쑥은 없다. 토끼풀과 잡풀들 사이에 섞여 캐기가 어렵거나 쑥쑥 자라 이미 무릎까지 자란 쑥만 지천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후 세 번째 맞는 봄이지만 산나물은커녕 아직 지칭개와 냉이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나마 자신 있게 아는 것이 쑥인 데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로 캘 수 있으니  봄이 되면 밥상에 자주 올리는 것이 쑥국과 쑥전이다.


시내 살 때는 그냥 넘기긴 아쉬워 마트에서 파는 쑥을 두어 번 사다 국을 끓여 먹는 게 다였다. 쑥국을 자주 끓이다 보니 요령도 늘었다. 깨끗이 씻은 쑥을 칼등이나 손으로 문질러 쑥향을 진하게 내는 법을 알았고 멸치 육수에 된장을 조금만 풀어 쑥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시원하게 끓이거나 때로는 쌀뜨물이나 콩가루, 들깨가루를 풀어 구수하게,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두부를 얇게 썰어 넣어 끓이기도 한다. 올봄에는 바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심란하여 쑥을 몇 번 캐보지도 못하고 시기가 지났다. 아쉽지만 떠나는 봄과 함께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의 쑥과 이별한다.   

   

  마당 옆으로 우리 집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이웃집 비닐하우스 두 채가 있다. 올해는 열무를 심었다고 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하우스 문을 열어 두니 고개만 들면 싱그런 열무잎들이 보였다. 올해는 여리여리하고 싱싱한 열무를 사서 김치를 담가 여름까지 먹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가격이 싸면 넉넉히 사서 지인들에게 나눔도 해야겠다고 수확할 때만 기다렸다. 하지만 하우스 주인이 바빠 수확시기를 놓쳐 웃자란 열무는 벌써 줄기가 뻣뻣해져서 판매 시기를 놓쳤다. 얼마든지 뽑아 가라고 했지만 엄청나게 많은 양이 밭에 있으니 또 담글 생각으로 옆지기에게 김치통 하나 채울 양만큼만 뽑아 달라고 했다. 그는 열무를 뽑아 오며 밭 가운데 열무는 아직 어리니 천천히 뽑아도 될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서둘러 열무김치부터 담글 생각으로 열무를 뽑아 오라 했더니 옆지기가 빈손으로 왔다. 대부분 키가 일 미터 남짓 자랐고 꽃대가 올라와서 늦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보니 하우스 안에 흰 꽃이 수북하다 못해 화원이 되어 있었다. 열무꽃을 본 적이 없어 가까이서 보고 싶어 비가 오는 데도 장화를 신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에서 단으로 묶어 파는 어리고 야들야들한 열무만 보았지 꽃핀 열무는 처음이다. 키가 한길이나 자라 무리 지어 흰 꽃으로 수놓은 열무밭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란 유채꽃밭은 관상용으로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하얀 열무꽃밭이라니. 아름답고 신기한데 안타깝고 속상하다. 애가 쓰이다 못해 슬프다.


하우스 안에서 사진 찍는 엄마 내려다 보는 두리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어린 쑥은 짙은 향기만 남기고 그새 줄기와 잎이 억세졌고 어린 열무들은 눈만 호강하는 꽃밭이 되어 버렸다. 무엇이든 때가 있음을 깨닫는다. 제철 먹거리를 거두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은 너무 서두르면 덜 여물고, 오늘내일하고 미루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도 한 가지다. 혼자 앞서가면 그 맘이 온전히 가 닿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새삼스러워 머쓱하고 어색해진다.

     

 봄에는 식물의 생장 속도가 하루가 다르다. 텃밭에는 깻잎 다섯 포기, 방아 두 포기, 상추와 샐러리, 부추를 심었다. 내일쯤 쪽파를 뽑은 자리에 오이와 고추 모종을 심을 것이다. 남들이 보면 소꿉장난 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작은 텃밭이지만 우리 두 식구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상추와 샐러리가 어느새 아침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작년에는 꽃상추, 청 사추, 로메인 상추, 조선 상추 등 일곱 종류의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같은 땅에서 똑같이 물 주고 가꾸어도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는다. 아직 초보라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품종을 제외하고 올해는 샐러드에 적당한 청상추, 쌈 싸 먹기 좋은 꽃상추, 잎이 두꺼워 나물이나 김치 종류를 담기에 좋은 로메인 상추만 심었다. 이 정도면 가을까지 먹고도 남아 이웃과도 나눔을 할 정도로 충분한 양을 수확할 수 있다.   

  

  작년엔 날마다 자라는 상추를 샐러드나 쌈으로만 소비하기에는 넘치는 양이라 방법을 찾다 보니 나물이나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식 나물, 살짝 데쳐 새콤달콤하게 굴소스와 버무린 나물, 상추 전을 비롯해 김치까지 여름내 상추만으로도 대여섯 종류의 반찬을 번갈아 만들었다. 그중에 제일 성공했다 싶은 게 상추 잘박김치다. 잘박김치는 겉절이도 아닌 것이 물김치도 아닌 것이 국물을 자작할 정도로 부은 김치로 날씨가 더워지는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김치다. 잘 익은 상추 김치 한 가닥을 맛보고 나선 올해는 아예 작정하고 로메인 상추를 김치 용도로 심었다.   

   

  로메인 상추의 큰 잎만 떼어 씻어 놓고 보니 김치를 담그기엔 아무래도 양이 부족할 것 같아 다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중간 크기의 잎까지 모조리 땄다. 신발 신고 5미터만 가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된장찌개 끓이다가 생각나면 청양고추와 방아잎 뚝 떼어 넣고 싱싱한 오이 잘라 바로 밥상 위에 올릴 수 있으니 이 재미 또한 쏠쏠하다. 당분간 우리집 밥상의 주인공을 상추김치가 차지할 것 같다. 혹시나 필요하신 분이 있을까 해서 만드는 법을 공유해 본다.


상추 김치     

재료 : 로메인 상추나 잎이 두꺼운 상추 500g, 밀가루 풀(밀가루 1 숟갈 + 생수 300ml), 양파 1개, 사과 1/2개, 마늘 5개, 생강 1/2톨, 홍고추 7개, 청양고추 2개, 새우젓 한 숟갈, 액젓 4 숟갈, 생수

** 저는 간단 버전으로 밀가루 풀 대신 식은 밥 2술, 간 마늘과 생강청을 사용했습니다.


상추 절이기 : 물 1L에 천일염 3 숟갈, 식초 2 숟갈 넣어 상추를 20분간 절인다. 10분 후 뒤집어 주고 총 20분 지나면 깨끗한 물에 헹군다.


만드는 법

1) 깨끗이 씻은 상추는 물기를 털어내고. 양파 1/2개를 채 썬다.

2) 김치통에 상추와 양파를 사이좋게 켜켜이 담는다.

3) 사과, 양파, 마늘, 생강, 홍고추 5개, 청양고추 2개와 새우젓, 식은 밥에 생수 2와 1/2컵을 넣고 간다.

4) 남은 홍고추 2개는 비주얼 담당이므로 굵은 입자가 보이게 믹서에 살짝 갈거나 칼로 다져서 넣는다.

5) 3에 설탕 1 숟갈 반, 액젓 넣어 간을 보고 각자의 입에 맞게 최종 간은 소금으로 한다.

6) 김치통에 4를 부으면 초 간단 상추 김치 완성. 익혀서 먹으면 시원, 아삭, 새콤 참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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