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우유니 소금 사막을 보기 위해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국경 마을 카사니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위해 페루 출입국 관리소로 들어갔다. 카사니 마을은 페루 땅과 볼리비아 땅으로 나뉘어 있는데, 길에 쇠사슬을 쳐놓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Control Migratorio Kasani Peru'란 현판이 걸린 기와 건물이 페루 출국관리소이고, 볼리비아 출입국관리소는 쇠사슬을 넘어 걸어가면 된다. 걸어서 가볍게 국경을 넘지만 비자를 만들어야 하고 당연히 여권도 보여주고 수속을 밟아야 한다. 볼리비아 국경에서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다. 빨리빨리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속도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답답해서 속에 천불이 날 지경이다. 간단한 수속을 마치는데 무려 두 시간이 넘게 걸렸고 환전을 위해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렸다.
페루의 출입국 관리소(위)와 볼리비아(아래)의 국경
우리는 전용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쪽 티티카카 호수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코파카바나로 이동했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는 호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다. 제주도의 4.5배 크기에 높이는 한라산의 두 배가 넘는 해발 3,8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로 대형 선박도 항해가 가능하다.
코파카바나로 가기 위해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그다음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승객들이 작은 배로 이동하면 그 뒤를 이어 뗏목같이 생긴 납작한 배가 커다란 버스를 싣고 호수를 건넌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광경이다.
배가 출발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선착장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우리나라 포장마차 같은 천막들이 즐비하다. 맛집인지 현지인을 비롯해 관광객이 줄 서 있는 곳도 있었다. 한쪽에는 여인들이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옥수수와 그네들이 먹는 빵, 그리고 우리나라의 뻥튀기 비슷한 간식을 팔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이지만, 이 날은 이 몸이 고고(고산병으로 고생)하여 식욕이 없었다.
페루에 도착하고부터 줄곧 느꼈지만 원주민 여인들의 옷이 참 화려하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부족에 따라 웃옷의 길이와 치마 모양과 색깔에 차이가 있다. 이 마을 여인들의 치마는 페티코트를 받쳐 입은 듯 한껏 부풀려 있는 게 특징이다.
저녁 식사 장소는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해 식욕이 십리 밖으로 달아났지만 다음 날 일정을 듣기 위해 병든 말처럼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자리에 앉았다. 설명을 듣고 음식에 미련이 없어 먼저 방에 가서 쉬겠다며 일어서 출입문을 나섰다. 아! 난 고산병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엄청나게 두꺼운 유리문으로 직진하여 그대로 박았다. 눈앞에 별이 보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진짜 별이 수십 개가 보였다. 쿵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식당 안 손님들이 다 쳐다봤다. 출입문 근처에 앉은 외국인들이 거의 울상이 된 듯한 표정으로 괜찮냐는 눈짓을 보냈다.
눈에는 눈물이, 입가엔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야 대단한 사람.(대 XX가 단단한). 진정 괜찮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야 했다. 쪽팔려 죽는 것보단 차라리 아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지나면서 머리를 만져봤다. 불쑥 솟아오른 것이 만져졌고 그것은 절대 귀엽다고 말할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을 깨자마자 머리부터 만졌다. 욱신거리긴 하지만 혹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엊저녁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칫솔을 입에 물고 거울을 본 순간 ‘아~악’ 소스라치게 놀랐다. 흉측하게 부은 얼굴, 짜부라진 눈까진 봐 줄만 했다. 보라색 멍이 얼굴 오른쪽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등 뒤엔 수습 불가한 난처함과 당혹감, 그리고 웃음을 참는 듯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의 남편이 서 있었다.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 되지 않냐며 달래는 남편에게 이 꼴로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온 남편의 손에 샌드위치와 날 계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서빙하는 직원에게 손짓발짓으로 날 계란을 달라하니 삶은 계란을 주더란다. 다행히 인솔자가 눈에 띄어 도움을 청했고 그녀는 어렵사리 날계란을 남편 손에 쥐어 주었다. 공수해 온 샌드위치는 비주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엊저녁도 먹지 않아서인지 그 와중에 배는 고팠다. 머리엔 혹, 멍든 얼굴을 하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빵을 넘기는 내 꼴이 참 가관이었다.
그날의 일정은 티티카카호수 내에 있는 태양의 섬 관광이다. 태양의 신 '인티'가 이곳에서 태양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섬이다. 잉카 3대 성지중의 하나란 말이다. 벌써 페루에서 볼거리 2개를 놓쳤다.
잉카 신이시여!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더 이상 참담함을 겪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날 하루 종일 호텔 방에 처박혀 날달걀을 볼에 대고 굴렸다. 한숨 소리에 박자 맞춰 열심히 굴리다 보니 오후엔 멍이 제법 가라앉았다.
저녁 무렵 돌아온 남편은 위로랍시고 “그까이 거 뭐, 별거 없더라. 그저 그랬어.”하며 수십 장의 사진을 보여 준다. 정말 별거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호수와 손에 닿을 듯한 구름,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움 풍광밖에는. 에라이~
그날 저녁부터 방 밖으로 나올 땐 항상 선글라스를 꼈다. 컴컴한 불빛 아래 저녁을 먹을 때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 아래에서도. 한 달 동안 찍은 사진의 절반 이상이 선글라스를 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그날부터 보라부인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