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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21. 2024

등 뒤의 사랑 3

 병원을 나선 연수는 하천을 따라 걸었다. 세정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정의 마음을 읽어 내지 못한 자신이 멍청하고 한심했다. 아빠 생각이 났다. 그날 아침 아빠는 학교 가는 연수를 안았다. 평소보다 너무 꽉 껴안아 숨쉬기 힘들다며 버둥거렸지만 한참 동안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그때 알아챘더라면. 아빠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건 정말 빚 때문이었을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들쑤실 때 ‘내일은 대체로 흐리고 지역에 따라 간혹 천둥 번개와 돌풍을 동반한 비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천 옆 체력 단련장에서 중년 남자 둘이 라디오를 켜놓은 채 운동기구와 씨름하고 있었다. 연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커먼 구름이 언제 덤빌지 모르는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휘날리던 낙엽 하나가 연수의 머리끝에 톡 하고 앉았다가 이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이월 초인데도 코끝이 시렸다. 연수는 코트 깃을 세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추워서 그런지 허기가 몰려들었다.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급식에 나온 미역국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릴 적 먹었던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큰 크기의 굵은 설탕이 덧입혀진 왕사탕. 그때의 사탕이 목에 걸린 느낌이다. 하지만 목구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증상이 처음 나타난 건 대학 입학 원서를 제출한 다음 날이다. 아침에 물을 마시려는데 목이 갑갑하고 토할 것 같았다. 전날 저녁 먹은 음식이 체했나 싶어 소화제를 먹었지만, 이물감은 여전했다. 며칠간 계속되는 증상으로 이비인후과와 내과, 한의원까지 갔지만 특별한 원인은 없었다.‘인두신경증’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한 심리적 증상이라 했다. 


-엄마, 딱 한 번만 내 말 들어주면 안 돼? 내가 아르바이트 열심히 할게.

-돈이 문제가 아이다. 여자 직업으로는 선생이 최고다.

-나 교사 싫어. 엄마, 제발 서울 보내 줘.

-서울은 무슨, 작가가 어데 말처럼 쉽나? 언제 엄마가 틀린 말 하는 거 봤나? 시키는 대로 해라.


연수가 고집을 부리자, 엄마는 인연을 끊을 생각이면 네 맘대로 하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결국 연수는 J시에 남아 국어교육학과로 진학했고 교사가 되었다. 엄마는 지금도 내 말 듣기 잘했지? 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큰길을 건너자 늦은 시간이지만 문을 닫지 않은 식당이 서넛 있었다. 그중 노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국밥이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돼지국밥 하나 주세요.”

자리를 잡은 연수의 시선이 맞은편 테이블로 향하다가 흠칫했다. 회색 점퍼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국밥을 먹고 있었다. 김이 서린 안경을 옆에 벗어 두고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먹는 모습이 낯이 익다고 생각하던 차에 국밥이 나왔다. 뽀얀 국물이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국물부터 한 숟갈 삼켰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막혔던 목구멍이 트이는 것 같았다. 국물에 부추를 털어 넣고 밥을 통째 말았다. 


  아빠는 엄마가 친구들 모임에 가고 나면 가끔 중앙 시장 안의 돼지국밥집으로 연수를 데리고 갔다.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열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솜사탕처럼 보여 연수는 일부러 얼굴을 갖다 댄 적도 있었다. 아빠는 돼지국밥 두 그릇과 순대 한 접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국밥에 밥을 통째 말아 그 위에 부추를 넣어 한 입 크게 떠먹으며 아빠처럼 해보라고 했다. 어린 연수도 밥을 말아 한 숟갈 뜨며 이렇게? 하고 웃었다. 


아빠는 연수의 식성이 자신을 닮은 것에 흐뭇해했다. 식당 주인은 어린애가 돼지국밥을 잘 먹는다고 신통해하며 머리 고기를 더 넣어 주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 둘은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입에 물고 엄마한테는 비밀이라며 키득거렸다. 엄마는 돼지국밥을 입에 대기는커녕 냄새도 싫어했다. 대학생이 되어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땐 반찬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그 후로 가끔, 아주 가끔 아빠가 생각나면 연수는 시장 골목을 찾아 혼자 돼지국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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