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할 상인가?

by 도희

틱톡. 문자 알림음이다.

[국외발신] 메타 플랫폼즈 잉크의 개인정보 이용 내역 통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왔네. 잊을만하면 날아오는 피싱이나 스미싱 문자를 받을 때마다 불끈 치솟는 욕구. 시원스레 한바탕 욕을 퍼붓고 싶지만 그랬다간 날벼락을 맞을 테지. 도 닦는 마음으로 참는다.

참을 인자 셋이면 돈을 지킬 수 있다.


십여 년 전 친하게 지낸 동료 교사가 이것 좀 보라며 본인 폰의 카톡 문자를 보여 줬다. 급하게 돈 쓸 일이 있으니 아래 계좌번호로 돈을 보내 달라는 사촌동생의 문자였다. 현명한 그 선생은 퍼뜩 이상한 촉을 느끼고 이모는 어떠신지 안부를 물었다. 그랬더니 잘 지낸다는 두루뭉술한 답을 보냈다. 이번엔 좀 더 집요하게 다른 사촌의 이름과 특정 사건을 들먹였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끝에 문자 저쪽의 괴인물은 꼬리를 내리고 사라졌다. 그즈음 또 다른 교사는 친정어머니 행세를 하는 스미싱 범에게 삼백만 원의 돈을 뜯겼다.


“여보세요, 선생님. 1학년 4반 김가나(가명) 엄만데요.” 연방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다. 아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한달음에 뛰어가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학부모님을 안심시킨다.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때면

일 년에 몇 번씩은 학생의 등교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게 된다. 나도 언젠가 이런 전화를 받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걸리기만 해라. 가소롭게 비웃으며 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어.

이래 봬도 나 베테랑이야.




10년 전. 오후 3시경. 마침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보물 1호’ 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들의 애칭이다. 아들은 고 2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청소시간인가 여기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응, 아들 웬일이야.”

“보물 엄마시죠. 이 소리 들려요.?” 수화기 너머로 낯선 사내의 목소리와 몽둥이 소리, 엄마를 부르며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여태까지 학생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이건 달랐다.


의심의 여지없이 아들의 전화번호였고

그 남자는 정확하게 아들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절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고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당장 가서 750만 원을 인출하여 송금하라고 한다. 그리곤 엄마를 애타게 불러대는 목소리를 다시 들려줬다. 아들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내 새끼 몸에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비명소리만 놓고 본다면 아들은 이미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가까스로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붙들고 휴대폰을 켜 놓은 채 학교 유선전화로 아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역시 통화 중이었다. 놈은 빨리 움직이라고 성화다.

그 와중에 나도 화를 냈다. 내가 지금 현금 인출기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긴 직장이다. 현금 인출기는 학교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고 소리 질렀다. 전화기 속의 남자는 연신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옆에 앉은 선생님께 필담으로 아들의 번호를 가르쳐 주며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전히 통화 중이다. 가슴이 털컥 내려앉고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침착해야 한다.

그놈 목소리를 들으며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간청을 했다가 이내 다그치지 말라고 고함도 질렀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게 부러 뛰어가는 척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 3학년 실로 갔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 남편이 있는 곳이다. 다행히 C선생은 2년이나 동학년을 같이 한 터라 친분이 깊다.

종이에 간략히 써서 상황을 알리고 아들이 학교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러는 중에도 현금 인출기 있는 곳에 다 와 간다느니, 기다려라느니 전화기 너머의 그놈과 계속 입씨름을 했다.

잠시 후 C선생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복도로 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그놈에게

“야이 X자식아, 인생 그따위로 살고 싶냐?”라고 퍼부었다. ‘딸깍’

그제야 통화가 종료되었다.


불과 15분 동안이었지만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만약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었거나 동선이 꼬이기라도 했다면 어쩔뻔했나 싶었다.

분한 마음은 고사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겠단 생각에 통신사에 문의하니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한다.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니니 경찰서에 신고하기도 애매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맥이 빠져 무슨 정신으로 남은 수업을 마무리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저녁 식사시간에 전화를 거니 아들이 받는다.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아들도 자신의 폰에 수백 통의 통화목록이 떠 있어 이상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하니 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북어 대가리처럼 흐물거렸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엄마가 얼마나 침착하게 대처를 잘했는지,

그 순간에도 대범함을 잃지 않고 그놈에게 맞대거리를 찰지게 했는지 입에 침을 튀기며 무용담을 전했다.

“엄마는 귀가 얇아서 탈이에요.”

아들의 첫마디다. ‘이런! 나쁜 놈 뭐라고’


아들의 키는 183cm다. 건장한 체력의 고등학생을 백주 대낮에 누가 잡아가겠냐고 놀린다. 아까는 듣고만 있던 남편이 이번엔 아들과 합세하여 나를 놀려 먹는다.

아들아! 모르는 일이다. 두서너 명이 달려들어 입에 자갈을 물리거나, 손수건에 약품을 묻혀 입을 틀어막고 삽시간에 봉고차에 태우기라도 하면 네가 이길 성 부르냐?

둘다 날더러 드라마나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단다.


잠들기 전 문득 생각이 났다.

왜 그놈은 하필이면 750만 원을 요구했을까?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

자식이 날 뭘로 보고.

7억 도 아니고 7500만 원도 아니고 감히 나의 보물에게 750만원의 몸값을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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