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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니드 Jul 07. 2022

죽음 직후 나의 인생 영화를 관람하며

장기 조직 기증을 희망하며

필름이 돌아간다. 검은 천막에는 아기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기는 어린이가 되더니 청소년으로 자라고 청년으로 성정한다. 그러다 갑자기 놀라는 나.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필름이 끊어져 영상이 끝나 검은 화면만 남아있다.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봤을 때 3자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태어남은 부모님의 선택이지만 죽음은 예고치 않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갓난아이부터 고령의 어르신까지, 그게 ‘나’일 수도 ‘가족’일 수도 ‘우리들’일 수도 있다. 나아가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인정하기 싫겠지만 결국 노화로 인해 어느 한 곳이라도 장애를 얻어 생을 마무리한다. 유한한 삶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행복한 삶이란, 또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꼭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종교적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여러 물음이 있지만 일상 속에 묻혀서 지나치고 만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고, 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살린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지금은 나와 관계없는 다른 세상의 얘기 같겠지만 당신이 주인공이거나 출연자가 될 수도 있다.


올해 초 헌혈과 관련된 취재를 하다 ‘장기기증’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오해하는 점이 사람이 죽으면 바로 장기를 떼어간다고 알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의 장기는 보호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기증할 수가 없고, 당사자가 뇌사 판정을 받고 보호자가 허락을 해도 이식받을 대상과 조건이 맞아야 한다. 또, 장기를 옮기는 시간을 놓치게 되면 장기기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남해군보건소와 남해군보건소 2층에 위치한 공공의약팀이다.

그 후 바쁜 일상 속에서 신청할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장기기증이라는 단어는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건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로 해석했고 선거 일정을 마치고 지난 6월 24일 남해군보건소 2층에 위치한 공공의약팀을 방문했다. 기증 형태도 다양하다. 총 20개 종류가 있는데 크게 보면 장기와 조직, 안구 세 가지다. 중복신청도 가능하니 전부 신청했다. 신청서 작성을 하고 나니 생명 살림 관련 선물도 준다. 부모님에게도 알렸다.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대한민국의 기증희망등록은 2019년 14만7천61명에서 2020년 12만9천644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17만5천864명으로 증가했다.


남해군에서는 2008~2018년까지 12명, 2020년부터 2022년 6월까지는 23명이 장기기증을 희망했다. 비율로 보면 남해군 인구 약 4만9천명 중 0.08%이다.


누구에게는 쉬운 선택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꺼려지는 선택일 수도 있다. 또 누구에게는 싫은 선택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여건일 수도 있다. 

장기기증 신청은 나의 망가진 건강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내가 건강해야 건강한 장기를 기증할 수 있고, 꼭 필요한 이들의 삶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버리면 충격은 꽤나 클 것이다. 슬픔, 후회, 미안함 등 여러 감정도 들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 한 켠에는 내 작은 흔적들이 다른 절실한 삶에 쓰인다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을 살았다는 관람평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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