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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pr 11. 2020

PhD-TSD:
박사 후 스트레스 장애 - e01.

episode 01: 그는 왜 공대를 갔는가? 

막연하게 그가 그리던 '공대 박사'는 그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득, "그가 어떤 이유로 공대를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물론 이제는 십수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고,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 왜곡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만. 물론 왜곡된다면 왜곡되는 대로 그 기억조차 의미가 있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우선, 그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이과 남학생에게는 보통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공대'이거나 '의대'이거나. 그리고 그 선택지에서 그는 '공대'에 마킹을 한 것이죠. 그리고 이는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첫 번째, "왜 공대에 가고 싶었는가?" 혹은 두 번째, "왜 의대에 가기 싫었는가?".


사실 그는 그저 막연하게 '공대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대생이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보았던 '공대생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학교에서 보던 잡지 <포스테키안>과 <과학동아>는 그가 학업에 지쳤을 때, 새로운 지적인 호기심과 환상을 계속 불어넣어줬습니다. 그 당시 그의 마음은 '반드시 박사가 되어야 해'까지는 아니었고, 그저 '지적인 호기심'과 '공학도에 대한 환상 or 공학도-워너비'정도의 마음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대'를 가고 싶었던 마음과 동시에 '의대'를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인생에는 '돈'보다 빛나는 무엇이 있다고 어느 정도는 믿습니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가치는 단지 '돈'만으로 쉽게 치환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당시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의대에 가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며 부자가 된다'라는 관점으로 의대와 의사를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그 '안정적'이라는 말이 꽤 패기 없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삶에는 '돈'보다 훨씬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그의 (비록 매우 막연할지언정) 지적인 호기심이 최소한 '돈'보다는 훨씬 중요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물론, 이때의 그는 "그의 지적인 호기심이 머지않아 모두 불타버린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생각이 강화된 것은 그의 친척, 의사인 외삼촌 때문이기도 합니다. 글쎄요. 그가 보기에, 외삼촌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주관적으로 다양한 결이 있고 무엇 하나로 정리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에게 외삼촌은 본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혹은 즐기면서 산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좀 더 간략히 말한다면, "자신의 현재 삶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일보다, 과거의 일을 이야기할 때가 훨씬 많았다"라고 축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는 "현재의 본인의 삶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없다면, 저렇게 지루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매우 공교롭게도 당시 의대를 지망하던 그의 주위 친구들 또한 그와 유독 성향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논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그에게 그의 친구들은 모두 '계산적'으로 보였고, 이 경험과 이전의 경험을 합쳐 "어릴 때부터 돈과 안정성을 선택하게 되면 사람이 매우 좁은 범위에서의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은 최적해를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정도의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이는 소수의 데이터에 overfitting 된 결론이기는 합니다.


결국 그는 늘 그의 텅 빈 마음을 채워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삶을 구원해줄 '대의', '이상'과 같은 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죠. 어릴 적부터 그는 "인생은 돈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더 대단한 것이 있을 거야, 혹은 찾아야 해"라는 매우 막연하고 이상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그에게는 가소롭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집이 풍요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쪽에 가까웠죠. 네, 공부를 잘한다고 오냐오냐, 집의 어려운 점은 말해주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게 해 주면 그 아이는 이상주의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이상적인 태도가 앞서 말한 좀 더 '현실감각'이 있는 친구들과 잘 맞지 않았던 이유겠죠. 


그리고, 그는 그의 머리가 꽤 좋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고2 겨울방학이었지만 고3 여름방학부터는 본인보다 높은 등수에 있던 거의 대부분 제쳤으니까요. 그러니, 이 학생이 얼마나 기고만장했을까요. 마치, "나의 재능은 좀 더 쓸 모 있는 곳에 쓰여야 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고만장했군요. 


그리고, 그 비어 있는 부분을 '공대생'이라는 환상이 제대로 저격을 한 것이죠. 그것은 매우 크리티컬 하게 맞아 들어갔고, 그는 "공대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라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쓰고 보면 마치 '중2병'적인 마음으로 공대에 오게 된 것 같군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허세를 가지고, 공대를 희망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추가하여, 그의 성적은 TOP급 의대를 가기에는 부족했습니다. TOP급 공대를 가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죠. 이렇게 보면 다시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특별하고 싶었고, '애매한 의대'를 가서 그 특별함이 무색해질 바에야, 'TOP급 공대'를 가서 나의 특별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 같은 마음. 그러네요. 그는 참 일관적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는, 이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꿈이 '박사'로 진화하게 됩니다.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학부'만으로는 특별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어릴 때 꿨던 꿈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욕심 혹은 오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마무리 짓지 않으면, 그는 결국 그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리고, 그 사막과 같은 곳, 그 소용돌이를 지나, 박사가 되었고 이후 모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행복한, 결말인가요? 


다만, 약간은 불행하게도 요즘의 그는 '의대'를 갔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뭐랄까요, 그는 '회사원'이 되고 싶어서 이 힘든 시절을 거쳐 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결말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좋은 회사의 좋은 연봉의 회사원'이었죠. "결국 내가 그 고생을 하며 도달한 곳이 '좋은 직장'일 뿐이라면, 내가 왜 의대를 가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에 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게 아니면 도대체 뭘 원한 건데?'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냉정히 말하면, 그의 머리는 준수했지만, 뛰어난 성취를 보일만큼 특별하지는 않았고, 그의 노력 역시 특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박사 시절에 보여준 성취 또한 특별하기는커녕, 평균 아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죠.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타이틀'이 아님에도 그는 꽤 오랫동안 그 사실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너무 늦었을 수도, 혹은 너무 빨랐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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