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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an 06. 2024

숨 쉴 만큼 덜어내는 꿈과 욕심

너무 큰 꿈이 버거울 때는 숨 쉴 만큼 덜어내어도 좋다

서래마을에 감나무 빛이 도는 서까래 지붕을 가진 집이 있었다. 단독 집을 집을 개조한 내가 다니는 디자인 사무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무실 풍경에 디자인 감각이 샘솟을 것 같았다.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 한 그루, 나무에 달린 주홍빛 감들도 멋을 더했다. 동네 집들의 느낌도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예쁜 동네도 있었구나. 부자 동네로 알려진 서래마을 분위기에 취한 나는 어느새 그들 틈에 낀 것 같았다.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주변에 보이는 집들을 가리키며 ‘이 집은 얼마래? 저 집은 얼마래?’ 몇십억이 우스운 집들을 보며 부러웠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굴까 질투도 났다. 그중에 유독 눈에 들어온 한 집. 넓은 마당에 잔디와 나무가 깔끔하게 정돈된 3층짜리 집이었다. 평온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내게 꿈이 생겼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저 집 내가 찜했어’. 이전까지 돈을 모으는 의미가 막연했다면 돈을 모아야 하는 목적이 집 사기가 되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에 치이기 시작했다. 은행과 증권사일을 도맡았기에 숫자에 민감한 거래처들은 분 단위로 수정을 요구했다. 수시로 전화를 받느라 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급기야 수화기를 던져버리기도 했다. 나뿐이 아니었다. 탕탕탕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수화기 던지는 짜증 소리가 들렸다. 일은 쉴 틈 없이 밀려들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늘 야근으로 자정이나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계속되는 야근에 몸도 마음도 푸석하게 말라갔다. 회사 마당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이 꼭 나 같았다. 


그날도 스트레스를 잔뜩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 마음에 품었던 3층 집을 봤다. 편안한 차림으로 노부부가 마당에서 웃으며 빨래를 걷고 있었다. 옆에 조그마한 귀티 나는 강아지가 뛰노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지나갔다. 일에 찌들어 있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며 일해도 저런 집에서 살 수 없겠구나’라며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로서는 그들의 삶을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그들은 추월차선에, 나는 서행차선에 선 듯 갈 길이 달라 보였다.



열심히 일하면 이 동네로 이사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은행에 가서 적금도 들고, 은행장이 추천한 펀드도 들었다. 점심값을 아끼려 동료들과 함께 점심도 싸서 다녔다. 밤 11시에 일이 끝나면 일부러 한 시간을 더 채워 12시가 돼야 나오는 야근택시비를 이용해 집에 갔다. 그렇게 아껴도 돈은 생각한 것만큼 모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일에 대한 재미도 잃어갔다. 



이럴 때 직장인들이 제일 힘빠지지 않을까? 꿈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치고 만다. 성공한 사람들은 꿈을 크게 가지면 좋다고 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도 선명하게 꿈을 그리면 이룰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때만큼은 내 꿈의 크기가 걸림돌이 되었다. 출퇴근하며 ‘저 집은 내 집이야’라고 마음을 먹어도 일에 치이면 그 차이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조치가 필요해 꿈을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야근비를 받으려고 더 일하는 대신 서래마을의 밤거리를 걸으며 퇴근했다. 야근으로 잠이 모자란 날엔 점심 싸기를 포기하고 좋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며 가며 보던 집들은 그저 좋은 풍경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도 전보다는 할 만해졌다. 너무 큰 꿈이 버거울 때는 숨 쉴 만큼 덜어내어도 좋다. 지금도 꿈이 커지고 욕심이 차오르면 덜어낸다. 덜어내야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내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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