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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ul 20. 2024

유튜버가 되어버린 초등교사의 최후

송길영, <시대 예보>

알파고 사태는 그냥 넘겼다. 이세돌 9단이 지든 말든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어차피 초등학교 교육과정엔 바둑이 안 나오니까.


코로나19는 조금 달랐다. ‘교사 무용론’이 나올까 두려웠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내 불안도 커졌다. 이러다 나 실직자 되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와이파이도 없는 교실에서 개인 데이터와 노트북으로 학생들과 실시간 원격 수업을 했다. 그게 내 최선이었다.


챗GPT는 차원이 달랐다. 녀석은 예술을 넘봤고, 코딩을 주물렀으며, 문제 풀이는 대기전력만으로도 해치웠다. 뉴스에선 AI가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 떠들었다. 없어지는 직업 중 하나가 초등교사면 어떡하지? 나 실업자 되는 건가?


그때 어떤 책을 만났다. 송길영이라는 작가가 쓴 ≪그냥 하지 말라≫였다. 저자는 빅데이터 관련 국내 최고 권위자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미래에 관해 얘기한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홀리듯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그냥 대충 하지 마세요. 할 거면 제대로 하세요. 인공지능이나 기계에 대체되지 않게 무기를 기르세요. 오직 당신만 할 수 있는 걸로요.”


초등교사는 뭘 할 수 있을까? 덜그럭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내가 결국 짜낸 해결책은 ‘기록’이었다. 새로 알게 된 모든 걸 SNS에 남기기로 한 것이다.


전문 지식은 블로그에 남겼다. 그걸 카드뉴스 형식으로 바꿔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생각과 느낌은 수필 형식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다. 최근엔 SNS의 끝판왕이라는 유튜브도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을 했다.

 

그 동안 많은 걸 얻었다. 우선 악플이다. 나는 매일 아침을 상큼하게 악성 댓글로 시작한다. 악플러들은 내 진심 따위는 봐주지 않는 것 같았다. 반쯤 마시다 남긴 저가 커피를 버스정류장 벤치에 버리고 가는 것처럼 나에게도 아무런 악의 없이 악플을 달았다. 덕분에 나는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없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게 됐다.


다음으로 얻은 건 허리 통증이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당연히 온몸이 쑤신다. 목과 허리가 아픈 건 기본이고 눈도 항상 뻐근하다. 도대체 스티븐 킹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사람은 이걸 어떻게 견딘 걸까? 만약 유명한 작가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허리 건강 어떻게 챙기셨어요?”를 물어볼 것이다.


악플과 요통만 얻은 건 아니다. 나름의 성과도 얻었다.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이 다음 포털 메인에 5번 걸리기도 했다. 내 블로그를 보고 신문사에서 연락을 줘서 3년째 칼럼도 쓰고 있다. 작년엔 내가 몸담은 교육청 지원으로 책도 한 권 출간했다. 인생이 바뀐 것이다.


문제는 인생이 ‘쬐~끔’ 바뀌었다는 거다. 솔직히 이 짓을 5년쯤 하면 인생이 통째로 바뀔 줄 알았다. 수백 명 앞에서 정장 입고 강연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방구석 크리에이터였다. 우리 반 학생도, 옆 반 선생님도 내가 뭘 하는지 몰랐다. 아무도 모르는 유명인이 바로 나였다.


“이게 뭐예요 송길영 씨!”라고 투덜대던 순간, 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2024 진주시민 독서감상문 공모전>이었다. 솔직히 보자마자 짜증 났다. 작년에 여기에 ≪최재천의 공부≫로 야심 차게 지원했는데 시원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삐져서 올해는 못 본 척하려고 했다. 그래도 글쟁이가 어찌 공모전을 넘기랴. 결국 나는 대상 도서를 확인해 버렸다.


송길영, ≪시대 예보≫


5권의 책 가운데 한 책이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또 송길영 작가였다. 그새를 못 참고 신간을 냈나 보다. 일단 인터넷에서 목차를 확인했다.


책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은 ‘K-대한민국’의 민낯을 훑었다. 다음으로 작가의 주특기인 ‘인공지능’을 읊었다. 이어서 ‘대체되지 않는 나’와 ‘굿바이 K-유교’가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핵개인’을 언급하며 책이 끝났다.


불충한 생각이 올라왔다. 2021년에 ≪그냥 하지 말라≫로 속았으면 됐지, 2023년 ≪시대 예보≫로 또 속으랴? 사기도 한두 번 당할 땐 사기꾼 잘못이지만 그 이후부턴 당한 사람도 잘못이 있댔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책을 집었다. 이를 박박 갈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마침내 내 뒤통수를 치는 문구를 만났다.


"그렇다면 무엇을 팔아야 할까요?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은 서사narrative입니다. 각자의 서사는 권위의 증거이자 원료입니다."


할 말을 잃었다. 저자가 내 징징거림에 답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요즘 버전인 조승연 작가, 방구석에 있는 나에게 전 세계 건축물을 읽어주는 유현준 교수 말이다. 그들은 내러티브가 있었다. 어느 순간 뿅!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 수십 년간 서사를 쌓았다. 그것 때문에 내가 그들을 존경했던 것이다.


고작 교사 생활 10년 해놓고, 글쓰기 고작 5년 해놓고, 탐스러운 사과가 쿵! 떨어지길 나는 바랐다. 그건 도둑놈 심보였다.


≪시대 예보≫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결과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모든 걸 ‘서사 쌓는 과정’으로 여기기로 했다. 실패든 성공이든 모두 내 역사관에 기록될 것이다.


역대 인류 중 IQ가 가장 높았다는 독일의 철학자 괴테가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그 방황조차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그게 내러티브고, 그게 나를 경쟁력 있게 만들 것이고, 그게 내 권위의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데 뭐 하나 바뀌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송길영 작가에게 공감과 위로, 그리고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함께 서사 쌓으러 출발!



사진: Unsplash의Sebastian Pandel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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