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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엄마의 인생이니까

봄, 진료실 안

1. 선생님이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진료일이 되었다. 일단, 나는 지지난 진료 때 면담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재밌다고 느끼면서, 주치의도 나와의 대화가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재미있는지 궁금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왜 면담 ‘치료’, 즉 나를 위한 시간인데도 상대방이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누구와 있어도 상대가 재미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 진료 때는 어딘가 답답했다. 주치의는 내가 계속 ‘보고 싶지 않은 것’을 피한다고 했다. 나는, 또 이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임에도, 마치 주치의가 원하는 ‘답’이 있다는 듯이, “내가 뭘 어떻게 말하길 바라는 거야? 차라리 질문을 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엄마 얘기를 시작했다.



2.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꼈어요.


엄마에게 느꼈던 배신감에 대해서는 지난 정신과 진료 후기에 썼다. 지난 진료를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내가 엄마 편을 들어 아빠와 적대하도록 만들었으면서, 정작 이혼보다는 나를 아빠와 분리하는 것을 택하려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엄마가 아빠를 선택하고, 나를 쫓아낸다고 생각했다. 


주치의는 그때 엄마에게 그 감정에 대해서 말했는지 물었다. 나는 화를 내긴 했던 것 같은데, ‘엄마한테 아빠가 나보다 중요한 것 같아서 서운했다’ 이러진 않았다. 주치의는 당시에 힘들었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너무 ‘정신과의사’ 같아서 나는 '쿨하게' 힘들었다고 했다. 나의 감정적 흔들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3. 치료자에 대한 감정, 엄마에 대한 감정


주치의는 치료자에게 든 감정에 대해서는, ‘치료자’를 ‘엄마’로 바꿔보라고 했다.


“’엄마’가 재밌었으면 좋겠다. 이렇게요? 음 그리고 엄마가….”

“’엄마’는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


주치의는 치료자에 대한 감정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었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 선생님 멱살 잡고 짤짤 흔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주치의는 놀란 티도 안 냈다.


“어머니에겐 화를 내지 못하나봐요.”

“안 내죠.”

“왜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엄마를 좋아하니까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화를 낼 때도 가끔 있어요. 그러니 다른 이유가 있겠네요. 음… 엄마는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한 것처럼 구니까. 화를 낼 수가 없어요.”



4. 엄마의 인생이니까.


엄마는 이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빠를 싫어하면서도 그렇다. 나는 그녀가 불행한 상황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자신이 없다고 짐작한다.


“엄마는 나와 아빠 둘 다 놓기 싫어하네요.” 하고 주치의는 정리했다. 엄마가 들으면 끔찍할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난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게다가 이혼하면 내게 더 의지할 거라고 생각해서 부담스럽고, 이제는 부모의 이혼을 딱히 바라지 않게 되었다. 


“남편에게 의지할 부분을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렇다. 엄마는 이혼 문제에서 회피하고, 괴로움은 나에게 털어놓으며 견딘다.


무심코, “엄마 인생이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녀의 인생에 죄책감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인생이다. 엄마의 인생은 나의 인생이 아니다. 복창하자, 외우자, 새기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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