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의 「촛불 미사」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25)
“저희가 저희에게 가나이다”
저희가 저희에게 가나이다
앞을 보면 문이 없고
옆을 보면 이미 부서진 망루의 밤
화염에 갇힌 영혼들의 말과 침묵을 넘어서
흩어진 재의 손들이
무덤 벽을 두드리는 소릴 들으며
저희가 저희를 찾아 가나이다, 주여
저희는 사랑을 사랑했고
슬픔을 슬퍼했사오니
기도하소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를 빚으신 그 죄
옷을 찢으며 통회하소서
늘 저희를 잊고 있었던 저희가
늘 당신을 버리고 싶었던 저희가
캄캄한 울음을 촛불처럼 밝혀 들고 가나이다, 주여
저희의 발밑에는 허공이 있고
당신이 부르시는 곳엔 절벽이 일어서고 있나니
* 파울 첼란 「테네브라에(Tenebrae)」에서 번용.
- 전동균(1962- ), 「촛불 미사」 전문
세상은 정말 살 만한 곳일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한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이끌려 태어났다. ‘부름 받은’ 우리에게 세상은 정말 살 만한 곳일까.
누구에게나 삶은 무겁기 마련이다. 어린이는 어린 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가능성의 크기만큼이나 버겁고 힘겨운 통과의례가 있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신입사원들도 막내 딱지를 겨우 뗀 소장파도 어려움이 없을 수 없으며, 정신 차리고 보니 갑자기 조로한 퇴물 취급을 당하게 된 중년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니 장년과 노년의 삶을 걱정하는 이곳저곳의 힘겨운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세상살이의 끊임없는 신산(辛酸) 속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 같은 의지를 펼치는 게 또한 사람의 일이다. 「촛불 미사」가 보여주는 세계는 바로 그런 강인하고 결연한 의지가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다.
이 시의 화자 앞에는 ‘문’이 없고, 옆에는 이미 ‘부서진 망루’의 밤이 다가와 있다. ‘화염’에 갇힌 영혼들이 절규하는 이곳에 갇힌 화자는 어디를 향해 갈 수도 없다. 그러니 “저희가 저희를 찾아 가나이다”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내면을 향해 묻고 대답하고 되묻는 행위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한 것을 사랑했고, 슬픈 것을 슬퍼했지 않은가. ‘부름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넘어선 적도 없고, 넘어설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옷을 찢으며 통회하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발밑에는 억만 길 ‘허공’만 있고, ‘당신’이 부르는 곳엔 억만 척 ‘절벽’이 일어서고 있어도 우리는 다시 “캄캄한 울음을 촛불처럼 밝혀 들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촛불 미사」는 그런 점에서 우리 삶의 근원을 깊이 있고 예리하게 통찰하면서 거기에 굴하지 않는 도저한 인간적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