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위에 크레마S를 잠시 올려놓았었고,
크레마S 위에는 스마트폰을 올려놓았었다.
스르르 하는 기분 나쁜 느낌이 들더니
스마트폰이 스르르 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레마S도 뒤따라 떨어지더니
모서리로 스마트폰을 쿡 찍어 버렸다.
전자책 리더기 크레마S와 어제 그에게 한 방 맞은 스마트폰
스마트폰에 케이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본래의 그립갑과 색감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좋아서다.
백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사놓고
만 원짜리 케이스를 끼우고 다니면
가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기도 했다.
총 맞은 것처럼 스마트폰 뒷면이 깨지고 나니
볼 때마다 찝찝했고 무엇보다 보기에 흉했다.
어쩔 수 없이 진그레이 색의 케이스를 끼웠다.
그랬더니 깨진 게 말끔히 가려졌다.
슬림 밀착 케이스라 그립갑도 나쁘지 않았다.
깨진 스마트폰이 새것처럼 느껴졌다.
깨진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깨진 것도 흉한 것도 아니었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거실의 큰 창으로 들어온 부드럽고 밝은 빛이
조명처럼 식탁을 비추었다.
투명한 유리잔에 맑은 물을 따르고 마시려는데
먼지 하나가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하이라이트 조명을 비춘 듯 딱 보였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먼지를
수없이 들이마셔 놓고는
눈에 보이는 먼지 하나는 더러운 거로 생각하며
물을 버리고 새로 따라 마셨다.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더럽지 않고 버릴 물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장에 잡동사니가 쌓인다.
선글라스, 클립, 소독제, 캔들, 디퓨져, 영수증 등
하나둘씩 위에 올려지기 시작하니 그 수가 어마했다.
보기에 좋지 않고 마음이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정리 박스 하나에 잡동사니를 모조리 집어넣었다.
책장이 아주 보기 좋아졌고 마음이 깔끔해졌다.
박스 안은 엉망진창이지만
뚜껑을 덮으면 보이지 않는다.
잡동사니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지저분하고 어수선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면 흉하고, 눈에 보이면 더럽고
눈에 보이면 지저분했지만,
보기 흉한 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흉하지 않았다
더러운 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럽지 않았다.
지저분한 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지저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믿는다.
요즘 초점이 하나로 모아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아웃포커싱 상태다.
내가 초점을 맞춘 것 외에 다른 일은 모두 흐릿하다.
초점을 맞춘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
물론 초점을 맞춘 일도 쉽지 않지만
그 일이 재밌고 즐겁다.
당연히 브런치에도 소홀해진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이상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이상하리만치 삶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브런치는 10년 넘게 글을 쓰지 않던 나에게
글을 쓰게 해 줬고, 좋은 분들도 알게 해 줬기에
소홀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근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리 생각할 게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여러 번 해준 말씀을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그분 말씀대로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하면 된다.
제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분 마음 조금 알 것 같다.
발행글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니 한 친구가 말했다.
"요즘은 뭔가 열심히 안 하나 보네? 한 잔 무까?"
그렇지 않다. 내 기준에서 나는 요즘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생각하고 또 열심히 쓰고 있다.
단지 그게 내가 초점을 맞춘 곳이라
나만 알고 나에게만 보일 뿐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한다는데
브런치북으로 만들고 싶은 내용이
이제 막 생겼다.
그걸 실천하고 쓰며 혼자 엄청 신나 있는걸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데,
한 달 만에 완성은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그동안 써놓은 글들로는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연습 삼아
모양새라도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