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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May 06. 2024

훔치면 개이득

시행착오 훔치기

나는 품질팀의 인원인데 제조팀에 지원 갈 일이 있었다. 제조팀의 검사 장비에는 빛을 이용해 이물 여부를 검사하는 항목이 있는데 하루에 한 번 빛을 보정해 주어야 검사가 가능하다. 어느 날 한 설비에서 빛 보정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고 좀처럼 해결되지가 않았다. 현장의 엔지니어가 조치해 봤지만 실패했고, 메이커사의 엔지니어가 왔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시작기술팀, 개발팀, 생산기술팀 인원들이 모두 붙어 조치를 시도했다. 누구는 이거 해보고 누구는 저거 해보는 등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는 문제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하나 생겼다. 그들은 내가 의심했던 부분은 빼고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이걸 교체해 보고 저걸 교체해 보며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그들의 실패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의심하는 부분이 원인일 거라는 확률이 높아져 갔다. 결국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조치를 보류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어차피 안되는데 내가 뭐 하나만 교체해 봐도 되겠냐고 현장의 담당 관리자에게 물었고, 어차피 안되는데 마음대로 해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딱 5분 후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한 일은 케이블 교체였다. 내가 그걸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앞에서 많은 인원들이 시도하고 실패하는 시행착오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들이 100가지를 확인했다면 99가지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나머지 1개가 원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 것이며, 나는 그들의 과정을 훔친 덕에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훔쳐오면 매우 쉽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최근에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했다. 새 제품을 사기엔 너무 비싸고 약정이란 걸 하기 싫어 중고 공기계를 구입하기로 했다. 새것 같은 중고폰을 사는 게 목표였다. 나는 며칠 동안 검색에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며 어느 한 업체에서 중고폰을 구입했다. 제품을 받았을 때 외관이 정말 새것처럼 깨끗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황당하게도 스마트폰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반품을 신청하고, 다른 제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또 며칠을 소요해 알게 된 게 전시상품이었다. 전시했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을 알게 되었고, 구매 후기를 꼼꼼히 읽은 후 그 제품을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외관도 새것 같고 성능도 새것 같았다. 한 달 정도 지난 지금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 보름 가까이 검색을 하고 구매했다가 반품을 하고 또 검색을 하면서 얻어 낸 결과물이었다.


내가 구입한 스마트폰을 본 회사 동료가 자기도 폰을 새로 구매해야 하는데, 구입한 제품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나의 구매과정과 만족도를 들은 후 내 스마트폰의 실물을 확인해 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제품을 받아 든 그는 매우 만족해하며 좋은 후기까지 남겼다.


그는 내가 보름동안 시간과 정성을 들여 좋은 제품을 고른 노력을 단 한순간에 훔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이런 훔치기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확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걸 좋은 말로 표현한 것이 모델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왜 성공한 사람들을 모델링하라고 하는지 조금 느낌이 왔다. 그들이 성공한 방법은 그들이 실패한 과정을 시행착오로 거친 후 선택 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법 중에서 나에게 맞는 걸 골라 적용하면 나의 시행착오를 줄여 빠르게 성공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시행착오는 이거 해보고 안되면 저거 해보고,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저렇게 해보며 최적의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행착오를 훔치는 일은 누군가가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그렇게 해보니 요렇게 하는 게 제일 좋더라고 알게 된 것을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의 과정 없이 요렇게를 곧바로 획득하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훔치는 일은 누군가가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그렇게 해보고, 요렇게 해 본 일 중에서 쓸모없는 건 걸러내고 쓸모 있는 진액만 획득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각종후기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사용후기, 방문후기, 관람후기, 독서후기, 성공 후기 등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각종 후기들이 넘친다. 후기를 잘 활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을 모델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잘 훔치면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원하는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을 때 시행착오를 훔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일은 삶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어디 훔칠 건수가 없나 촉을 세우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시행착오를 잘 훔치면 개이득이니까.


단 하루 만에 내 보름치의 시행착오를 훔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내 동료처럼.




'후기 검색'과 관련해서 이 매거진에서 다뤄지는

망상활성계 이야기를 끼워 넣으려 했는데 다소 길어질 것 같아

다음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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