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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의 최고 휴양지 말라가

by 딸리아 Nov 07. 2022

오후 햇살이 저물 무렵에 말라가 해변을 거닌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 모를 스페인의 오후, 방금 먹은 밥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산책이 필요하다.

한참을 거닐었다고 생각했지만 겨우 1 km 남짓, 이왕 나온 김에 해변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뛰놀고 어른들은 제 자식이 행여나 다칠까 눈을 떼지 않는 따뜻한 토요일 오후이다.


잠잠히 해변을 거니는데 한 사내가 부른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어색한 에스파뇰을 쓰고 있다. 왜 그러는지 무엇 때문인지 관심을 갖고 다가선다. 자기는 스웨덴에서 추운 겨울을 피해 이곳 말라가로 내려 왔다며 편하게 PePe라 부르란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는 말라가 항구 근처 아파트에서 산다며 매일 자기랑 스페인어 공부하는 겸 놀자 한다. 그가 이곳 스페인서 하는 일은 딱히 없는 듯 하다. 자전거 타고 이곳으로 나와서 바닷물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다가 해변에 앉았다가 오늘같이 지나가는 사람하고 말 좀 하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직은 스페인어가 서툴러 사람들하고 어울리기 보다 바닷가에서 조금씩 공부를 한단다. 


스웨덴은 2014년에 벌써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나 된다고 한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기로 소문난 스웨덴은 55살 이후부터 '노인주택'에 들어갈 수도 있고, 자기 집에서 편하게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PePe는 노령연금으로 이곳 말라가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말라가는 북유럽의 노년들에게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우리나라도 조금 있으면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21년 현재 1인 가구 비율은 33.3%로 여느 나라 못지 않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이슈인 '청년주택'이 몇 년 지나면 '노인주택'으로 바뀌어 보급되지 않을까 싶다.


PePe가 놀자는 제안에 흔쾌히 좋다는 말은 못하겠다. 서로 안 되는 스페인어를 하다 보면 말이야 늘겠지만 어떤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관광지는 물론 공연장이나 어학당, 어디에도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특히 북유럽의 경우 노령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가능하다 보니 해외여행도 어학연수도 언제 무엇을 할 지 계획이 가능하다. 


PePe는 1월에 와서 3월에나 돌아간다고 했지만 그처럼 돈 걱정없이 해외에서 한 달 살기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훗날 일을 그만 두면 세계 곳곳의 '음악 페스티벌'을 찾아 다니며 곳곳에서 한 달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 나의 노후연금은 얼마나 되는지, PePe처럼 한 달 살기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


통계적으로 2020년 기준 스웨덴의 조세부담율은 33.5%인데 반해 한국은 20.0% 이고,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스웨덴이 25.5%인데 반해 한국은 12.2%로 조사되었다. 세금 적게 내며 젊어서 노세 노세 하다가 노후를 걱정하는 게 나은 건지, 세금 많이 내며 근근히 살더라도 노후 걱정없이 늙어가는 것이 나은 건지.


PePe의 혼자놀기 소품들도 눈여겨 볼 만 하다. 그의 '나 홀로 테니스' 놀이는 테니스 공에 고무줄을 연결하고는 그 끈을 무거운 것이 잔뜩 들어 있는 가방에 둘둘 말아 고정하고는 혼자서 공을 치거니 받거니 한다. 자기가 만들었다며 내게 자랑하는 그를 보며, 운동점에 가면 제대로 된 것을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아빠가 그렇다. 그깟 국자 하나 사면 될 것을, 어디서 꺾어온 나뭇가지에 국자를 매달아서는 아직도 쓸 수 있다며 좋아하신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런데 얼마 전에 나 역시도 ‘생활의 지혜’라는 미명 하에 좌식테이블에 바구니를 연결해서는 평상시에는 테이블을 세워 바구니에 휴지며 마스크며 소소한 것을 보관하다가, 사람들이 모이면 눕혀서 밥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PePe를 보며 그땐 구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일상이 아빠의 일상이고 나의 일상인 듯 싶다. 나이들어 시간이 더 많아지면 이렇게라도 하나씩 둘씩 소소한 재밌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PePe가 매일 해변에서 나를 기다리겠단다. PePe가 집에 돌아가고 없을 시간에 해변에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낮에 나가서 잠시 인사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 나누며 나의 미래 모습일 수 있는 그와 소소하게 사는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 그런 여유가 없었던 걸까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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