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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 기숙사 리셉셔니스트, Ana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

by 딸리아 Apr 22. 2024

Ana는 내가 다닌 어학원의 기숙사 리셉셔니스트이다. 기숙사의 '체크인/아웃'과 ‘주말야외활동’ 공지, ‘헤어드라이어’ 같은 소품 대여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전직이 ‘관광가이드’라 가깝게는 프리힐리아나, 세비야, 그라나다에서부터 멀게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전역을 다녔다. 현재 그녀는 이 어학원의 ‘야외활동 코디네이터’로 일하기를 희망한다. 




Ana는 17년 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혼자가 되었고, 지금은 대체복무 중이라 전직자가 복귀하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그녀는 스페인의 살인적인 실업률을 운운하며 한국은 우리 같지 않아서 얼마나 좋겠냐며, 일도 하고 여행도 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부터 시작됐다. 2000년도 이후 연간 3% 이상의 고공성장을 이루었지만 2008년 1.1%의 저성장을 보인 후 2009년에는 -3.6%로 떨어지고, 그 이후로도 계속 후퇴일로를 걷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중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회복 못하고 급기야 2013년 26.1%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현재는 OECD 국가 중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나라 1, 2위를 다투고 있다. 


아시다시피 유럽은 연간 1700~1900시간 정도로 적게 일한다. 6주 이상 휴가가 보통이어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곳곳에서 스페인으로 휴가 겸 (어학)공부를 하러 온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대략 2,100시간. 1-2주 연가를 사용하더라도 연간 2,000시간 넘게 일한다. 코로나로 한국 근로시간이 2021년 1,928시간으로 낮아졌지만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1,400시간 미만으로 더 떨어졌다. 


스페인의 주당 근무 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한국은 주당 40시간, 최대 52시간에서 요즘은 최대 69시간 얘기까지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근로시간에 대해 설명했을 때 우리반 친구들이 다들 놀랬다. 일본인 친구만 빼고 있을 수 없는 일인 양 나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유럽은 퇴직 후에 받는 연금이 회사 다닐 때 임금의 70%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평균 한 해 번 돈의 48%를 세금으로 낸다고 하더라도 세금 낸 것 이상의 혜택을 노후에 보장받고 있다. 


이쯤 되면 Ana가 자신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나를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걱정하고 그녀를 부러워해야 하는 지경이다. 일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고, 연간 근로시간도 많고, 수입은 적고, 연금 혜택이 좋은 것도 아니고, 늙어서도 필히 일해야 하는 나의 삶을 걱정해야 한다. 




Ana가 자기는 1971년생이라며 나에게 몇 살이냐며 물었다. 으음… 해외 나가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나이를 묻지 마세요’ 아니던가, 혹은 ‘내가 몇 살인데’ 하지 말라지만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나이 묻고 답하는 건 결례가 아닌 듯싶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나이는 물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스페인어 배우러 와서 자기소개 하는 것부터 하게 되지만 묻지 않아도 말하거나 서로 묻거나 한다. 우리가 아는 나이에 대한 결례, 비매너적 행동은 아메리카에나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경우만 해도 미국 샌디에고의 Natasha를 만난 지 거의 이십 년이 되어 가지만 그녀가 몇 살인지 모른다. 의식적으로 묻지 않은 탓도 있지만 특별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Ana가 내 나이를 물어본 건 피부 때문이었다. 피부가 좋다며 특히 주름이 없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많이 어려 보이긴 하지, 내 나이 서른 중반에 캐나다에서 생활할 때, 18세 이하 청소년용 버스정기권을 몇 달 동안 사용했던 적도 있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정기적으로 피부과엘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이런 나의 솔직한 답변에 약간 실망하는 눈치였다. 화장품이나 팩처럼 접근성(?) 좋은 그 무언가를 바랬던 것 같다. Sol(태양)의 땅, 말라가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태양을 받으면서도 피부과엘 다니지 않는다. 정작 말라가에서 피부 클리닉 찾기란 쉽지 않다. 차창이 항상 드리워져 있는 우리는 항상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사방천지 널려 있는 피부과엘 다닌다. 




그들이 우리와 또 다른 점이랄까, Ana는 기숙사 리셉션 일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일하고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실업률이 높은 이 와중에 자신은 일을 하고 있지 않냐며 감사하단다. 일주일에 3일 나오는 거라 돈은 정말 얼마 안 되지만 어찌 되었건 출퇴근 할 수 있어 다행이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항상 고민하던 나였지만 그런 그녀 앞에서는 ‘Creo que sí.(I think so)’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Creo que si' 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돌아가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지금 여행을 하고 있고, 이러한 모든 것은 부모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Ana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는 양 시공을 넘나드는 찰나를 경험했다. 

기숙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나인데, 영어 스페인어를 써가며 눈짓으로 얘기해야 함에도 우리는 서로를 아는 듯 이해하고 있었다. 


한 켠으로 사람이 50년 정도 살아지면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누구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지 항상 마음 속에 두고 세상을 직시하는가 보다. 동양이고 서양이고 ‘쉰’이라는 나이가 주는 상징성, 의미는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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