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쯤 살고 나니 가능성이 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서 나의 직장생활은 호텔부터 시작했다. 학력도, 그간의 경력도 호텔에서 한 일이었기 때문에, 독일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도 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독일어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일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해 있었다. 1년 반 후, 독일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 즈음, 링크드인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면접 보지 않을래냐고. 관심 있으면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곳은 명품 매장이었기에 웬 떡이냐! 싶어서 바로 이력서를 보냈다. 그 일도 바로 얻었다. 나란 여자 운 빼면 시체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진 않았다. 일단 1년 정도 일해보며 생각해보자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 상황에서 그만두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코로나 덕(?)에 일을 많이 안 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서 일할 맛이 났다. 코로나 전까진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학교를 다녔다. 직장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있었는데 금요일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8시간, 토요일엔 아침부터 시작해서 8시간을 듣는 과정을 1년 동안 이어갔다.
호텔이나 명품 매장의 일은 아무래도 몸을 써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무직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장 1년간 비싼 돈 주고 학교도 다녔다. 그 교육과정 자체에는 큰 만족감은 없었다. 그걸 다니려고 한 이유는 현지인들이 내 이력서를 보고 안심하고 연락하라는 차원에서,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채워 넣기가 내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과정이 다 끝나갈 때 즈음엔 코로나가 터져서 사실상 바로 효과를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오미크론이 터지기 전에 한국에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못 가다 보니 안 가는 것과는 마음 상태 자체가 달랐다. 전에 없던 향수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길게 가려고 했다. 그때쯤 잠시 격리가 해제됐는데 타이밍을 잘 맞춰서 두 달 정도를 지내고 왔다.
다녀오니, 또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다. 다만 이번엔 진짜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일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지만, 다시 그쪽으로 길을 돌리면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표는 '원하는 직종의 일을 찾을 때까지 직진하기'였다.
오스트리아의 노동청 AMS는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을 그냥 두는 게 아니라 다시 빨리 일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등록된 내 지난 경력들을 보고 마지막에 일했던 분야로 일자리 공고를 보내준다. 문제는 잘 안 맞는 경우가 많고, 나처럼 직종 변경을 하고 싶은 경우엔 난감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직원과 한 번은 반드시 면담이나 전화통화로 이런 부분을 얘기해서 변경할 수 있다. 받은 공고에는 반. 드. 시. 지원을 하고 그런 내용들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지키지 않을 시 실업급여를 더 이상 주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할 필요는 없고 영혼 없는 지원을 해댔다.
나도 리테일에서 마케팅 업종으로 변경을 원했는데 전 오스트리아 지역의 공고를 보내줬다. 많지는 않았지만 기차로 4시간 떨어진 곳에서 연락이 올 땐 난감했다. 그럴 땐 솔직하게 'AMS가 나한테 공고를 보냈고, 지원해야 했다. 하지만 거기에 갈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일 것이리라.
나도 열심히 지원했다. 한국에서 온 후 2-3주간 여기저기 계속해서 지원을 했다. 그리고 그중 두 군데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