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첫 만남
그러다 우연히 올림픽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올림픽 전체 일은 아니었고 대회 기간 동안 두 종목의 경기위원장님들의 통역을 맡게 됐다. 그 종목은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스키 (이하 크컨). 둘 다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기도 알기도 했다. 확실히 바이애슬론은 몰랐다. 크컨+사격이 합쳐진 경기. 그런데 이중 기본이 되는 크컨은 어쨌든 일반 한국인보단 더 자연스럽게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리아에선 한국보다 춥지 않아도 눈이 많이 내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잔디밭이다 보니, 눈이 많이 내린 날엔 평지에서도 사람들이 스키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어떤 미친 사람이 눈 오는 날 저러고 다니나 싶었다. 알고 보니 그것이 크로스컨트리 스키였다. 크로스컨트리라는 말도 나에겐 너무 생소했다. 왜냐면 이 종목을 난 독일어로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Langlauf" (Skilanglauf). 한국에 오니 크컨~ 크컨~해서 도대체 크컨이 무엇인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Langlauf였다. 스키마라톤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난 독일어로만 알았다.
스피드도 느껴지는데 일단 평지에서 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타보고 싶어졌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2월에 2박 3일 정도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모의 크컨대회 같은 것이 열렸는데, 그때 몇몇 해외국가들이 참여했다. 아시아 국가들이었는데 그 당시 태국선수들이 있어 신기했다. 저 나라엔 눈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훈련을 하지?
알고 보니 여름에는 롤러스키를 탄다고 한다. 일반 스키보다 더 짧고 바퀴가 여러 개 달렸다고 한다. 그때 태국팀의 감독인 토니에게 격려의 말을 보냈다. 도전자체가 너무 대단하다고. 그랬더니 토니가 한 말, '우리 선수들은 이번에 눈을 밟아본 게 5일 차인 애들이야 ㅎㅎㅎ'. 상상조차 못 할 노릇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1월에 있을 올림픽까지 한국에 계속 있으면서 훈련을 할 거라고..
그 모의대회에서 태국은 당연히(?) 꼴찌를 했는데, 마지막 선수가 오는 게 너무 느려서 위원장님이 코스에 무전을 쳐서 마지막 선수가 어디쯤 돌고 있는지 계속 확인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저 정도면 내가 열심히 훈련만 하면 내가 더 빠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봤다. 그도 그럴게 내가 나이 빼고는 신체적 조건이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태국이 돈 많은 선진국도 아니고 크컨이라는 분명히 인기가 많지 않을 종목에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져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1월에 다시 토니를 지나가면서 봤을 땐 너무 반가웠다. 지나가면서 보고 내가 '토니!'라고 외치자 토니도 나를 봤는데, 그도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해줬다. 비록 시간이 없어서 얘기할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그래서 선수들은 어땠을까? 눈부신 발전을 했다. 나는 선수들을 다 알지도 못하지만 12월에 봤던 선수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도 좋아졌고, 이번에도 꼴등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너무 차이 나서 모두가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꼴등도 아니었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토니는 결국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크컨대회가 있다면 태국이 잘하는지 지켜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