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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Apr 13. 2024

직장생활 10년, 키보드에 10만 원을 태우다

사실 139,940원

철칙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너무 엄격하고, 여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켜온 신념이 있다면

'사무환경에 돈 쓰지 않기'이다. 사무용품은 무조건 제공되는 것 안에서 사용해 왔다는 얘기.

회사는 나에게 돈을 주는 곳이지 내가 돈을 쓰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ㅎ.ㅎ)


그런데 최근 들어 관심을 갖게 된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키보드'다. 

하루에 최소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직장인이 일을 하면서 유일하게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직원이

컴퓨터에 기본 사양으로 함께 달려있는 키보드를 쓰고 있었는데 그중 몇몇이 조금 달라 보이는

키보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경이 환경이니 만큼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그것은 아니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타건감을 가진 키보드를 쓰는 분들이 소수 있었다. 


하여 그때부터 나도 폭풍 검색에 돌입했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모르던 세계를 접하게 되는데

낼모레 마흔이 되도록 2-3만 원대 올블랙의 기본템만 알고 살았지 키보드 하나에 5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있는 건 머리 나고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컴퓨터로 집필업무를

해야 하는 작가들이나 혹은 게이머들에게는 손과 팔, 어깨에 무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일 테니

자연히 그런 기술을 가진 고가의 키보드도 수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키보드를 알게 되고 영상으로 접해 보니, 역시 내가 직접 키보드를 눌러봐야 진짜

내 취향을 알 수 있겠다 싶어 그나마 우리 지역에서 제일 많은 키보드를 보유하고 있는 일렉트로마트를 

방문했고(유명템 다수 보유), 장장 한 시간여의 타건 끝에 마음에 쏙 드는 키보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콕스 엠프리스 오리지널 레트로 무접점 키보드 50g>이다. 



키보드를 구입하기 전에 기준이 몇 가지 있었는데,


1. 사무실에서 써야 하니 소음이 심하지 않아야 할 것

2. 눌리는 손맛이 마음에 들어야 할 것

3. 색상은 블랙, 화이트, 아이보리 등으로 무난할 것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품이었다. 소음의 경우 사무실에 울리는 키보드 소음을 경멸하는 남편도

관심을 보일 정도로 무난하다. 아예 무소음인 것은 아니고 키보드 특유의 가볍게 찰칵거리는 소리가

아니어서 신경을 긁지 않는달까.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쓰는 키보드에 사비를

털게 되었다. 자그마치 139,940원. 조금 현타가 오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무용품을? 내 돈으로? 그것도 심지어 키보드를? 근데 키보드가 오만 원이 넘는다고? 십만 원도 넘어?

의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타건감이 너무 좋아서 계속 쳐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정도냐면

토요일인 오늘 배송받아 본 이 키보드를 써보고 싶어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출근을 고려했을

정도다. 다행히 집에 컴퓨터가 있고,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것을 잊지 않아 이렇게 첫 게시를 브런치

글을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루종일 이 키보드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면 전업 작가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거짓말 많이 보탬) 들 정도로 내 취향에 꼭 맞는 타건감이다. 


아... 이래서 키보드에 수백만 원을 넘게 태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구나. 부디 이것이 사무용품에 부려보는

내 마지막 욕심이자 사치이길 바라본다.


+ 그런데 정말 너무 좋아서 집에서 쓰는 키보드도 바꾸고 싶다. 집에선 아이패드에도 연결해서 써야 하니까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무접점 키보드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도 있다. 이건 남편에게

비밀이다. 근데 결국 언젠가 사긴 살 것 같다. 그렇다면 빨리 사서 오래 쓰는 것이 이득 아닐까?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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