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간호사 Oct 21. 2022

환자의 영혼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는 걸까?-1

sedation 환자(진정제를 이용하여 재운 환자),박영자-상




우리는 가끔, 아니 어쩌면 꽤나 자주.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영혼이 우리 의료진들이나 가족들을 따라다니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의식이 없는 환장 영혼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놓게 되었을지도 몰라-.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직전 징후는 생각보다 꽤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사망 전 환자들의 호흡음이 매우 불안정해 지거나, 맥박이 갑자기 미친 듯이 빨라지기도 한다. 환자의 활력징후(*vital sign, 혈압/맥박/분당 호흡수/산소포화도, 환자의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상태의 지표가 된다.)를 24시간 동안 모니터링하고 있는 중환자실에서는 모니터가 보여주는 환자의 상태를 예민하게 캐치할 수 있어 이렇게 사망 직전 활력징후가 불안정해지는 경우 빠르게 캐치가 가능한 편이다.

.

.

.


중환자실로 들어선다. 오늘 내가 맡은 환자는 총 4명, 여느 3차 병원 중에 중환자를 4명이나 담당하는 것은 꽤나 많은 환자를 맡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그중 두 명은 꽤나 중증이다. 인공호흡기에 많은 약들을 사용하는 내과 환자였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의 폐 상태가 너무 말썽이라,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환자가 숨을 쉬어야지만 폐 기능이 그나마라도 나아질 수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는 환자가 자발 호흡을 하게 되는 경우 오히려 인공호흡기 치료에 방해가 된다.

해서, 환자의 자발 호흡을 억제시키기 위해 환자의 중심정맥관(*C-line)을 이용하여 sedative(*진정제)를 주입한다. 이로서 환자가 깨어 자발 호흡하지 않도록 재우는 것이다.

*중심정맥관: central line, 심장까지 들어가는 큰 정맥에 놓는 관(catheter)으로 중요 약물을 사용할 때 보통 삽입한다.

*sedative(진정제): 환자를 재우는 용도로 사용한다. 흔하게 향정신성(프리세덱스, 프로포폴, 미다졸람 등)/마약성 진통제(레미펜타닐, 펜타닐, 모르핀, 페치딘 등)/근이완제(베카론, 님벡스, 에스메론 등)이 있다.




내 환자 4명 중 한 명이 이 케이스에 해당되었다. 고령의 여성 환자, 박영자 씨는 호흡기내과 환자였다.

환자에게 고용량, 그리고 다량의 sedative를 사용하여 완전히 푹 재운 상태였다. 그리고 인공호흡기로서만 폐가 운동할 수 있게끔 모드가 설정되어 있었다.

*인공호흡기에는 환자의 폐상태에 따라 모드를 설정할 수 있는데, 자발 호흡이 없는 상태의 모드부터 있는 상태의 모드까지 다양하다.



그래도 이 환자는 상태가 엄청 위중해 보이진 않는다. 비록 자발 호흡을 없애기 위해 많은 종류의 sedative가 들어가지만 그래도 인공호흡기에 보이는 그래프가 꽤나 안정적으로 보이고, 환자 모니터가 보여주는 활력징후가 정상범위에서 살짝은 벗어난다 한 들 어느 정도는 지켜봐도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7시가 되어,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보호자들이 중환자실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면회시간 20분 동안에는 환자당  명씩 보호자가 입장할  있었다.



박영자 환자의 보호자 역시  명이 중환자실 안으로 입장하였다. 그리고 환자의 곁에서 환자를 여러 번 불렀다. 마치  소리가 '도대체 얼마나 상태가  좋기에 불러도 눈을 못 뜨는 것이냐'라는 느낌으로 들렸다. 해서, 간략하게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는 다량의 sedative를 쓰고 있기 때문에 불러도 의사소통이 불가할 것이라는 설명을 해야 될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담당 간호사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환자분은 인공호흡기로 온전히 숨을 쉬고 계세요. 자발 호흡이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안 될  있기 때문에 진정제를 이용해서 재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이라고- 그들을 간략한 설명으로 이해시켰다.


"아, 어머니에게 쓰고 있는 약이 많은가요?"

"현재 세 가지 재우는 약을 쓰고 계시고 승압제까지 사용하고 계십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보호자는 심각한 얼굴로 환자의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  걸음 물러나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속닥거리듯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작은 아들로 보이는 보호자가 5분이  안되어 밖으로 나갔다.



"혹시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 가능할까요?"


보통 오후 7시면 주치의는 퇴근하는 시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간혹 가다 주치의가 퇴근하지 못한 경우라던지, 당직을 맡은 날이라면 부서 내 당직실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 때마침 오시네요." 그때 오늘의 당직의, 주치의가 등장했다.


"선생님, 여기 박영자 환자분 보호자분께서 면담 원하세요."

"네, 1번 베드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올게요."


"보호자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순서대로 설명하신다고 하십니다."

보호자는 말없이 짧게 끄덕였다. 나는 내 전산 앞으로 돌아가 면회 차팅을 넣기 시작했다.


.

.


면회시간이 끝났다.


주치의가 다시 그들에게 돌아갔을 때 보호자와 주치의는 자리를 조금 옮겨 중환자실 문 앞쪽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화를 마친 후엔 제 갈길을 가고, 주치의 역시 다시 당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면회가 끝난 오후 7시 20분, 담당 환자와 가장 가까운 전산 앞에 앉아 차팅을 정리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A룸 담당이시죠?" 주치의가 당직실에서 다시 나와 말 걸었다.

"네. 맞아요."


주치의는 '잠깐-.'이라며 내게 자신을 따라와 보라고 손짓했다.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따라갔다. A룸 옆에 있는 물품보관실로 나를 데려갔다.





"박영자 환자분 보호자들이 환자가 빨리 죽었으면 한대서 오더 좀 바꿀게요."

"네? 보호자들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세상에나-. 가장 병원에서 듣기 힘든 말을 들은 것 같다. '환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니..? '죽어'라는 말을 이렇게 필터링 없이 이런 식으로 전해 듣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미간이 온갖 찌푸려졌다. 왼쪽 눈이 파르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경악을 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진짜, 진짜로 보호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게 진실이냐고.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 보호자가 치료비가 부담스럽다고 너무 적극적인 치료는 원치 않는 다고 그러네요."

"... 아,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깜짝 놀랐네."



마음에선 내 놀란 마음이 당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변하는 것만 같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왜 의료진이라는 그는 말을 그렇게 하는 걸까-. 아무리 환자와 2m는 떨어져 있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더라도, 환자들의 청력은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던데- 그의 말을 들었을까 두렵고 걱정되었다.



"그래서 약물도 다 싼 약물로 쓰고 싶다 하셔서, sedative 종류 다시 낼 게요. 지금 들어가는 sedative들 얼마나 남았죠?"

"님벡스주는 2시간 후면 connect(*연결)해야 할 것 같아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까지는 들어가구요."

"음, 그러면 님벡스는 끝나면 미다졸람류로 변경하죠."

"네. 오더 주세요."






- 다음 편에 계속 -




* 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어 쓰인 non-fiction과 fiction 사이의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의 영혼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는 걸까?-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