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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5. 2024

우리 관계에 불안을 느끼는 과정 1

<여자 5편> 불안할 수록, 밀어내야 하지만-



겨울 저녁, 나는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있었다.

너 또한 약속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네게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가 온다.


.

.


술을 마시면 연락이 안 되던 날 들을 세 번 이상 반복하니 헤어지자, 나는 이런 상황 너무 싫어한다, 전쟁 같은 날들을 보냈다.


솔직히, 네가 술자리에서 연락이 너무 안 돼서, 내가 너의 무의식에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것만 같아서, 네게 거리감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에는 연락 좀 해달라고 사정했더니 집에만 잘 들어가면 괜찮지 않냐 시전 했다. 그 감정선을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도 답답하다.


“알겠어. 이제 걔랑 술 안 마실게.”

그렇다고 네가 술을 적당히 마시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사람을 만나면 조절 없이 술에 취하고, 연락 안 되는 건 네겐 당연한 것인가 보다. 그래서 차라리, 사람을 안 만나겠다 해버린다.

중간이 없다. 네게 난 너의 인간관계를 망치는 사람일 뿐인 걸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 욕심인 걸까-.


.

.


오후 일곱 시, 네게서 전화가 또 걸려왔다.

의무적으로 하는 통화. 그래도 안 되는 것보단 나아. 내게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네가 안쓰럽고 기특하다.


“응. 여보세요?”

‘나 잠깐 화장실 온 동안에 전화했어.‘

“아. 재밌어? 술은 얼마나 마셨어?”

‘얼마 안 마셨어. 맥주 두 잔 정도. 곧 헤어지고 집 갈 거야.’

“일찍 끝나네?”

‘응. 아마 8시쯤이면 파할 것 같은데.’

“나는 아홉 시쯤에 집 가려고. “

‘본가로 가?’

“음, 아마?”

‘.. 어,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끊어요.‘


네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함께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 모양이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조차부터 비밀로 해야 해서 너는 나를 급하게 엄마나 직장 상사쯤으로 만들어버린다.


‘여자친구 있는 거 정도는 밝히고 나라고만 말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맘에 들 지 않는다.



나는 급하게 끊긴 통화를 마치고 터덜터덜 내 지인들에게 향했다.

“남자친구?”

“어, 맞아.”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사이좋나 보네.”


나는 머쓱하게 씩 웃었다.

“에이-. 뭐..”


.

.


여덟 시가 지나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응. 이제 집에 가게?”

‘.. 아, 아직. 2차를 가자고 하네? 그리고 끝나고는 우리끼리 회사 근처에서 더 마실 것 같아.‘

조용히 나의 억장이 무너진다. 또, 넌 나를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무너트린다.

“.. 뭐야.. “

‘조금만 마시다 늦지 않게 들어갈게. 한 열 시, 열한 시 전으로..‘

네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기대하는 내가 또 좌절할까 너무 불안해진다.



.

.


나는 네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너네 집으로 가서 자고 출근할게.’

답장이 한참 없다. 생각해 보니 네게서 연락이 끊긴 지 두 시간. 나는 네게 메시지를 보내고 서울 도로 위 운전을 하고 있다.


‘어디야? 연락이 없네..’

차를 내려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답이 없다. 벌써 직장 근처로 돌아와 또래들과 한 잔 하고 있나? 네 생사조차 모르는 지금이다.


너의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람의 온기란 온데간데없고, 캄캄하다.

조심스레 불을 켜보니 역시나 오지 않았다.


밤 11시, ‘오겠지, 일찍 온다고 했잖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침대 위에 누웠다.


.

.


새벽 세 시가 되었다. 아직도 네게서 연락이 없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할 거, 싫어할 거 알 텐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나? 그래도.. 어떻게든 연락은 할 수 있잖아..


배 째라 식의 너의 방식에 울화통이 터진다. 가슴 한편이 차게 식는 듯, 화상을 입는 기분이다. 내 심장을 드라이아이스 위에 올려놓은 것만 같다.


그렇게 캄캄한 방 너 없는 침대 위에 누워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건물 밖으로 ‘꺄르르’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내가 아는 목소리다. 이제 왔구나.


15분이 지나 도어록 소리가 들린다. 네가 누워있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뭐야? 본가 간다고 하지 않았어?”

화가 너무 나서, 너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쉿-. 밖에 애들 있어. 여기서 더 마시려고 했어.”

나 진짜 화가 났는데, 조용히 하랜다.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네가 쭈뼛대다 내게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다시 나가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캄캄한 너의 방 나를 혼자 두고 가버렸다.


나에게 더 이상의 말은 안 하고 밖에서 더 마시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을 돌려보내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나보고 나가라고 시간을 주는 걸까.


그 무엇이 되었든 너는 내가 정말 안중에도 없구나.

이 집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나는 너에게 없는 사람이었겠다.


20분 정도 기다리다, 나는 외면해 둔 채 밖에서 마시려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동안에도 너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너의 눈에서 멀어지고, 너의 이성이 흐려졌을 때 네게 나의 존재감은 함께 없어진다.


네게서 연락이 두절되는 일들이 잦아지고, 너에게 내 존재감의 의미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는 너를 밀어내야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판단은 했지만-.

내 감정이, 내 마음이 너를 떠나고 싶지가 않아서

나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너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고 우린 점점 피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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