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6편> 반성 없이 용서받는 방법
“그래. 알겠어. 푹 쉬고 곧 봐.”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열리며 동시에 나는 대답했다. 반대편 문 밖에서 네가 보였다. 너는 무표정이었지만 나를 쳐다보더니 얼굴이 붉어지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는 체를 하려 했는데-, 넌 나를 그렇게 한 번 흘기더니 엘리베이터에 탔다.
망했다. 네가 단단히 화난 것 같다.
“야, 야-.” 나는 네 손목을 잡으며 엘리베이터에 따라 탔다.
“이거 놔.” 그리고 너는 강하게 뿌리치려 내가 붙잡은 손을 세게 털어냈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좀 더 세게 너를 붙잡았다.
“아, 아니. 아래 내려가면..”
너는 말없이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내 손을 떼려 했다.
“바, 밖에 누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이걸 핑계라고 대는 걸까.
“뭐 어쩌라고-!”
네가 진짜 화가 나서 나를 강하게 뿌리쳤다.
“화났어?” 난 또, 당연한 걸 묻는다.
“나 출근해야 되니까 놓으라고.”
너는 나를 강하게 뿌리치고 문 밖으로 나갔다. 너를 붙잡기에 너의 이유를 반박하기에 나는 100퍼센트 떳떳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황당하여 너의 빠른 걸음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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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자마자 나는 네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내 전화를 계속 무시하다, 세 번째 전화에 받았다.
‘왜.‘ 네가 전화를 받는 거면, 너도 나를 마냥 싫어하진 않는 것일 거다.
“왜 화난 거야?” 솔직히, 아무 일도 없었고 너에게 있어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한 게 없다. 다치지 않고 집에 들어오면 된 거 아닌가?
‘넌 뭐가 잘못되었는 지도 모르지?’
“......”
‘내가 분명히 거슬린다 말했고, 싫은 것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너는 그 자리에 나가서 연락이 두절 돼버렸어.‘
“아무 일 없이 들어왔잖아. “
‘그럼 나는? 연락도 안되고 미쳐버리는 내 시간들은? 너는 내 세상을 죽여나간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 거봐. 너 거기서 노력해야 했구나.’
“걔가 자꾸 꼬리치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철벽을 치느라 노력했는데.. 방금 통화도 같이 있던 동기가 나보고 잘했다고 한 건데..”
‘아니. 너 혼자 떳떳하다고 나한테도 떳떳해지진 않아. 네가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불안에 떨던 나는 네가 연락 안 되던 매 초마다 무너져 갔으니까.‘
“내가 술 깨워서 보내려고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이고..”
‘나랑 연락 안 되는 동안에, 너한테 꼬리 친 애한테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였다고?‘
“같이 일하는 사이잖아. 불편해지는 거 싫어서..”
‘끝까지 걔랑 있으려고 뭣하러 너 돈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이고 멋있는 척하면서 같이 있어?’
“그건 내가 직장에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보니까 어찌할 줄 몰라서.. “
‘불편한 게 아니고 즐긴 거 아냐?‘
“난 너만 사랑해. 너뿐이야, 알잖아. “
‘네가 날 사랑한다면, 적어도 내가 너랑 연락 안 되면 스트레스받을 거 뻔히 알면서 그동안 그 애한텐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거잖아, 너.’
“왜 그런 쓸데없는 애 때문에 우리가 이래야 되는 건데? 그런 앨 네가 왜 질투하는 거야.”
‘질투? 이건 질투가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우리가 연애 초반에 어땠는지. 내가 너 여자인 친구들 만나는 거 처음부터 마냥 싫어했었는지.’
“......”
‘네가 만든 거잖아. 그리고 난 내 남자친구한테 꼬리 치는 그 애한테 화나고 질투를 느낀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즐기고 여자친구에 대한 배려를 단 하나도 안 한 너한테 화난 거야.‘
“.. 미안해. 아니, 내가 뭘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억울함에 엉엉 울며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왜, 떳떳한 데 너의 그런 피곤한 성격 때문에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 그런 나를 향해 너는 말이 사라진다.
‘그래, 너랑 나는 이렇게나 달라. 너는 딱 그 수준의 사람을 만나. 너처럼 남자들이랑 껴서 놀고 연락 안 돼도 아무 일도 없었다, 떳떳하고 안 다치고 들어왔으면 연락 안 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난 안 되겠으니까.’
네가 화에 못 이겨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너는 3초간의 정적을 더 흘려보내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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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함에 너와 전화를 끊고도 엉엉 울고 있었다. 근데, 솔직히 몇 분 가지 않았다.
술자리에 함께 있던, 마지막까지 신입과 함께 있던 멤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울음을 금세 그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집이면 다시 나올래? 나 아까 있던 일들이 너무 충격이라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응. 여기 앞에 카페로 갈게.”
우리는 내 자취방 앞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신입이 했던 모든 행실의 전후과정을 모두 들었다.
“진짜 미쳤네. 관두겠지? “
“근데.. 얘 지금 출근했나 본데?”
“뭐?”
지금은 낮 두시. 방금 헤어졌는데, 그 만취상태로 직장에 갔다고? 미쳤구나.
“너랑 같은 쪽 살지 않아?”
“응. 근데 마지막에 내가 부축해 주려고 해도 계속 뿌리치더니 너네 오피스텔 쪽으로 따라 뛰어들어가서. 나도 열받아서 안 붙잡았어. 근데 그대로 나와서 직장으로 갔나 봐. “
동료는 당황스러운 듯 더듬거리며 이야기했다.
“너도 못 마주친 거지?”
“나는, 못 마주쳤지..”
근데 그 아이가 나를 쫓아왔다면 여자친구를 마주쳤을 수도 있을뻔했다는 생각에 순간 아찔했다.
나는 그렇게 동료와 커피 한 잔 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만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여자친구랑 무슨 일 있었냐?’
“.. 왜? “
‘아니, 아까 통화할 일이 있어서 잠깐 했는데 너무 기분이 안 좋길래 무슨 일 있냐 했는데 왠지 너 때문인 것 같아서.‘
나는 자초지종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직장에서 신입이 너한테 꼬리 쳤는데 연락도 안 됐다는 거지?’
“.. 나도 직장에서 그런 걸 당한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서..”
‘그래도 너 그건 아니다. 그 여자애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도 자아도취에 빠지면 안 됐지. 걔가 너한테 진짜 관심이 있었든 모든 남자한테 그랬든 너 여자친구한테 실수한 거야. 제대로 사과해. 싹싹 빌어. “
“아, 알겠어.” 나는 투덜거리며 답했다. 내 편은 하나도 없다.
너는 근무하는 내내 연락 한 통 없었다. 나는 잠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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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 곧 너의 퇴근시간이다.
네가 집에 와서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받곤 했어서, 일단 방을 대충 청소했다.
이성적인 판단은 안되기도 하고, 솔직히 뭐가 잘못되었는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으나 일단 화는 풀어줘야 할 것 같다는 나의 결론이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긴장했다. 네가 오면 애교를 부리고 안아주고, 맛있는 걸 먹일 거다.
그때 때마침 들려오는 도어록 소리, 네가 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너를 쳐다볼 거다.
“.. 뭐야?”
너는 나를 무시하고 너의 짐이 쌓여있는 가방 쪽으로 향하려 했다.
나는 넘어지며 너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 제, 제발-! 나 좀 봐줘. 내가 미안해.”
“내가 봤을 때 넌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아니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미안해. 일단 맛있는 거 먹고 얘기하면 안 돼? 나 배고파.”
우리는 그렇게 약 한 시간 반동안 실랑이를 했다. 나는 그 한 시간 반동안 너를 붙잡고 껴안고 맛있는 걸 먹자고 졸라댔다.
“근데 진짜 헤어지는 게 맞는 거잖아. 넌 아직까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잖아, 솔직히.”
너는 계속 헤어지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했고, 그런 너를 붙잡는 게 지쳐만 갔다. 나도 억울한데.
“맘대로 해, 그럼. 나도 이렇게까지 붙잡는데 네가 달리 생각하지 않으면 힘들고 지쳐. 너도 바로 떠나지도 못하는 데 왜 자꾸 상처 주는 말만 하는지 모르겠어. “
“....... “ 네가 말을 잃었다. 그리고 너는 가방을 들었다.
“나는 네가 잘못된 걸 깨닫고, 다신 안 그러겠다 이야기할 줄 알았어. 그걸 기대했어.”
그렇게 말하는 너를 나는 붙잡는다.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잖아. 헤어지기엔 사랑하고 있잖아.
“그런 거였어? 안 그럴게. 네가 같이 놀지 말라고 하는 애들이랑은 절대로 안 놀게.” 나는 너를 꽉 껴안으며 이야기했다.
“...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잖아.. 아니야, 그래. 놀지 마. “
너는 가만히 안겨있었다.
체념이 아니라, 사랑인 거지?
그 딴 애 때문에 우리 사랑의 정도를 무시하지 마.
내 마음은 한결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