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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05. 2020

여보, 차 바꾸자(2부)

코딱지에서 무엇으로


처음에는 정말 많이 속상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다기보다는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밥은 잘 먹는다.)


결국 우리의 차로 결정된 '스파크'는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숨이 막혔다. 작고 숨이 막히는 그 차를 우리는 '코딱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의 코딱지는 생각보다 언덕도 잘 올라가고, 조용했고, 빨랐다. 역시나 옵션들을 때려 넣은 게 유효했다. 좌우측과 측후방에서 뭔가가 다가오거나 차선을 바꿀 때 충분한 시그널을 주었고, 차선 이탈 방지라든가, 전방 충돌 경고라든가 하는 '경차에 없을 법 한'센서들이 원활하게 작동했다.

작지만 시크한 검은색의 코딱지는, 우리 세 식구를 싣고 어디든 달렸다. 트렁크가 경이로운 수준으로 작았지만, 짐 정리나 수납은 나의 주특기였기 때문에 웬만한 승용차 이상으로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었다.


타고 다녀보니, 세금도 싸고 주차요금도 싸고 유류비 지원도 있고, 톨비도 싸고, 주차도 쉬웠다. "어라? 생각보다 좋은 점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둘째가 생겼다.


우리의 코딱지에는 이로서 뚱뚱이가 운전석에, 롱다리가 조수석에 앉았고, 뒷자리에는 카시트가 두 개 설치되었다. 정확히 탑승부는 꽈-악 들어찼고, 유모차 하나 실을 공간도 부족했다. 어딘가 다닐 때면 애들 기저귀에 여벌 옷, 간식 조금 챙겼을 뿐인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불편했지만, 감수했다.

더 벌어들이지 못하는 내 잘못이니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하면 로또라도 되든가, 돈을 더 벌든가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은 또 흘러 아이들은 잘 먹었고 잘 컸다. 아이들이 카시트에 앉아 다리를 뻗을 공간이 부족했다. 뚱뚱한 나는 좌석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운전을 하느라 운전을 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운동 부족인 나도 하루하루 비대해져가고 있는데,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이제는 결단을 내릴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여보, 우리 셋째도 생각하는데 차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셋째 갖는다고 확정 지은 것도 아니고, 생기고 나서도 한 참 있다가 사도 되잖아. 태어나고서도 당장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아니 그래도, 어차피 바꿀 거면 당장에 불편한 것도 있고 하니 얼른 바꾸자는 거지"


"사면 손해가 시작되는데, 가급적이면 구매시기를 늦추는 게 돈 버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그런데 우리 가족한테 너무 작기도 하고, 이제 대전으로 이사 가고 하면 큰 차가 필요할 텐데 말이야.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산이나 들로 나가서 캠핑이라도 해야지"


"여보 말한 데로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차가 무슨 소용이겠어. 그리고 지금처럼 그냥 자연에 가서 산책하다가 집에 와서 자면 되지 굳이 밖에서 자고 올 필요 없잖아."


"대전 내려가면 부모님들 뵈러 장거리 운전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작은 차 타고 다니면 고속도로에서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여러모로 뭐?"


"아니, 그니까. 차에 유모차도 하나 안 실리는데, 자전거는 꿈도 못 꾸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 진급도 했고 월급도 오를 거고 하니까 그 정도는 지출은 감수하 자는 거지, 내가 더 아껴 쓰면 되잖아"


"지금까지도 별문제 없이 잘 타고 있는데, 왜 당장 바꾸자고 하는지 모르겠어. 애들 킥보드도 싣고 다니고 있고, 경량 유모차도 어쨌든 실리긴 실리잖아. 월급은 내년이나 돼야 오르는 거고"

더 말을 이어나가는데 피로가 몰려온다.

내가 돈 벌어서 월 50도 못 쓰나 싶기도 하고, 그냥 어떻게 말을 해도 막히니까 답답한 심정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백방으로 알아보던 중에 중고차 경매로 구형 카니발을 사고, 지금 타던 코딱지를 팔아서 좀 메꾸면 3년, 월 30만 원 정도로 낮출 수 있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며칠을 알아보고 또 알아보던 중, 4세대 카니발이 출시되었다. 사실 이제와서는 좋은 차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넓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카니발을 찾던 나에게 [신형 카니발]은 머리통을 한대 후려 치며 말했다.


"야, 뭘 고민해. 날 사야지"


그렇다. 난 저 차를 사야 한다. 저저저 디자인 잘 나온 것 봐라. 저저저저 가족을 위한 편의시설 봐라. 저저 저저저 차 큰 거 봐라 큰 거!!

사실, 이 글은 아내 보라고 쓰는 글이다.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한지,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얼마나 어깨가 안 펴지는지. 얼마나 가족을 편안히 모시고 싶은지 등등 내 생각을 좀 알아주라고 말이다.


이제는 사야 한다. 국내 제조업 활성화와 국가 세수 확보에 이바지하여 다시 경제활성화를 시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태어날 수 도 있는 셋째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라도. 이제 곧 4급 공무원이 되는 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기까지 욕심이고, 사실 차 사면 돈이 녹아드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 돈 아껴 삼 년 모으면 뭐 하나 할 수 있는 종잣돈 생길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존경했던 많은 선배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선배는, 아반떼를 19년 6개월 타시고서는 "20년 채우려고 했는데, 더 이상 차를 고치면 차 값보다 많이 나와서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차를 바꾸셨고,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선배는 검사 형수님과 맞벌이를 하시면서도 '모닝'을 타고 다니신다. 그 선배는 내가 알기로 집도 한남동인데 말이다. 그 외에도 우리 부부를 연결해주신 선배님도, 대대장을 하시면서도 여태껏 서민 3호(SM3)를 타고 다니신다.


사실 차라는 게 사람의 품격과는  전혀 상관없는 게, 몇 가지 사례로 이미 반증된 셈이다.


내가 차 바꿔달라고 쓰는 글에서조차 이런 내용을 쓰고 있으니, 사실 나도 생각 정리나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매일 밤 신형 카니발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고 본거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나를 돌아보며,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대략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합리적인 소비만 하겠는가. 감정적인 소비도 종종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내가 뭐 사치품 사는 것도 아니고, 낭비벽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예전 글에서 밝혔듯 5000원짜리 벨트를 하나 사도 몇 년을 쓰는 나인데 말이다.

(징징거리기)


푸념을 이만 마쳐야겠다.

글은 점점 산으로 가고, 장황해지고, TMI가 되었다.

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

코딱지는 과연 대체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함께 할 것인가!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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