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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15. 2020

여보, 차 바꾸자(3부)

드디어 견적 내다!!



유난히 힘이 없고 짜증이 나던 토요일 오후


"여보, 견적 내러 가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좋은 기색을 최소화하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냐 뭘 봐, 살 것도 아닌데. 나중에 살 때 견적 내자"


하지만 아내도 차를 사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전시장에 가자고 했고, 기수를 틀어 가까운 자동차 매장으로 향했다. 내가 주차하는 사이, 아내는 쭈뼛거리는 나보다 앞서 매장으로 들어가 시승을 하고 있었다.


나도 '정말 사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고 운전석이며 조수석이며 타보았고, 슬라이딩 도어나 테일게이트도 열어보았다. 만족스러웠다. 부지불식간에 미소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견적 좀 봐주세요"


마음속에 고이 모셔놓았던 옵션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직원분에게 말했다.


"00 트림에 00 옵션 하고 00 옵션, 00 옵션 넣어주세요. 색상은 상관없어, 여보가 하고 싶은 색으로 해"

할배색도 상관없어

색을 양보하는 쿨함을 풍기며,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직원분이 노련한 솜씨로 견적을 내주셨다.


"어디 보자-"


숫자가 참 많은 견적서라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월 납부금액이 78만 천 원으로 나와있었다.


아내가 직원분에게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사이, 나는 잠시 그 대화 석상에서 정신적으로 물러나와 [78만 원]이라는 금액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78만 원이라는 돈은, 큰돈이다. 그것도 매월. 4년간. 지속해서 지출해야 하는 돈이라면 부담이 크다. 그 돈은, 굽네 고추 바바삭(18,000원)과 수입맥주 3캔(7,500원)을 4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었을 수 있는 금액이다.


(치킨+수입맥주3)*30일*48개월 = 카니발


혹은 아이 둘을 매월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에 4년간 보내서, 적어도 각 태권도 2단과  체르니 40까지는 가르칠 수 있는 돈이다. 혹은 그대로 다 저축하고 종잣돈을 만들어 어디 경기도 구석에 대출 끼고 뭐라도 한 번 해볼 수 있는 금액이 될지도 모른다.


태권도 2단*2 + 체르니40*2 = 카니발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잡한 머리털을 붙잡고 현실로 돌아왔다. 아내의 질문이 끝나고, 이젠 내가 뭐라도 한 두 마디 덧붙여야 하는 타이밍이 된 것 같았다. 직원과 아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태연하게


"그래서, 지금 신청하면 언제 출고된다고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 워낙 인기 차종이라, 지금 신청하셔도 올해 안에 받으시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 그렇구나. 기아자동차 00 매장에 전화로 문의했을 때는 2-3 달이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그렇게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난 후, 명함과 견적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무리가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아내에게 넌지시 전했다.


"아 뭐야-ㅋㅋㅋ 이렇게 꼬리 내릴 거면서. 나만 나쁜 사람 되면서 못 사게 말릴 것도 없었네. 그냥 빨리 견적이나 내로 와볼걸"


아내의 그런 말에 오기가 나서, 다시 한번 집중력을 올리고 [차를 바꿔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이미 기세싸움에서 밀렸다.


이대로라면 셋째를 갖겠다는 계획도 무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할인율이 얼마든, 안 사면 공짜]라는 명언이 머리를 스치며,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삼 일간의 생각을 정리한 후, 오늘 저녁식사자리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냥 지금 타던 차 계속 타자"


아내는 내가 어떻게 결정하든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알아서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새 차 구매를 포기하는 순간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앞으로 로또가 당첨되든(사지도 않지만), 이벤트에 당첨되어 차를 받든, 당장에 셋째가 태어나 무리해서라도 차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차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가 뭐가 중요하겠나.


우리 코딱지(스파크)는 아직도 잘 굴러가고, 네 식구 타기에 부족함이 없고, 지난 주말에도 간소하게 몇몇 캠핑장비들도 싣고 계곡도 갔다 왔다. 무슨 카니발까지 필요하겠는가.

뭐 이렇게 돗자리, 의자 정도 실을 수 있음 됐지

차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차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차가 뭐 중요는 하겠는가.

차가 중요하겠는가.


차가.


PPL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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