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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Oct 01. 2020

여보, 차 바꾸자(4부)

작은 차에서 번진 화



주말이면 차에 이것저것 챙겨서 목적지 없이 주변 산과 계곡을 찾아 나선다.

스파크 트렁크는 고작 이만하다.

이것저것이라고 대충 이야기했으나, 그 안에는 우리 코딱지(스파크)가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의 짐들이 포함된다. 캠핑의자 4개, 캠핑 테이블, 돗자리 2개, 해먹, 킥보드 2개, 유모차, 아이들 여벌 옷과 신발, 담요 2장, 물놀이 도구, 잠자리채, 다슬기 잡이 통, 족대 등등..


저런 용품들에 더불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있는 두 개의 큼지막한 카시트와 간식 가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 사이를 비집고 저 많은 용품들을 챙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는 캠핑 기분을 좀 내보자며 고기에 라면에 버너에 프라이팬에 냄비에 생수에 각종 야채와 포도까지 챙겼으니 할 말 다했다.


만일 코딱지(스파크)에서 저 많은 용품들을 다 꺼내 차 앞에 군장 검사하듯 펼쳐놓는다면, 그 걸 본 사람 십중 팔 구명은 눈이 휘둥그래 질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탑승자의 불편함과 안전에 위해함 없이 적재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테트리스 능력]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넉넉하게 자라지 못한 탓에, 나는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로 사용하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있다.


통장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십원, 일원까지 한 곳에 모으기, 좁은 수납공간에 물건 정리하기, 적은 물건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등등.. 없어봐야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결핍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보다.


어쨌든, 나의 그런 능력은 작은 차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필수적이고 적절한 능력.


이렇게

하지만 그 작은 차에 그 많은 짐을 이리저리 돌리고 구겨가며 구석구석 채워 넣는 일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도 땀이 나고 짜증이 나고 거기에 아이들이 징징거리면 화까지 난다.(분명 화 안 낸다고 다짐을 했으나, 그러한 연유로 지난 주말에는 화가 터져 나왔다.)


출발도 전에 이미도 땀이 삐질 나오는 상황에서 간신히 출발을 했다. 십 분이나 갔을까, 아내는 농담조로 우리의 상황을 평가했다. '이 작은 차의 사용 효율을 극대화한 것'에 대한 자찬이었다. 하지만 심기가 이미도 매우 불편한 나는 그 자찬이 자조로, 희롱으로, 비웃음으로 들렸다.


아마도 자격지심에서 발현된 머X리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짜증을 툭툭 털어냈다. 아내는 내 짜증을 받아주었지만, 몇 번이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억울한 듯 받아쳤다.


아내는 "나도 좋아서 이런 차 타는 거 아니야, 나도 불편해. 나라고 이런 차 타고 싶겠어? 우리 여건이 어쩔 수 없으니까 타는 거지. 물론 남들처럼 빚지고 차 살 수 있겠지만, 빚지면서 까지 차를 살 만큼 필요한 상황은 아니잖아."


그렇게. 우리의 짜증은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홀랑 태우듯 번지고 또 번졌다. 캠핑을 마치고 오는 내내 서로에 대한 짜증과 화가 들불처럼 번졌고, 결국 '아이들은 집안의 감정 하수구'라는 표현처럼 아이들이 변을 당했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징징거림과 말 듣지 않는 모습에 화가 폭발했고 짜증이 이어졌다. 부적절하고 부당한 감정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작은 차 피로감]이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언제나 다리와 허리를 쭉 펼 수 없었던 환경. 잠시만 공조기를 꺼도 차 안에 습기가 차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는 환경. 높지 않은 방지턱에서 전체가 출렁이는 승차감, 차에 탈 때 보다 내릴 때 기분이 더 별로인 하차감. 추월하고 싶을 때 추월할 수 없는 가속력, 주행 중 고급 승용차들의 압박과 배려 없음. 언제라도 사고가 난다면 크게 다칠 것이라는 불안감.


[당장 필요 없음]으로 결론내고, 바쁜 일상 탓에 한쪽으로 접어 놓았던 차 구매에 대한 필요성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 가족의 평화. 안전. 이런 것들을 위해서 '차 구매 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길 시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신 카니발이 아니더라도 좀 넓고 튼튼하고 가능하다면 좀 싼 차. "아- 정말 차 한 번 사기 힘들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쿠팡에서 몇 만 원짜리 캠핑의자 하나 고를 때도 재고 따지는 것을 생각하면 몇 천만 원을 쓰는 일에 이 정도 '고뇌'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바꿔야겠다.

여보, 차 바꾸자. 정말.

(주말에 화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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