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 민구 Sep 05. 2020

여보, 차 바꾸자(1부)

고라니에서 코딱지로.


누나가 이민을 가면서 누나가 타던 차를 받아서 탔었다. 그 차는 나의 백마가 되어 아내와 연애와 결혼을 하는데 기여했다. 산길과 논길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달리던 착하게 생긴 그 녀석을, 우리는 [고라니]라고 불렀다.

착한 우리 고라니, 잘 살고있니

고라니는 우리가 전남 장성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함께하며, 2년 간 전라 남북도의 모든 지역을 함께 여행했다. 그렇게 28만 킬로를  달리고서 중고나라를 통해 새 주인 찾아주었다.

 

드디어 우리에겐 새로운 차가 필요했다.


어디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차가 필요했다. 한참 살이 오른 나를 위해서 실내도 좀 넓고, 이제 막 태어난 우리 아이를 위해서 냉난방도 잘되는 그런 차 말이다.


내가 드디어 내 차를 산다니! 언제나 꿈꿔왔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머릿속에는 늘 새로운 차에 대한 계획이 가득했다. 어떤 차를 살 것이며, 어떻게 꾸밀 것인지. 그런 것들 말이다.


시간만 나면 검색하고 따져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방에서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방에 중대장으로 가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 빛내줄 그런 멋진 자동차가 필요했다.


중대원들의 입에서 "우와- 우리 중대장님 차 멋있다-!"라는 말이 터져 나올 정도의 차 말이다. 매일 아침 그런 차에서 내려 중대를 지휘하는 것이다. 그게 그림이 참 좋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여보, 이왕이면 멋지고 빠르고 크면 좋겠지만, 첫 차니까 경제적인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서 무난하게 '소나타''정도를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차라는 게 한 번 사면 두고두고 10년은 써야 하는데, 조금 무리하더라도'모하비' 정도 사면 좋을 것 같아. 크고 튼튼한 차니까 우리 가족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사야지"

"여보 여보, 같이 근무하는 00 선배도 이번에 차 바꾼다는데, '말리부' 새로 나온다고 그거 알아보시나 봐. 우리도 말리부 어때? 쉐보레 차가 딴딴하니까'

"아냐, 많이 고민해봤는데.. 다 개인적인 욕심이고, 우리 통장잔고 생각하면, 적당-히 경제적 수준에 맞게 '올란도'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아"

"여보 여보, 내가 계산해봤는데 현금 가진 거에 60개월 할부까지 해서 사면 중고 모하비 정도는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고차 좀 알아볼까?"


매일 밤 돌아가는 행복 회로는 멈출 줄 모르고 기어를 올렸고, 고속으로 달려 나갔다. 브레이크 없는 내 생각에 아내는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그런 차들은 안될 것 같아. 월급에서 고정 지출하고 저축할 것 생각해봐. 저축도 해야지"


"여보, 여보가 말하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중대장이라고 좋은 차 타고 다녀야 존경받고 그런 거 아니잖아.  xx 선배 봐봐, 그 선배 차 좋다고 부하들이 그 선배 존경하는 것 같아?"


"여보, 나라고 좋은 차 안 타고 싶겠어? 나도 누구보다 좋은 차 타고 싶지.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자. 매월 몇 십만 원씩 차값으로 지출하면 우리 감당할 수 있을까?"


"언제 또 출국할지도 모르는데, 괜히 좋은 차 샀다가 팔게 되면 완전 손해야. 차는 산 순간부터 감가상각으로 값이 쭉쭉 떨어진다고"


"여보, 우리 경차로 가자"

순간 귀를 의심했고, 그렇게 나의 꿈은 철저히 산산-조각-났다-.

아내는 애초부터 경차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100명도 넘는 부하들이, 내가 경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부하도 부하지만, 혹시라도 그 작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아니, 뚱뚱한 나와 다리 긴 당신이 어떻게 경차에 구겨져서 들어간다는 거야.


나와 아내의 토론은 끝나지 않았고, 대선 토론 못지않은 열전이 벌어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옆집 선배는 말리부 풀옵션을 계약했고, 우리 중대 부소대장은 부모님이 모하비를 사주셨다.


나는 급했다.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몇 년을 좌우할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모하비도, 말리부도, 소나타도, 아반떼도 아닌 '경차!'라니. 위면 5급 공무원인데! 견딜 수 없는 감정에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상했고 몇 날 며칠 기분이 다운됐다.


하지만, 아내를 이길 수 없었다. 애초에, 아내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설득'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토론'은 허울뿐이었다.


우리는 광주에 있는 자동차 매장을 돌며 모닝과 레이, 스파크를 두루 살펴보았다. 작고 귀여운 차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웃어준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나마 안전하다고 평가를 받는 '스파크'를 구매하기로 했다. 무슨 차이가 있겠냐마는, 에어백이 뭐 좀 더 좋다라나 뭐라나. 철판이 좀 더 단단하다나 뭐라나, 그렇단다. 쉐보레 특유의 묵직한 조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보, 그래도 안전이 중요한 건데, 경차라면 더욱이 풀옵션 해야지. 옵션이라도 넣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야. 이거 봐봐. 여기 이거. 이거. 이거. 이게 다 안전 관련된 옵션이라고."


"아니 여보, 무슨 경차 타는데 옵션을 넣어. 깡통으로 타나 풀옵션을 하나 경차인데. 그냥 깡통으로 가자. 다 똑같아. 이왕 가성비로 갈 거면 확실히 가자"


"여보 무슨 소리야. 난 이건 포기 못해. 최 상위 트림으로 가야 해. 더 이상 양보 못해."

난 거의 울 지경이었다.

아내도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누나의 넓은 아량으로 사치 옵션 몇 개 빠진 최상위 트림으로 구매를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첫 구매 차가 생겼다.

고라니 같은 차에서 코딱지 만한 차로, 업그레이드도 다운그레이드도 판단할 수 없는 차종 변경이 이뤄졌다.


 - 2부에서 계속 -

이전 19화 빵이 가면 치킨이 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