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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Feb 14. 2021

아내는 머리를 심어 달라고 했다.

예뻤던 아내는 잠시 부재중


며칠 전 친구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제주를 배경으로 찍은 스냅샷 속 신랑 신부는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다. 사진을 본 아내는 말했다.


"여보- 누구야? 동창? 우와- 신랑 신부 둘 다 너무 이쁘다"


당연히, 내 아내도 몇 년 전에는 아름다웠었다.                    나는 뭐 그때나 그전이나 지금이나- 별로네 ㅎ

내 아내도 결혼식을 올릴 때는 정말 아름다웠었다. 그런데 고작 7년 만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를 보며 '이쁘다'라고 하는 아내를 보며 얼마 전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여보, 나 머리 심어야겠어"

"머리? 무슨- 머리야"

"요즘 눈에 띄게 머리가 많이 빠지고 가늘어졌어.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머리 많이 심어줘"



머리 심어 달라는 말과, 새 신부가 이쁘다는 말이 묘하게 오버랩되며- 내 눈에서는 주책맞게 눈물이 글썽였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발생한 호르몬의 변화가 분명했다. 직업이 군인인데- 뭐 이딴 걸로 눈물이 나는지. 참.)


머리가 빠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내는 벌써 네 명의 아이를 품었다. 앞에 두 사내아이는 건실하게도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각각 1년씩 모유만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이제는 두 아이가 엄마 배속에서 경쟁적으로 자라나고 있다.


피부가 푸석해지고 뼈는 가벼워지고 머리도 빠졌다. 여간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는 자는 동안에도 온몸의 영양분을 끌어다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은. 동시에. 둘이나.


이쁘고 착해서 결혼했는데- 그 이쁨이 출산과 육아의 반복 속에서 퍼석해지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이쁘고 착했었는데 말이다.


본판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고되고 고된 삶의 여정이 아내의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그래서 아내의 '예쁨'은 잠시 부재중이다.


연예인들은 오십이 넘어도 윤기 흐르고 촉촉하던데, 우리의 현실에선 어지간해서 얻기 힘든 불로장생의 묘약이 있는 것만 같다. 아내를 '관리받는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지만 나에겐 충분한 재정도 불로의 묘약도 없다.


3000억 정도 있으면 되려나. 현찰로 그 정도 있으면 매일 뭐하고 놀지 고민할 텐데. 마사지도 받고 피부며 손톱이며 뒤꿈치나 팔꿈치까지 관리받으면서 고민할 텐데 말이다.


3000억은커녕 당장에 쌍둥이들 태어나면 필요한 쌍둥이 유모차와 침대, 각종 육아용품 구매비용과 산후조리원에 쓸 필수적인 비용조차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쉽게도 군인의 월급은 늘 '딱 먹고살 만큼만' 나온다.


사회 저변에서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지만, 사실 지금의 현실적인 장벽들 앞에서 우리만큼 무모하고, 사랑하고, 비현실적이지 않으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출산과 육아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너무 많은 기회비용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희생과, 너무 많은 노력과,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그렇게 아내의 매우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와 아이들이 자란다. 아내가 먹을 것은 없어도 아이들 입으로는 맛있고 영양 있는 것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애들은 딸기도 두당 한 팩씩 먹고, 귤도 앉은자리에서 각자 5개씩 먹는다.(잘도 먹지) 아내 모발은 가늘어지고, 아이들 머리는 성큼성큼 자란다.



며칠이나 먹먹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벌써부터 많이 버거운지 이미 부른 배를 감싸 안고 옆으로 누워 자면서 몸을 뒤척였다. 자다가 깨면, 배가 눌려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내가 뭘 하겠는가. '관리받는 여자'를 만들어줄 수 있는 쉬운 방법, 잠시나마 내가 관리자가 되는 것뿐이다.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누운 아내의 팔다리를 주물러댔다. 아내는 '어우 시원해'라는 말을 연신 뱉어내고서는 그제야 깊이 잠들었다.


자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정말 터럭이 많이 가늘어지고 또 적어졌다. 또 한 번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를 심어달라던 아내의 말이 화살이 되어, 아내의 꿈속에서부터 날아와 가슴팍에 '푹'꽂혔다. 마음이 저릿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과 애잔함과 존경심이 머리를 땋듯 차곡차곡 얽혔다. 왜 내 주머니엔 몇 억짜리 통장 하나 혹은 아파트 한 채 없는가. 천부적인 재능이나 물려받을 유산도 없는가. 후- 탄식이 새어 나왔다.




빠지는 머리털과 푸석해진 피부로 아내의 예쁨은 부재중이지만, 다행히 아름다움은 증가세가 분명하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눈빛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지혜로워지는 생각에서 알 수 있다. 이 여자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얼른 예쁨도 되찾아줘야겠다. 남편 된 도리로서, 머리를 심어 달라는 아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 3000모 정도 이식하는데 100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니- 넉넉하게 아내의 머리터럭을 위해 5000만 원 정도는 적금으로 만들어봐야겠다. 연병장에 잔디 깔듯 머리카락을 빼곡히 심어줘야겠다.



연애시절의 그 풍성하고 고운 머릿결로 돌아오시오. 내 후원하리다.


이식이 좀 어려울 것 같으면 하이모(Hi-mo)라도? 모발~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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