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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18. 2021

배부른 소리

배가 불렀지 불렀어

(메인사진은 내용과 무관, 한 남편이 아내가 만삭 사진을 거부하자 본인이 직접 찍었다는 국민일보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따듯한 대전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배가 부를 대로 부른 것 같다.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여유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자유롭게 대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깊은 겨울을 깊은 산속에서 보내고 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배가 부른 소리다.


실제로 배도 부른 것이, 여기에서의 생활이 몸에 맞는지 체중은 빠르게 늘어 다시금 88킬로에 육박했다. 살찐 모습에 좌절하고 한탄하니, 아내는 살찐 카피바라같이 생겼다며 귀여워해 준다. 나를 정말 사랑하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난 카피바라를 닮았다. 이젠 이렇게 카피바라 대식구가 되겠지.


사실, 나의 배부른 소리를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첫 줄부터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원래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벌써 세 번째 출산이기도 하고, 주변에 아이 낳은 친구들도 많고 해서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다양한 직간접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쌍둥이는 처음이라 그런지 내가 알던 모든 것보다 '좀 더'하다.


17주를 넘긴 지금, 아내의 배는 벌써 6개월을 넘어가는 산모의 배처럼 불러 있다. 더 빠르게 배가 불렀기 때문에 신체적인 변화와 각종 임신성 증상들은 그만큼 과격하게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겪고 느끼는 어려움과 부담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본인의 신체적인 변화뿐 아니라 선결해야 할 조건으로 두 명의 남자아이가 하루 종일 배고프다고 삐약삐약 거리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깡총깡총하고 있노라면- 절대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하는 산모로서 어려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 '가정'에 모든 노력을 쏟고 있지만, 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이상 내가 해야 할 본분은 잊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지치는 것은 매한가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친 한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목구멍에서 역류한다.


부대, 아내와 더불어- 내가 가장 많이 염두하고 있는 것은 두 명의 아드님들이다. 이 녀석들 원래 같았으면 매일같이 종횡무진하며 산이며 들이며 뛰어놀아야 하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루해하고 무료해한다.


첩첩으로 쌓여가는 빨래 더미와 설거지 산을 못 본 척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란 쉽지 않다. 한때는 매일도 쓰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개는 쓰던 글이 업로드되지 못하는 이유다.(핑계 시전)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니, 조금 전까지 일요일이었다.


아내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대낮부터 아이들을 끌고 나가 세차를 하고 산책을 하기를 4시간. 충분히 낮잠을 잤을 것으로 판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충 22시쯤이면 하루가 마무리되고 나도 내 시간을 좀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속이 좋지 않았다. 22시부터 두 시간 동안 손발을 주물러- 결국 자정이 다되어서야 침대를 빠져나왔다. 빨래와 재활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탁기에서 차가운 빨래를 꺼내는데, 주말에 장갑도 안 끼고 아이들하고 너무 심하게 놀았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릿하고 쑤셨다.




"아- 배불러, 숨차-" 아내가 배가 부른 소리를 한다.


아내의 불러오는 배는- 아내를 힘들게 하고 더불어 나를 짓누른다.

저 부풀어 오르는 뱃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초록이와 초원이를 생각하면 입꼬리가 위로 삐치지만, 배부른 소리는 오늘도 내 하루의 샷다를 무겁게 내린다.


아내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여기저기 주물러주는 것 말고는, 특별히 약도 없는 아내의 배부름에 대한 대처와- 잠을 줄이고 더 빠릿하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특별히 답도 없는 내 배부름에 대한 대처가 슬프게도 반짝이는 별- 밤이다.


아름다운. 여전히 아름다운 밤이다. 아름다워서인지, 몇 시간 잘 수 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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