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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Nov 26. 2020

가사지구 육아 격전지

치우고 차리고의 굴레



이츠 마이 잡

미군들이 구보할 땐 "이츠 마이 좝!" 외친다며?

예전에 중대장 하면서 함께 근무하던 이 상사가 계셨다. 그분은 군인으로서의 정신적 대비태세가 확고하신 분이었는데, 항상 병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정신교육을 하곤 했었다.


"얘들아 말이야, 형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우리 직업이야. 미군애들 구보할 때 뭐라고 구호를 외치는지 아냐? '이츠 마이 좝! 이츠 마이 좝!' 그러면서 뛴다고. 체력을 기르는 게 우리의 일이야. 그러니까 내 일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라"


미군하고 같이 뜀걸음을 해보지 않아서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일리 있는 말이다. 군인으로서 내무 생활하고 훈련하고 체력을 기르는 모든 것이 직업으로서 행해지는 것이고, 직업에는 책임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투 잡

이츠 마이 좝!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요즘 나는 투잡을 하고 있다. 낮에는 부대에서 과장으로서 부대 운영을 관리하는 군인으로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퇴근 이후에는 '가사와 육아'를 업으로 삼고 있다.


가정 주부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내가 임무수행을 할 수 없는 지금은 대리자로서 내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내 직업으로서의 가사와 육아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임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군인만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집안일이 쉬웠다. 퇴근하고 와서 '보조자'로서 육아 가사를 돕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주된 책임은 아내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접근이 쉬우니 부담도 없고, 돕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그만 하고 아내에게 넘기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내가 전담으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있고, 내가 전업인 것이다. 이렇게 되니 상황이 쉽지 않다.




장보는 것은 고민의 연속

우선은 장보는 것부터 달라졌다. 그 전에는 애들 간식이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좀 골라서 카트에 올려놓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식재료를 사서 어떤 음식으로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야채와 고기로 손이 간다. 양파, 감자, 파, 애호박 등의 기본 야채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각종 양념들은 충분히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신선한 제철 과일이나 채소가 나오면, "저걸로 뭘 요리해서 먹이지.." 하는 고민으로 카트를 채워나간다.


얼마 전엔 총각무가 신선하게 진열되어있는 걸 보고, 한 단을 사 왔다. 우선 아내가 먹고 싶다는 소고기 뭇국을 끓였는데 무는 한참이 남았고, 결국엔 깍두기를 담그는데 유용하게 활용했다.




차리고 치우고

식기 세척기는 나의 왼팔. 하루종일 돌아가는 식기세척기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챙기려니 머리가 아프다. 사실 제일 집안일 중에서도 제일 기피하는 것이 부엌일이었는데, 지금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가장 주부로서 그런 것들을 따질 때가 아니다.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지휘관의 배려로 점심시간에도 부대 옆 관사에 가서 점심을 차려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삼식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을 차리고, 아침을 치우고

점심을 차리고, 점심을 치우고

저녁을 차리고, 저녁을 치우고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주방에서 사용된다. 국 하나, 반찬 하나 만들고 먹이고 치우는 데에도 한 참이 걸린다. 그때마다 음식 냄새가 아내를 괴롭히지 않게 환기며 청소며 음식물쓰레기 배출이며 신경 쓰다 보니 정말 손이 많이 간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차리고 치우다 하루가 끝날 지경이다.


나중에 나이 먹으면 [삼식이]는 되지 말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장진호 육아

저때는 말이야

사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원래 아내가 살림을 도맡아 해 줄 때에는, 나는 아이들하고 노는 역할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살림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놀아주진 못하더라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은 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중간중간 책이라도 몇 권 읽어주고 하다 보면 정말 몸이 예전같이 따르지 않는다. 


틈만 나면 올라타고 매달리고 잡아끄는 두 사내 녀석에게 짜증이 올라오기 일수고, 예전처럼 붕붕 들어서 놀아주지도 못한다. 늘 기운이 없다.


예전엔 육아 분야에 있어서 공격적인 모습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다녔다면, 지금은 방어를 하다 하다 전선이 붕괴되어 후퇴하는 육아를 하고 있다.


장진호에서의 처절한 전투 끝에 공적인 후퇴작전을 만들어 냈던 것처럼, 지금 이 어려운 시기만을 잘 버티고 넘겨 다시 아이들과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장진호 육아에 있어서 든든한 원군이 되어주고 있는 헬로카봇들도 있지만, 점점 불리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보다.


아내도 나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아이들도 그렇고, 집안일도 그렇다. 나의 몸은 하나인데 무엇 하나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마음은 사면초가 일 수밖에 없다.


장진호 전투가 흥남철수로 이어졌던 세계적인 후퇴작전이었는데, 나의 육아도 그렇게 성공적인 작전이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최고 난의도 : 주부

이런 말도안되는.. 저렇게 평온한 표정이 나올 수 없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서 주부로서 직업을 바꾼다. 더불어, 가장으로서 주부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내 요 몇 주 직접 해보니, 주부는 정말 어려운 직업이다. 머리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고, 안목도 좋아야 한다.


동선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자원을 적적하게 배분하고, 노력과 시간을 우선순위에 따라 편성하지 않으면 집은 금세 개판이 된다.


주부라는 직업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을 위해서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분담은 필수적인 부분이고, 남자들도 반드시 이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가장주부로서 가정주부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살면서 간과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을 알게 해 준 초록이와 초원이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하루빨리 초.초.가 엄마의 입덧을 멈춰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가사 지구 육아 격전지의 2부 능선

하 넘을 산은 많고 정말

오늘로서 초록 초원이의 10주가 되었다. 출산까지 남은 날짜는 210일.  고지의 2부 능선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산은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은 힘들면서 위험하다. 다리에 힘이라도 풀려버린다면 발목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아이들의 출산까지 가장주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생 이후의 네 아이와 아내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가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아직까지 그 넷을 어떻게 키우고, 아내의 조리를 어떻게 도울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장담컨데, 인생 최고 난이도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 메모리의 리소스가 부족하니,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 하도록 하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며 지내야겠다.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이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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