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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Nov 27. 2022

흰 수염, 고래?

나이가 고래?



내 나이 서른여섯


요즘 부쩍 식욕이 왕성해져 아내에겐 "여보, 나 급성장기인가 봐. 먹을게 엄청 땡기네"라고 이야기 하지만, 키가 크거나 골격이 좋아지진 않는다. 옆으로 급성장할 뿐이다. 아직도 성장 중이라고 믿고 싶지만 성장은 멈춘 지 오래고 이젠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걸 증명하는 녀석이 생겼는데 평상시에는 볼 수 없지만 훈련을 가거나 해서 며칠 면도를 못하면 바로 보이는 흰 수염 한 가닥이다. 흰 수염이라니. 고래도 아니고 이거 뭐.


흰 수염 말고도 몸이 늙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운동능력과 체력이 확실히 떨어졌다. 특히 훈련이나 운동을 하고 나면 예전처럼 회복이 잘 되지 않는데- 어제까지 그렇게 힘들게 몸을 쓰고도 오늘이 되면 또 펄펄 날아다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며 박탈감이 느껴진다. 존감을 위해 꼭 속으로 한 마디 던진다. "야, 나도 니들 나이 때는 마. 장난 아녔거든"


마침 어제는 22년도 체력검정을 했는데, 정말 '죽을 뻔'했다. 3km 달리기에서 마지막 직선구간 200m, 남은 시간은 30여 초. 남은 체력은 2%. 이번에 특급을 받지 못하면 1급에 만족하거나 다음 달에 또 뛰어야 했다. 군생활 12년 간 빠짐없이 특급이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평소보다 더 못생기게 일그러졌고, 숨은 넘어갈 듯 끊어질 듯 간신히 붙어있었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서 바로 바닥에 나뒹굴어 버렸다. 깨져버린 호흡이 도무지 돌아오지 않았다. 과호흡과 허벅지 경련 증상이 나타났다. 노련한 전우들과 의무병이 와서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다. 기록은 3초 차, 간신히 특급을 받았지만- 내년엔 장담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운동할 시간은 줄어들고, 운동을 하더라도 회복할 시간이 부족하다. 잠도 부족하고, 회복능력도 떨어졌다. 흰머리와 흰 수염이 몇 가닥씩 등장해서 "이젠 늙었어!"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녀석들의 직한 직언이 듣기 싫어 "당장 저자를 뽑아버리라!" 불호령을 내린다. 화장대에 시립해 있던 족집게가 흰 수염을 뽑아버리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등장하는데 그 사명을 이어받아 똑같이 외친다. "넌 늙었어! 인정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흰 수염, 고래? 맞아. 나 이젠 늙어가고 있어." 흰 수염 좀 뽑아낸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세월은 가고, 시간을 정면으로 맞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자기 합리화 같다고 느껴지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 흰 수염과 흰머리를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친한 부하 전우가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손을 꼭 잡고 "영양제 잘 챙겨 먹고 계십니까" 물었다. 잘 지내고 건강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영양제를 잘 먹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 생각해보니 무척 현실적이고 정감 있는 인사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서랍 가득 3열 종대로 대기 중인 영양제를 안 먹고 있었다. 영양제부터 즐기기 시작해야겠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흰 수염고래 브로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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